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아카이브
대북인도개발협력 역사와 새로운 길
남북이 함께 만든 길
더욱 단단하게 다져나갈 것
남북 민간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990년대 후반, 민간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첫 걸음을 내딛었다. 그 동안 남북관계의 부침 속에서 인도지원 사업은 가다 서다를 반복해왔지만 많은 단체들은 민족의 화해와 한반 도의 평화 공존을 위한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또다시 찾아온 소강상태의 남북관계 속에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이하 북민협)는 한반도 평화구축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인도지원개발협력을 고민하며, 이를 빠른 시간 안에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북 인도지원과 북민협 활동
1995년 북측이 국제사회에 인도지원을 요청하면서 남측에서도 북한 주민들을 위한 지원이 본격화됐다. 1999년 김대중 정부의 창구 다원화 조치로 대북지원이 활성화되며 각 단체는 그 나름대로 지원분야를 특화하며 지원의 전문화와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조치를 계기로 1999년 4월, 민간단체 간 상호협조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의 구 명칭)가 구성됐다.
북한 주민들을 위한 긴급구호 성격으로 시작된 남측의 인도지원은 2000년대 중반 북측의 자생력을 강화하는 개발협력사업으로 발전했다. 남측의 인도지원 단체들은 북측과 협력하여 농업, 축산, 보건의료, 교육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전문적으로 추진했고, 2006년부터는 각각의 전문성을 가진 단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 북측의 특정 지역에서 종합개발사업을 펼쳤다.
북민협은 대북인도개발협력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간단체 간 협력을 강화하고, 민관협력의 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2004년 4월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때 북민협은 ‘북한 용천역폭발사고 피해동포돕기 운동본부’를 결성, 신속하게 대응했다. 이후에도 수해나 전염성 질환 등 북측에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북민협 차원의 공동 대응으로 민간협력의 틀을 유지해오고 있다.
2001년 2월 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전신) 창립기념식
2004년 9월에는 인도지원개발협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대북지원민관정책협의회’를 구성하는 등 민관협력체계를 마련했다. 민관은 실제로 합동사업1)을 기획, 시행했고, 용천 사고와 같은 긴급 상황과 자연재해 등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민관의 역할과 절차를 담은 ‘대북지원 긴급구호 매뉴얼’을 만들었다.
1) 합동사업은 개별 사업의 전문성을 가진 민간단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 북측 특정 지역에 농업, 보건의료, 교육 등 포괄적 지원을 하는 종합개발협력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북민협의 이러한 활동은 보수정부 들어 제약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인도개발협력사업은 상당히 축소됐고, 민간의 자율성도 많이 훼손되었다. “남북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지원은 지속한다”는 원칙과 달리 실제로 인도지원은 남북관계의 협상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개발협력사업은 중장기 계획 아래 체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함에도 보수정부의 이런 입장으로 인해 민간차원의 발전적인 인도개발협력사업 추진은 불가능했다.
보수정부를 거치면서 북민협은 인도지원개발협력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지난 시기 시급한 인도지원개발협력에 집중한 나머지 인도지원개발협력사업의 제도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음을 반성했다. 이에 북민협은 「남북한 간의 인도지원과 개발협력에 관한 법률안」 제정 등 인도지원개발협력사업의 제도화와 법제화를 시도했다.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정부 및 국회에 대한 대북지원 옹호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북민협 실무자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의 역량을 키우고, 사회적 협약 제정 등을 통해 인도개발협력 사업의 윤리적 강령 실천을 스스로 강화하고자 했다.
