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32020.05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우리고장 평화 ROAD

시민의 힘으로 만든 역사가 담긴
광주광역시

40년.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1980년 5월, 군부독재의 무자비한 학살로 붉게 물들었던 광주는 눈물과 투쟁으로 점철된 그 오랜 시간을 견딘 뒤에야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 아침에 시작돼 27일 새벽에 막을 내린, 열흘 동안의 역사다. 그 열흘 동안 고립무원의 광주는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죽음 앞에서 너와 내가 하나 된 공동체 의식으로 똘똘 뭉쳤다. 항쟁은 끝났지만 그 흔적은 길로 남았다. 치열한 역사의 교훈을 간직한 현장을 따라 ‘광주의 오월’을 걷는다.

Course. 1 항쟁의 불씨가 도심으로 번져간 오월인권길
1980년 5월의 광주와 함께하는 길이 있다. 바로 ‘오월길’이다. 당시 광주시민들이 군부독재의 총칼 앞에 죽음으로 맞서 싸웠던 역사가 살아 있는 길이다. 광주 역사의 현장 곳곳을 지나는 ‘오월길’은 오월인권길, 오월민중길, 오월의향길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오월인권길 안에 있는 횃불코스는 민주화운동의 시발지인 전남대 정문에서 계엄군의 무력 진압으로 총성이 난무했던 옛 전남도청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해마다 5월이 되면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출발지인 전남대 정문은 5·18 민주화운동의 최초 발원지다. 대학 정문 안에는 이곳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시발지임을 알리는 사적비(1호)가 서 있다. 1980년 5월 17일 밤, 전남대에 들어온 계엄군은 도서관 등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들을 이유 없이 구타하고 불법 구금했다. 계엄군은 18일 아침 학교에 등교한 학생들까지 정문 앞에서 무자비하게 강제 해산시켰다. 이에 학생들 이 항의하면서 항쟁의 불씨가 됐다.

전남대학교 정문
전남대 정문에서 800여 m를 걸으면 광주역이 나온다. 당시 광주시민과 계엄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20일 밤 광주역에 주둔해 있던 계엄군이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쏴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고, 21일 아침 주검 2구가 발견됐다. 전남도청 앞 광장으로 주검을 옮겨오자 이 소식을 들은 시민 수십만 명이 민주화운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항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발걸음은 이제 옛 광주시외버스 공용터미널로 이어진다. 지금 광주은행 본점이 들어선 이곳은 당시 전남 일원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19일 오후 계엄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는데, 계엄군은 대합실과 지하도에까지 난입해 시민들에게 총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이곳은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 소식은 시외버스를 타고 전남지역으로 나간 사람들에 의해 곳곳에 전파돼 항쟁이 남도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이제 금남로를 향해 발길을 옮겨보자. 최후의 결사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 자리가 최종 목적지다. 이곳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학생수습위원회가 활동했던 곳으로 시민공동체의 중심이었다. 또한 이곳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맞서 싸운 시민군의 최후 결사항전지로, 마지막 항쟁에서 수많은 시민군들이 산화했던 곳이기도 하다.

근처의 5·18민주광장이나 광주YMCA, 옛 상무관, 금남로 등 발길 닿는 곳이 모두 역사의 현장이다.
Course. 2 광주의 현대미술과 공공예술을 한 눈에 보는 오월예술길
예술의거리 ⓒ한국관광공사
광주를 흔히 ‘예향’이라 말한다. 예술의 본향, 예술의 향기가 넘쳐나는 고장이라고 자타가 공인한다. 거리 곳곳이 각종 예술품으로 장식돼있어 거리에서도 예술의 향기에 취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오월예술길을 따라 걸어보자.

