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코로나발
재난자본주의를 넘어
4월 19일 현재,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224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15만 명이 넘었다. 한국에서는 열흘째 새로운 확진자가 하루 50명 이하로 발생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여전히 확진자는 증가 추세에 있다. 확진자가 100만 명이 넘었던 것이 4월 3일이었으니, 2주 사이에 2배가 넘게 증가한 것이다. 이제는 감염병이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19로부터 유발된 경제위기가 사람들을 더 심란하게 한다. 시민의 이동이 제한되고, 심지어 도시가 봉쇄되기도 하면서 세계적 수준에서 생산과 소비 모두 치명타를 입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쉽게 종식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지배적이다. 생산과 소비가 회복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미 잔뜩 곪아 있던 세계경제가 이 충격을 이겨내지 못 하리라는 전망이 다수다. 고실업과 초저성장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 한다. 경제 위기 자체에 대한 분석과 전망은 역량과 범위를 벗어난다. 다만 노동자의 권리와 건강을 다루는 활동가로서,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 노동자 건강과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아프면 쉴 권리, 모두의 건강 위해 필요
감염학회 등 관련 학회들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단계이던 2월 22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지역사회 확산 피해 최소화를 위한 권고안」에서 ‘노동자들의 경우 호흡기 증상이 의심되면 진단서를 내지 않고 쉴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3월 16일 브리핑에서 “아파도 나온다는 문화를 아프면 쉰다로 바꿀 수 있도록 근무형태나 근무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앞으로도 얼마나 더 유행할지 모르고, 이런 식의 신종 감염병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도 이 시대의 ‘뉴 노멀’ 중 하나라고 한다. 여기에 맞춰 ‘생활방역체계’라는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려면 꼭 필요한 변화다. 유증상자가 진단서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거나, 아파도 참고 일하러 나가면 동료를 포함한 지역사회에 전파 위험이 높아진다. 수도권 지역에서 처음으로 집단 감염이 발생했던 구로구 콜센터의 경우도 증상이 있는 노동자가 쉬지 못하고 일하러 간 데서 전파가 시작됐다. 평소 감기나 독감 등으로 몸이 불편해도 참고 일하러 다니는 것이 일상이던 한국 사회의 노동 문화에서 바이러스는 더 큰 전파력을 가진다. 노동자가 자신의 몸상태를 스스로 판단하고, 쉴 수 있는 권리는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직장 문화, 노동 관행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4월 14일~16일 직장인 3,78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3.4%는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1) 단순히 노동문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응답자의 91.6%는 ‘아프면 3~4일 집에서 쉰다’는 생활 방역 수칙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급여를 받지 못해도 집에서 쉬겠다는 응답자는 절반이 되지 않았다. 35.3%는 월급이 깎인다면 출근하겠다고 했다.
1) 뉴스1, 직장인 절반 “코로나 의심돼도 못 쉬어... 유급병가 필요”, 4월 19일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일을 하다 다치거나 앓게 될 때 요양에 필요한 비용 외에 따로 지급되는 수당으로, 질병과 실업이라는 복합적인 위험에 처한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52년부터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최저기준)」을 통해 상병수당 관련 규정을 제시하고, 이를 각 국가에 권고하고 있다. OECD 대부분의 나라에서 병가에 대해 공적 현금을 지원하거나, 최소한 노동자 병가를 지원하는 공적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2)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해고나 차별의 두려움으로 노동자들이 상병의 사실을 숨기고 일터에 나섰을 때 개인과 사회의 건강이 어떻게 위협받는지 배웠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2) 김기태, 이승윤, 한국 공적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제도 비교연구 및 정책제언, 사회복지정책, 2018
지난 3월 30일 긴급돌봄교실 교사가 원아의 체온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
보호가 미치지 않는 곳
병가보장, 해고금지 등의 보호망을 확충하라는 주장 조차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드러난 것도 코로나19 국면의 중요한 교훈이다. 감염병 유행 초반부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특수고용’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인 고용주가 고용관계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왔지만, 이런 재난 상황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 책임은 사각지대에 남겨진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보험설계사, 대리운전 기사, 방과후학교 교사 등의 ‘일하는 사람’들은 작은 보호구 하나도 스스로 마련해야 했고, 회사 정책에 따라서 대면 업무를 줄였더라도, 경제적 손실 책임을 모두 스스로 짊어져야 했다. 특수고용노동자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매장 점주들도 마찬가지다. 메뉴나 인테리어, 운영 시간까지 어느 것 하나 자유롭게 운영할 수 없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발생한 손실은 고스란히 대리점 ‘사장님들’에게 돌아간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문재인 정부 코로나19 대응 비판」을 통해,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 지원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에 비해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 대책은 매우 부실하다’고 비판했다.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대책에 새롭게 증액된 예산 규모는 모두 합해서 1조 5,783억 원에 불과하다.3) 게다가 고용충격에 대비한 대책도 기존의 고용유지지원금과 일자리안정자금을 확대하는 방식이어서, 해당 제도의 문제점이 그 대로 반복되고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취약계층 노동자 들이 지원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고용보험 미가입자, 특수고용 노동자,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적 혹은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 한다.
3) 민주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2020-06, 문재인정부 코로나19 대응 비판, 4월 13일
코로나19로 휴업·휴직이 늘어났다. 4월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일시휴직자는 1982년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대인 160만 7,000명으로 폭증했다. 사진은 같은 날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상담창구 ⓒ연합
한국판 재난자본주의의 위협
그런데도 경총과 전경련은 지난 3월 말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제언’을 통해, 일상 해고를 포함한 노동유연화와 법인세·소득세·상속세 인하 등 기업 비용 축소, 규제 완화 등을 요구했다. 한국판 재난자본주의다.
책 『쇼크 독트린』은 전쟁, 자연재해 등과 같은 재난이 사회를 덮쳐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자본은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약탈 행위를 하는 과정을 냉정하게 보여준다.4) 저자는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도 쇼크 독트린의 일환이었다고 본다.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로 ‘쇼크’를 받은 한국은 “개방하고 민영화해야 국가 부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를 ‘쇼크 독트린’으로 받아들인다.
4) 나오미 클라인 저, 김소희 옮김. 『쇼크독트린』 살림. 2008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확대, 상시적 구조조정과 불안정 고용이 한국사회의 ‘정상’이 되었다. 구조조정 후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1998년 크게 증가한 자살률은 20년째 떨어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니 화상회의니 세련된 ‘일의 미래’가 도래할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벌써부터 제2의 쇼크 독트린을 들이미는 경총과 전경련을 보면 장밋빛 미래는 가당찮다. 저성장은 모두의 저성장이 아니라, 불평등이 확대되고 저소득층의 불안정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벌써 최상위 소득자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급여가 유지되고, 저소득 노동자들은 일자리 자체를 잃는 상황이다. 대형차와 백화점 명품관의 소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기사도 났다. 게다가 정부의 재난지원정책이 재계의 이해를 지키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이런 경향은 더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이 시대에 위험이 전 지구적 규모로 커졌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위험이 근대 산업사회 발전과 함께 커 왔기 때문에 근대화의 발전 경로 자체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 벡에 따르면, 이런 근본적인 성찰은 그동안 위험을 키우면서 근대화를 밀어붙여 온 ‘산업계·경제계’에서는 할 수 없다. 코로나19와 이에 뒤따르는 충격 때문에 ‘위험’을 겪고 인지하는 사람들만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기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 이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코로나19 이후 한국사회 노동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5) 울리히 벡 저, 홍성태 옮김, 『위험사회』 새물결. 2006
최 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