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22020.04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처절한 아픔을 간직한 설악산 울산바위

우리고장 평화 ROAD

아픔과 희망 공존하는
통일의 관문 강원 고성

설악산과 동해 바다가 곳곳을 채우고 있는 강원도 고성은 대한민국에서 북한과 제일 가까워 뭐든지 ‘최북단’이란 단어가 들어간다. 최북단 마을·항구·어장·초등학교·기차역 등. 강원도 고성에서 5년 여간 직장생활을 하며 많은 추억과 동료들이 있는 나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은 이곳은 어디에서건 설악산과 동해의 푸른 바다를 감상할 수 있고, 발길 멈추는 곳마다 남북 분단의 생생한 현장을 접할 수도 있는 곳이자 대한민국에서 북한 금강산을 가장 가깝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고성에서 유명한 볼거리 중에서 설악산과 민통선 내에 위치해 쉽게 접할 수 없는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내 마음 속에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강원도 대표선수 설악산으로 향했다.

Course. 1 한국전쟁의 격전지, 설악산
설악산은 강원도 속초시·양양군·인제군·고성군에 걸쳐 있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명산이다. 높이는 1,708m로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제2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며,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거대한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척추 부분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직장생활 할 때 마음은 언제나 정상에 있었으나 게으름과 바쁨을 핑계로 두 번밖에 오르지 못했다. 설악산을 한눈에 보기 위해 미시령 옛길로 내려가 화암사 주차장을 통해 한 시간가량 걸어 신선대(神仙臺, 645m)에 올랐다. 오랜만에 찾아온 나를 반기기라도 하듯 때마침 발아래로 가득 찬 운해는 코로나19로 답답하고 힘겨운 나를 무아지경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을 살짝만 걷어내고 설악산 속살을 살펴보면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현장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전투는 1951년 2월 삼척 부근에서 태백산맥을 따라 북진한 국군 1군단 예하 제11사단과 수도사단이 5월 7일부터 6월 9일까지 공격을 계속하여 양양과 간성을 탈환하고, 향로봉 지역의 북한군 제5군단을 격퇴한 전투다. 이러한 사실은 설악동 소공원에 세워진 설악산지구 전적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초록색이라 해야 맞을까? 푸른색이라 해야 맞을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순수의 색으로 물들어 봄을 맞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눈과 가슴 가득 담을 수 있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큰 행운이었다. 아주 먼 옛날 천상의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었던 이곳에서 오늘은 내가 신선이 된 기분이다.
Course. 2 남북의 왕래를 꿈꾸는 남북출입사무소
금강산 전망대 전경
신선대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와 푸른 동해 바다를 끼고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로 달렸다. 파도가 넘실대는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달리면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가 나온다. 전망대에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반드시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10여 분 남짓 안보교육을 받아야 한다. 출입증을 받아 5.7km를 달리면 제진 검문소가 앞을 막는다. 이곳에서 출입증을 제시하고 신원확인이 완료되어야 비로소 민통선을 통과할 수 있다.

민통선을 통과해 통일전망대에 도착하기 전 동해지구 남북출입사무소가 보인다. 이곳은 남북을 왕래할 때 인원·물자에 대한 출입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2003년 9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북한 금강산 육로관광과 각종 남북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는 인산인해를 이뤘던 곳이다. 당시 금강산 관광객은 175만 명이 넘었고 이곳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도 21회 이루어졌다. 2014년 2월, 2015년 10월, 2018년 8월에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 시 현장에서 근무했던 나는 이곳에서 전쟁이 갈라놓은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피부로 느꼈다. 북쪽의 가족과 친지를 만나러 가는 그들의 얼굴은 한껏 들뜬 표정이었으나, 상봉 후 돌아오는 얼굴에서는 슬픔만 가득했다. 아마도 만남의 기쁨을 뒤로한 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생이별 때문이었을 것이다.