20년간의 북민협 활동은 1차적으로 식량난으로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남과 북이 가진 서로에 대한 불신의 장벽을 걷어내고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인도협력사업 추진을 위해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북측을 방문, 접촉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했고, 남북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다름’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이것은 인도적 문제 해결을 넘어 남북의 공존 방안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고민해보는, 한반도 통합을 준비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2004년 4월 용천역폭발사고피해동포돕기운동본부 기자회견
북측의 변화와 인도지원개발협력사업 현황
2018년 판문점선언은 북민협 차원의 인도협력사업을 재개하고 각 단체들이 현장 방문과 사업 협의를 진행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오랜만에 방문한 북측의 모습을 보고, 실무협의를 진행하며 북측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남측이 제안한 사업에 “이 사업이 남측에 주는 이익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네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북측은 더 이상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인도지원개발협력을 추진할 것을 명확히 했다. 앞으로의 인도지원개발협력은 인도지원을 넘어 경제협력, 사회적 경제 방식이 결합된 개발협력 방식으로 추진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인도지원개발협력에 대한 북측의 입장변화로 남측 민간단체는 사업 내용과 추진 방식의 새로운 접근을 고민하고 기획 하게 되었다. 이는 북측의 변화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인도지원개발협력에 대한 남측의 정서도 매우 달라졌다. 과거에는 인도적 목적에 무조건적 동의를 했다면, 지금은 남과 북에 모두 도움을 주는 방식과 내용으로 협력사업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남과 북의 변화로 북민협은 새로운 형태의 대북인도개발협력 방향과 추진 원칙, 내용을 구상하고 있다. 인도지원개발협력의 재개라는 2018년의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해외동포나 제3자 합의를 통한 인도지원개발협력은 진행하고 있으나 남과 북이 직접 합의서를 체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인도협력은 그 자체로의 목적뿐만 아니라 남북한 통합과 공존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의 목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직접 사업 추진을 통해 남측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북측과 접촉하고, 그 과정에서 남북이 어떻게 통합을 준비할 것인가를 실질적으로 고민하고 준비하 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즉, 남북 직접 사업과 다양한 채널을 통한 인도지원개발협력이 병행 추진될 때 한반도의 통합과 북측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남측이 제안한 사업에 “이 사업이 남측에 주는 이익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네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북측은 더 이상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인도지원개발협력을 추진할 것을 명확히 했다.
2019년 1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정기총회
정보 공유, 협력 강화, 제도화로 단단한 토대 마련
최근 북민협은 사단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북민협은 독자적인 대북사업을 펼치지 않고, 개별 단체들이 인도지원개발협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 지역의 평화구축과 병행되지 않은 개발협력, 인도지원 사업은 투입 대비 사업의 효과성이 현저히 낮고, 한계점이 명확하다고 한다. 즉, 앞으로는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인도지원개발협력이 무엇인지, 남북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원칙과 추진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개발협력, 인도지원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북민협은 첫째, 한반도 평화구축에 기여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인도지원개발협력이 무엇인지 연구할 것이다. 둘째, 공식적인 법적 지위를 가지고 민관협력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인도지원개발협력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제화와 제도화를 추진할 것이다. 셋째, 인도지원개발협력이 한반도 평화구축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 알리고, 국민들은 어떤 인도지원개발협력을 희망하는지 의견을 듣기 위한 다양한 옹호사업과 국제연대를 강화할 것이다. 넷째, 민간에게 부여되는 자율성과 비례해 사업의 투명성 확보, 북측의 책무성 강화 등 절차적 정당성과 윤리적 책임을 우리 스스로 더 강하게 인지·실천하는 사회적 협약, 윤리강령 등을 마련, 실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회원단체들이 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여 역량을 강화할 것이다.
2019년 5월 대북지원민간단체 실무자 역량강화 워크숍
가파르고, 잘 보이지 않던 과거 남북은 손을 맞잡고 함께 걸으며 인도협력의 길을 만들었다. 변화된 환경과 불투명한 남북관계 속에서 새로운 길에 대한 막막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민협에게는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걱정하고, 희망을 품고 있는 북측의 파트너가 있다. 남북의 정치적 상황이나 국제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지원개발협력을 협의하고 추진할 수 있는 2020년 희망의 길을 기대한다.
최 혜 경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 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