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22020.04

진단 1

코로나19 속 북한
내부는 자력갱생, 외부는 친서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비상이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은 중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초기에 즉각 국경폐쇄를 단행했다. 사스, 메르스,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의 사태에서 취했던 것과 유사한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현재 북한의 방역체계는 국경을 차단하는 예방적 조치에 역점을 두고 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한 번도 확진자 발병 사실을 밝힌 바 없다. 북한 매체들은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연일 자세히 전하면서도 자국 내 코로나19 발병 상황은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예방의학적 방침으로 코로나19의 유입을 막았다는 식으로 체제 우위를 선전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아직 확진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코로나 돌발변수는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측면에서 북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은 1월 중순께 코로나19가 확산 조짐을 보이자 중국과 러시아와의 기차 및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는 등 국경 밀집 지역에 철저한 봉쇄 정책을 펼치며 바이러스 차단에 나섰다. 「노동신문」에 코로나19가 언급된 것은 지난 1월 22일 “중국에서 최근 신형코로나비루스가 급속히 전파되면서 피해가 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처음이었다. 이후 1월 29일에는 곧바로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했다. 과거 사스 발병 당시보다 더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다. 2월 29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이 전염병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경우 초래될 후과는 심각할 것”이라면서 ‘초특급’ 방역에 나설 것을 직접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비상방역법」의 수정보완과 국가위기관리 규정의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내각 등 관련 기관에 방역 역량 강화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또 비상방역 규율 확립 및 관련 상황의 보고·감시 강화, 국경의 보다 철저한 봉쇄, 검병·검사·검역 사업 강화 등 다방면에 걸쳐 지시를 쏟아냈다. 그러면서 이러한 조치가 “단순한 방역사업이 아니라 인민보위의 중대한 국가적 사업이며 당 중앙위원회의 무거운 책임”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지난 3월 1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했다. ⓒ연합
감염속도가 빠른 코로나19가 한 번 퍼지게 되면 북한으로서는 확산을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제사회의 제재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전염병까지 창궐하면 민심이 크게 동요할 가능성도 크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은 갈수록 재난·재해에 매우 선제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과거의 전염병 대응과정에서 경험하고 학습한 것이 나름대로 축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열악한 의료시설과 의약품 부족 등 보건의료와 방역체계의 낙후성을 스스로 잘 인식하고 있는 북한 당국은 감염증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 봉쇄하는 것을 최선의 대응책으로 인식하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북한 체제는 전염병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북한의 강력한 통제력 때문에 남측보다 더 일사분란하게 전염병을 관리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북한에서는 의사가 자기 담당구역을 철저히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전염병 유입 및 전파 경로 파악에 유리할 수도 있다. 주민 간 접촉을 최소화하고 주민 이동을 통제하는 것도 수월하다.
코로나19 장기화될 경우 경제 타격 불가피
북한은 겉보기에는 여전히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우선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 이 시점에도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 한 해 북한은 관광 부흥을 통한 경제건설에 총력을 쏟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구상은 상당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교역 측면에서 보면 공식무역과 밀무역의 동시 감소가 불가피하다. 북한의 공식무역은 전염병으로 국경이 폐쇄될 때마다 줄어드는 양상을 보여 왔다. 또한 강력한 방역지침 때문에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비공식 무역도 쉽지 않다.

2018년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92%에 달한다. 북한의 대중국 수입유형은 크게 4가지로 분류 된다. △원유, 정제유, 코크스 등의 에너지 △광산개발을 위한 화물차, 굴삭기, 타이어 및 임가공 제조를 위한 섬유직물 원부자재 등 수출을 위한 수입 △쌀, 옥수수, 사료, 감미료, 비료 등 식량류 △최근 기술 발전과 시장화 확산으로 인한 공산품(전자제품) 등이다. 대중 무역 중단이 북한 경제에 미칠 충격은 주로 에너지, 원부자재, 비료, 의약품 등 민생관련 분야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는 시장 물가와 환율 상승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 국경 봉쇄 장기화라는 우려 자체가 시장에서 중국산 물건의 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공포감을 가진 주민들이 앞다투어 약품 구입에 나서면서, 진통제, 해열제 등 감기 관련 약품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안팎의 불안 요소가 북한 내 경제 주체들로 하여금 안전자산을 확보하려는 행동을 유발하면서 외화수요 증대와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입 감소, 주민 이동제한 등으로 당분간 시장활동의 위축도 불가피하다. 도소매 상품의 유통량 감소로 전반적인 수급 불안정이 심화될 수도 있고, 이는 다른 상품의 가격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장활동의 위축은 매출 하락과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경제활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다. 도시 간 이동이 제한됨에 따라 시장활동이 위축되면, 이와 연관된 숙박, 요식, 교통, 배달 등 서비스업도 크게 위축된다.

