통일시대 Vol 1622020.04

북한 강서구역 청산리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연합

북한 포커스

북한 식량수급 상황
자본 부족, 개혁 부진으로 낙관 어려워

북한의 올해 식량수급 사정은 작년 가을철 및 올해 봄철의 식량 작물 작황과 올해의 해외 도입량에 좌우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매년 북한의 작황 조사 결과와 예상 도입량을 감안하여 식량공급 전망치를 발표해왔다. 그러나 작년 말과 올해 초에는 국제기구의 북한지역 식량 작황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2019년도 북한의 곡물 작황 추정치만을 이용하여 올해 북한의 식량수급 사정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국내산 식량 공급은 증가할 전망이나 큰 차이는 없어
지난해 말 농촌진흥청은 북한지역의 기상과 병충해 발생, 비료수급, 국내외 연구기관의 작황 자료, 위성 영상 분석 결과 등을 종합 분석하여 ‘2019년도 북한의 식량작물 생산량’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북한에서 생산된 식량작물은 총 464만 톤으로, 2018년도의 455만 톤에 비해 약 9만 톤(약 2%)가량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작물별 생산량은 쌀이 224만 톤으로 가장 많았고, 옥수수 152만 톤, 서류(고구마, 감자 등) 57만 톤, 맥류(밀, 보리 등) 15만 톤, 두류 및 기타 잡곡 16만 톤 등이 그 뒤를 이었다(표 참조).

쌀 생산량은 2018년에 비해 4만 톤(1.8%) 증가했다. 이는 벼가 생육하는 전체 기간(5~9월)에 걸쳐 대체로 일사량이 많았으며, 벼가 여무는 시기인 8월에도 일사량과 온도 조건이 좋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옥수수는 2018년 생산량에 비해 약 2만 톤(1.3%) 증가했지만 식재 초중기(4월 하순∼6월)와 개화기(7월)의 가뭄의 영향으로 평년에 비해 생산이 감소했다. 감자 생산도 2018년에 비해 3만 톤(5.6%)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지난해 봄감자는 가뭄으로 생산량이 소폭 감소한 반면 여름철 감자가 굵어지는 시기(7월 하순∼8월 중순)에 기상조건이 양호해져 생산량이 더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콩은 파종과 생육 초기의 가뭄, 꽃눈 분화기의 저온, 태풍 ‘링링’에 의한 도복 등 여러 가지 수량 감소 요인이 있었음에도 예년의 생산량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올해 북한의 식량수급은 해외 도입량에 좌우될 전망
농촌진흥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식량작물 생산 증가분만큼 북한의 식량 공급 사정이 미미하나마 개선될 수 있으나 단기간에 북한의 식량 공급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거나 수급 균형이 이루어질 정도는 아니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2019년 가을 수확이 이미 이루어져 ‘국내 생산에 기초한 공급량’은 거의 결정된 상태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올해 봄에 수확할 식량작물의 작황에 따라 공급량이 늘어날 여지는 있으나, 전체 식량작물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봄작물의 비중이 적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큰 기대는 할 수 없다.

둘째는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계획과 준비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2017~2021년 국가전략계획(Country Strategic Plan)’에 따르면, 동 기간 대북지원을 위해 확보된 자금은 총 4,37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 자금이 모두 식량 지원에 사용되더라도 연간 대북 식량 지원 규모는 북한의 식량 부족 상황을 중·단기적으로 개선할 만한 규모가 아니다. 더욱이 UN제재는 대북 식량 수출과 인도적 지원을 제한하지 않고 있지만 의도치 않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국제 인도주의 원조기구들에 따르면, 서방의 은행과 물류 기업들이 북한과 관련된 금전 거래와 물품의 운송을 꺼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원조 물량은 2013년 이후 계속 감소하여 최근에는 연간 2만여 톤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해 5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후원하는 북한 황해남도 신원군의 한 유치원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모여앉아 밥을 먹고 있다.
당시 북한을 방문한 데이비드 비슬리 WFP 사무총장은 “북한 사람들이 굶주리지는 않지만, 영양결핍 문제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연합
반면 상업적 차원의 곡물 도입량은 작년 큰 폭으로 증가해 10월까지 총 35만 3,000톤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 고 있다. 이 수치는 2013년 이후 상업적 도입량으로는 가장 큰 기록인데, 주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증가에 기인한다. 특히 2019년 북한의 대중 식량 도입은 7월 이후 급증하여 하반기 도입량이 2018년 하반기의 두 배까지 상승했다. 이는 2019년 중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일본 신문의 보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작년 7월부터 시작된 대중국 식량 도입 증가 현상이 금년에도 지속된다면 향후 북한의 식량수급 사정은 생산의 증가폭 이상으로 호전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 요소도 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으로부터의 식량 도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북한의 2020년 식량 수급 사정은 다시 어려워질 우려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주의를 기울여 관찰할 필요가 있다.

