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32020.05

지난 4월 11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에서 코로나19 의료진을 격려하기 위한 ‘재택 콘서트’가 열렸다. ⓒ연합

특집 1

코로나19와 변화하는 세계질서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각자도생, 전략적 자율성, 국제협력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들려오는 코로나19 소식은 이제 일상적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국내외의 크고 작은 코로나19 소식을 접하면서 향후 우리 삶의 방식이 지금과 어떤 차이와 변화를 보일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코로나19 이후 다가올 세상(World on the Horizon)의 모습을 전망하고 있다. 작금의 사태가 누군가의 지적처럼 코로나19 이전의 세계(Before Corona)와 이후의 세계(After Corona)를 논의할 정도로 역사적 분기의 잣대로 작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원심력 작동과 세계 경제권 분할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전망가운데 지금보다 상당히 축소된 세계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내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집회나 모임 금지, 격리, 봉쇄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상호 왕래를 자제·금지시키고 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전환기에 강하게 휘몰아친 세계화의 물결로 오늘날의 지구촌은 하나의 공간으로 촘촘하게 연결돼, 상호의존도가 그 어느때보다도 높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계기로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던 상호 의존망이 단절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국경 내부의 문제에 더 치중하는 축소지향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은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의 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세계는 미·중 무역 전쟁과 다가오는 제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이미 경제적으로는 위기에 봉착해 있는 상태였다. 코로나19는 많은 부분에서 글로벌 공급망 단절을 가져왔으며, 경제적 위기를 증폭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다단계와 다국적 제조업 공급망의 급격한 단절은 세계 자본주의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작용하도록 추동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에는 미국경제, 중국경제, 유럽경제 중심의 경제적 분할권이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각자도생, 전략적 자율성, 그리고 국제협력 간의 경쟁과 타협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다가올 세상에서 국제정치나 국제관계의 일반적인 흐름과 양상은 어떨까? 이와 관련해서도 세계의 주요 학자나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강대국 간 경쟁이 종식되지 않으며 새로운 국제협력 시대를 촉진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전망부터, 국제사회의 힘과 영향력이 서방에서 아시아로 전이되는 현상의 가속화, 미국의 리더십 회복과 국제주의의 부활,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와 양국의 국제적 책임 방기, 유럽연합의 통합력 약화, 전략적 자율성 강화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고자 하는 국가들의 증대에 이르기까지 팔색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다가올 세상에서 국제정치나 국제관계의 변화는 코로나19보다는 21세기 들어와 일관되게 지속되었던 ‘힘의 전환과 분산화’라는 흐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이러한 흐름을 보다 재촉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흐름에서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각자도생, 전략적 자율성, 국제협력이다. 이들 간의 경쟁과 타협이 코로나19 이후 세계질서의 형상을 주조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2020.04.26. WTO 기준)
역설적 국제관계의 도래
먼저, 각자도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한 국가들이 향후 국제적 협력보다는 국익 중심의 선택적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전망이나 진단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16년 6월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한 영국의 국민투표와 그해 11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대외정책기조로 내세운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앞으로의 국제관계에서는 각자도생의 생존논리가 보다 강화될 것이 예견되었다.

필자는 2016년 11월 ‘트럼프의 외교정책기조와 한미동맹’ 제하의 논평에서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등장으로 국제사회에서 각자도생의 생존논리가 강화되어 지역질서와 국제질서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각자도생의 생존논리 강화를 넘어 지역정세와 국제정세의 변화 흐름을 역류시킬 가능성마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근대 국제관계가 시작된 이후 역사의 조류는 국가화(Nationalization)를 넘어 지역화(Regionalization)와 세계화(Globalization)로의 흐름이자 국제협력의 다자적 제도화의 과정이었다. 브렉시트, 미국 우선주의와는 별개로 코로나19 이후 도래할 각자도생의 세상은 국제협력에 필요한 다자주의의 공간이 줄어드는 동시에 다자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는 역설적 국제관계(Paradoxical World)를 만들어낼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국가들의 국내외 정책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중에서도 코로나19와 같은 질병, 보건, 방역 등 신흥안보위협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처하기 위한 협력 방식 등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할 것이다.


영국이 지난 1월 31일 오후 11시를 기해 유럽연합을 공식 탈퇴하자 런던 의사당 인근 의회광장에 모인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하며 각 국가들이 국제적 협력보다 국익 중심의 선택적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합
‘G-Zero 시대’와 국가들의 전략적 자율성 증대
다가올 세상에서 두드러질 현상 중 하나는 국가들의 전략적 자율성 증대일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전망하는 다수의 전문가들은 세계가 축소될 것이며, 국가들은 국경 밖의 문제보다는 국경 안의 문제에 더 집중하는 내부지향의 입장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국가들의 내부지향적 성격 강화는 이미 진행 중인 힘의 구조적 전환 및 분산과 결합하면서 지역적 국제질서의 독자성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세기에 목격했던 것처럼 체제의 강한 압력이 덜 작용하기 때문에 지역 단위 국가들의 전략적 자율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과거처럼 주요 강대국이 지역적·국제적 정세를 관리하면서 국제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지도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브레머(Ian Bremmer)는 이러한 상황이 도래할 것을 예견하여, 오늘날의 세상을 국제관계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국가나 국가들의 연합이 존재하지 않는 ‘G-Zero 시대’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는 기존의 패권국 미국이나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 모두 다자협력을 필요로 하는 국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뿐더러, 어느 국가도 지구적 공공재를 기꺼이 책임질 의지가 없기 때문에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사태는 G-Zero가 이미 도래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미군을 지목하는 중국의 입장과, G7 외교장관회의(3월 25일) 공동성명에서 코로나19 명칭을 ‘우한 바이러스’로 명기하자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공세 등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책임 있는 역할과 국제협력을 유도하기보다 문제를 서로의 탓으로 돌리면서 G-Zero 시대의 도래를 더욱 앞당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G-Zero 시대에서는 특정 국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지양하고 여러 국가들과 선택적 협력을 지향하면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전략적 자율성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국제협력의 구심력 약화와 국제사회의 복원력 불투명
다자제도를 통한 국제협력에 대한 전망 역시 어두워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국제협력 전통을 강조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리더십 회복과 새로운 다자제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다가올 세상에서 국제협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20세기 중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제협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연합은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주었다.

우리는 뜻하지 않은 돌발 위기를 맞았을 때 통합, 연대, 다자협력이 얼마나 힘들고 취약하고 형식적인지 목격했다. 국제협력의 강화 또는 회복은 다가올 세상에서 바로 나타날 모습이 아니며, 그 가능성은 코로나19 이후 국제사회의 복원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가올 세상에서의 국제협력에 대한 전망은 경제권 분할, 각자도생, 전략적 자율성 증대 간의 역학관계와 기존 다자제도의 현실 적응력, 새로운 다자제도의 신속한 구축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국가들의 국내외 정책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중에서도 코로나19와 같은 질병, 보건, 방역 등 신흥안보위협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처하기 위한 협력 방식 등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할 것이다. 대다수 국가들의 대외정책 역시 많은 변화를 보일 것이며, 저마다 새로운 대외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가들은 국내환경과 지역정세에 따라 전통안보와 신흥안보, 국가안보 예산(국방비)과 사회안전 예산(복지비)을 둘러싸고 사회적 타협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논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이 수 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학술협력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