북한 당국은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을 정면돌파전의 승리로 성대히 장식하기 위해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올해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목표 결산도 해야 하는 처지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코로나19 변수가 동시에 북한 경제를 압박하면서, 지난해 연말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경제분야에서의 정면돌파 전략도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북한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나름대로 자립경제 기반을 구축해왔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안정적인 연료, 원료, 부품자재, 건설자재 등의 수입(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목표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북한은 어려움 속에서도 코로나19 국면을 계기로 자력갱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부 공급역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국산화와 과학기술에 더 매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 미국과 의 비핵화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정면돌파’로 유엔 제재를 뚫고 나가겠다며 주민들에게 자력자강, 자력갱생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강력한 대북제재가 예상보다 북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신종 및 변종 바이러스의 수시적 출현은 남북협력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제 감염병은 단순한 질병관리의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안보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듯하다. 상시적 위협으로 다가온 변종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남북 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지난 1월 30일 주민을 대상으로 바이러스의 증상과 예방대책을 교육하는 북한 의료진. ⓒ연합
패러다임 대전환 요구하는 새로운 안보위협
북한은 지난해 연말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언한 대로 대미 협상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강일 전 외무성 북미국 부국장은 북·미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나 최근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인물을 유럽으로 보낸 것은 대미 협상에 대한 기대가 줄었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냉랭한 대남 태도도 유지되고 있다.

북한이 북·미협상에 기대를 접고 ‘정면돌파전’에 나선 가운데 남측과의 대화에 일체 응하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훈련을 둘러싸고 남북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와 우리 정부의 남북교류협력 제의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2월 28일 합동타격훈련에 이어 3월 2일에는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했다.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아래 원산 인근 동해안에서 ‘화력전투훈련’을 실시한 데 대해 청와대가 즉각 ‘강한 우려’를 표하며 중단을 촉구했고, 이에 3월 3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전쟁연습놀이에 그리도 열중하는 사람들이 남의 집에서 군사훈련을 하는데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극치”라는 것이다. 특히 “3월에 강행하려던 합동군사연습도 남조선에 창궐하는 신형코로나비루스가 연기시킨 것이지 그 무슨 평화나 화해와 협력에 관심도 없는 청와대 주인들의 결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 첨단군사장비 반입 중단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북한 입장에서 ‘그 누구를 위협하고자 한 훈련이 아니었음’(김여정 주장)에도 불구하고 중단을 요구하는 남측에 대해 강한 경고를 하기 위해 김여정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해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고,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9·19 평양 정상회담 때도 핵심을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해 2월 4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남관계를 사실상 단절했던 김 위원장이 1년여 만에 다시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청와대를 맹비난한 바로 다음 날, 오빠인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한국이) 반드시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남녘 동포의 소중한 건강이 지켜지기를 빌겠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음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며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하겠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우의와 신뢰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에도 모친상을 당한 문 대통령 앞으로 친서 형식의 조의문을 보낸 적이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이번 친서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우의와 신뢰’를 확인한 것은 정상 간 ‘친서외교’를 재가동하려는 신호탄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진솔한 소회와 입장도 밝혀왔다고 전했다.

북한이 양면성을 보이긴 했지만, 남북 경색 국면에서 두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것은 긍정적인 신호이다. 정상 간 신뢰와 유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복원에 대한 기대감도 낳고 있다. 두 정상은 과거에도 이른바 ‘톱다운’ 방식으로 돌파구를 만든 전례가 있다. 그동안 네 차례 친서를 주고받았고, 그때마다 남북 대화의 변곡점이 됐다. 친서 교환은 남북 간 소통 채널이 유지되고 있음도 보여준다.

신종 및 변종 바이러스의 수시적 출현은 남북협력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제 감염병은 단순한 질병관리의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안보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상시적 위협으로 다가온 변종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남북 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졌다.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전통안보 위협뿐 아니라 국경을 넘나드는 신종, 변종 전염병과 같은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한 전략적 대응과제가 추가로 던져진 것이다
임 을 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