광주 예술산책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시작한다. 세계적인 미술제전인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과, 5·18 민주화운동 이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광주의 민주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해 1995년 창설됐다. 그 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광주비엔날레는 여러 민족, 국가, 문화권 간의 문화적 소통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 광주비엔날레를 원동력 삼아 문화·민주도시 광주는 한국-아시아-세계와 교류를 넓혀 나가는 국제 현대미술의 발신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근처에 자리한 중외공원은 광주의 문화벨트다. 국립광주박물관·문화예술회관·광주시립미술관·시립민속박물관·비엔날레 전시장 등이 들어서 있다. 중외공원에는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 설치한 무지개다리가 있고 회관을 중심으로 마련된 전시실과 체육시설 등에서 공연, 전시, 체험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광주 예술의 최대 거점은 예술의 거리다. 금남로 상권에 인접한 궁동 중앙로 초입에서 동부경찰서까지 연결되는 300m 구간은 90여 개의 전통 공예방과 화랑 등점포들이 밀집해 있다. 1987년 공식 지정된 예술의 거리에서는 미술품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많은 예술극장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진행된다. 오월예술길의 피날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장식한다. 아시아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이곳 문화전당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2023년 완성된다.

현재 전당 안에는 아시아 문화자원 교류 및 예술 창작 공간, 어린이 콘텐츠 프로그램 운영 등을 위한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문화정보원, 어린이문화원 등 5개 시설이 조성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토대로 광주는 아시아 문화수도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Course. 3 시민의 힘으로 얻어낸 푸른길 공원
전남도청 앞 광장
민주·인권의 도시, 광주에는 시민들의 자긍심이 가득한 길이 있다. 이름하여 푸른길 공원. 광주시민들은 이 길을 스스로 지켜냈다는 사실을 서슴없이 자랑한다.

지금은 푸른길 공원이라 불리지만 예전에는 경전선 철로였다. 광주역에서 풍향동을 지나 산수동~남광주역 ~진월동을 거쳐 효천역에 이르는 10.8km의 경전선 철길은 1922년 개설된 후 70여 년 동안 숱한 사연을 안고 기차가 오갔지만 2000년 8월 10일 폐선되며 그 역할을 마감했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철도가 도시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면서 외곽으로 물러나는 운명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기찻길로서의 생명을 다한 이곳은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광주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삶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디를 가든, 기차가 다녔던 가난한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숲이 우거지고 시민들로 가득한 새로운 땅으로 천지개벽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행정당국 입장에서 이곳은 금싸라기나 다름없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광주시는 이곳을 경전철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 같은 행정기관의 계획에 맞서 시민들과 환경단체에서는 푸른길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여 동안 시민들의 일관된 목소리가 이어지자 결국 광주시는 이곳을 공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전체 길이 10.8km 폐선 가운데 외곽순환도로가 가로막은 일부 구간을 제외한 7.9km의 푸른길 공원이 탄생했다. ‘시민참여 도시계획 결정의 첫 사례’였다.

푸른길 공원
2003년 푸른길 조성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시민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공원 조성사업에 동참했다. ‘푸른길 100만 그루 헌수운동’을 벌이고 직접 설계에 참여하며 공원 조성에 땀을 보탰다. 광주시도 이런 시민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민관이 손을 잡고 일을 추진하면서 푸른길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폐선부지가 푸른길로 바뀌면서 주변이 함께 변화했다. 기적소리 대신 새소리가 들려오고, 뒷골목처럼 음습했던 주택가는 푸른길에 어울리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는 운동기구가 설치된 곳에서는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오늘도 시민들은 이 길을 걷는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얘기가 피어오른다. 그러면서 그 길은 역사가 된다. 철마는 과거가 되고, 사람들은 또 하나의 역사를 시작한다. 푸름을 가득 안고, 푸른길 공원에서 평안한 휴식을 꿈꾼다.
+ Information
오월인권길(6.7km) : 전남대 정문~광주역 광장~시외버스공용터미널~5·18 최초발포지~금남로(5·18기록관, 광주YMCA, 구 상무관)~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
오월예술길(7.7km) : 비엔날레 전시관~중외공원문화벨트~예술의 거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푸른길 공원(7.9km) : 광주역~조선대 정문~남광주 사거리~백운광장~동 성중학교
이 경 수 광주매일신문 전무이사,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