참고. 북한의 농업 기상(2019년 1~10월 기간)
- 전반적으로 기온은 높았고 강수량은 적었으며 일사량은 많았음. 9월에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강한 바람과 폭우로 지역에 따라 작물의 도복 및 침수 피해가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 기온은 11.8℃로, 작년(10.9℃)보다 0.9℃ 높았음. 여름철 작물생육기간(5∼9월) 기온은 20.3℃로, 2018년(20.1℃)보다 0.2℃ 상승함.
- 적은 강수량(676.4㎜)으로 여름 작물의 파종 및 이앙기에 물 부족 현상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됨. 2018년(988.4㎜)보다 312㎜ 감소했음(68.4%). 여름 작물생육기간(5∼9월) 강수량은 567.8㎜로 작년보다 260.3㎜ 감소함.
- 일사량은 4958.1MJ *로 2018년(4703.5MJ)보다 254.6MJ 많았음. 여름철 작물생육기간(5∼9월) 일사량은 2991.6MJ로 작년보다 201.9MJ 상승함. * 자료: 농촌진흥청(2019.12)
* MJ(Megajoule) : 106J, 에너지의 단위
북한 식량 사정, 올해 이후에도 낙관적 전망 곤란
북한의 올해 식량 생산은 내년의 수급 사정을 결정할 것이다. 북한의 농업생산은 기상, 생산기반, 생산요소, 기술 등의 제약요인으로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 이 요인 중 단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은 생산요소의 공급이며 이를 위해 가장 긴요한 것은 비료이다. 그런데 최근 비료 도입량이 급격히 감소하여 당장 북한의 농업생산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북한의 최근 비료 도입 규모는 2018년 8,400만 달러에서 2019년에는 그 절반 수준인 4,200만 달러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더욱이 2020년 농작물 생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2019년 하반기 도입량은 전년도 동기 도입량의 2.2%인 67만 달러로 급격히 감소했다. 이는 2020년도 봄철 농사를 위한 비료의 재고가 매우 적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비료 도입에 지장이 초래된다면 올해 농사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중기적인 전망도 밝다고 할 수 없다. 1990년대 경제 위기 이후 북한은 농업생산 증대를 위해 농정 전환과 농업개혁을 꾸준히 추구했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 생산은 부분적으로 회복되었을 뿐 큰 폭으로 증대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간간이 후퇴할 때도 있었다. 이는 북한의 농업개혁과 새로운 농정 추진에 간과할 수 없는 제약이 있음을 시사한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북한의 농업은 ‘자본 부족과 개혁 부진’이라는 제약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10월 5일 김정은 위원장이 스웨덴에서 열린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 이후 첫 공개활동으로 농업 현장을 방문하며 민생 챙기기에 나섰다. ⓒ연합
다만, 2019년 말 개최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농업과 식량 생산을 특별히 강조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를 보면 북한 당국은 올해 농업을 더욱 중시하고 식량 증산을 독려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식량 생산과 공급의 증대가 실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원회의 발표 이후 지금까지 북한 농정 당국은 기존의 정책과 차별되는 구체적이고 항구적인 식량 증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향후 북한의 농업생산과 식량 생산이 크게 개선되리라고 전망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북·미 대화 교착에 따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지속될 경우, 비록 제3국으로부터의 도입과 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식량 생산과 수급 여건의 근본적 개선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김 영 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