Course. 3 한반도 종단철도의 꿈 실현할 제진역
기차가 달리지 않아 철로가 붉게 녹슨 제진역
제진역은 우리나라 동해북부선 최북단에 위치한 철도역이다. 동해북부선은 북한 안변에서 양양까지 192.6㎞로 1937년 12월 개통되었고, 이후 양양에서 부산까지 연결할 계획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이곳에서 양양까지의 철로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드문드문 과거의 흔적만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12월, 남측의 제진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노선이 완공되어 26㎞ 떨어진 북한 금강산 청년역까지 연결되었으나 이후 복잡한 남북관계로 중단되었다. 강릉에서 제진역까지 약 110㎞를 연결할 경우 중국 횡단철도(TCR)나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만나는 한반도 종단철도(TKR)가 완성되는 꿈이 실현된다. 이곳에서 다음 역인 북한 감호역이 불과 1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2007년 5월 북한의 열차가 금강산 청년역에서 출발하여 군사분계선을 지나 남한의 제진역까지 시범 운행을 하기도 했으나 이후로 더 이상 철로를 달리는 기차는 볼 수 없었다.

Course. 4 분단의 아픔마저 아름다운 곳 통일전망대와 DMZ 평화의 길
DMZ 평화의 길 남방 한계선의 금강통문
해발 70m 고지의 통일전망대에서 휴전선까지 거리는 불과 3.8㎞. 잠시면 갈 수 있는 저곳을 70여 년이 지나도록 가지 못하고 그리움만 전하는 분단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전망대 앞으로 자동차 한 대 없는 동해선 남북연결도로가 스산하게 뻗어 있고, 그 옆엔 언제 만날지 모르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말하기라도 하듯 제진역에서 출발한 녹슨 철로가 다음역인 감호역을 향해 나란히 평행선으로 달린다. 그 오른편으론 70여 년의 아픔을 간 직한 철책이 남방 한계선까지 이어져 있다.

2019년 4월 DMZ 평화의 길이 열려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 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철책을 일반 국민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길은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하여 해안 철책을 따라 2.7㎞를 걷다가 해안 철책이 끝나는 금강통문에서 차량으로 갈아타고 금강산전망대를 방문한 후 통일전망대로 복귀하는 총 7.9㎞코스이다. 해안 철책을 따라 걷다 보면 탐방객이 직접 소원을 적을 수 있는 소원 나무가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평화가 경제다’라는 소원 문구도 볼 수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남방 한계선에 도착한다. 과거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있을 때 열렸던 금강통문이다. 이곳은 서해 말도에서 시작한 휴전선 155마일이 끝을 맺고 기약 없이 쉬고 있는 전선의 최북단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옮겨 타고 금강산전망대로 향한다. 금강산전망대는 우리나라에서 북한 금강산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중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에는 천상에서 아홉 명의 신선들이 내려와 너른 바위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있다. 그 앞 호수는 구선봉과 주변 경관이 선명하게 보이는 감호이며, 작은 섬들이 촘촘한 푸른 바다는 바다의 금강산인 해금강이다.

아쉽게도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10월부터 통일전망대와 DMZ평화의 길 운영이 중단되어 현재 탐방은 할 수 없고 언제 열릴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오랜만에 찾은 상처 많은 도시, 그러나 희망이 싹트는 도시. 통일의 관문 고성에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을 보며 하루빨리 이 어려운 국난이 극복되고 마음껏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DMZ 평화의 길 소원나무
+ Information
설악산(신선대) :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화암사 주차장 → 약 2km, 도보 50분 소요
통일전망대(출입신고소)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로 481
※ 남북출입신고소는 통일부 홈페이지에서 별도의 출입신청을 해야 한다.
남북출입사무소(제진역)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사천리 223
DMZ평화의 길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로 481
※ DMZ평화의 길은 탐방 재개 시 한국관광공사 두루누비 홈페이지에서 탐방 신청을 한다.
박 성 우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