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1
글로벌 방역과 한국의 역할
글로벌 보건안보 역량 갖춘 한국
국제적 보건·의료 리더십 펼칠 때
코로나19로 전 세계는 심각한 보건안보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감염병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으리라고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인적·물적 자원의 이동이 자유로운 세계화 시대에 감염병은 이에 속수무책인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감염병의 전파 속도와 규모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그 피해는 개별 국가의 방역체계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에 피해 집중된 코로나19, 그 원인은?
코로나19는 현재(4.18. 기준) 전 세계적으로 220만 명에 육박하는 확진자와 15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초래하며 국제사회에 과제를 던지고 있다. 세계 지역별 확진자 수는 유럽 109만 명, 미주 79만 명, 서태평양(한국 포함) 13만 명, 동지중해 12만 4,000명, 동남아 2만 6,000명, 아프리카 1만 3,000명으로 선진국에 그 피해가 집중되어 있다. 또한 국가별로는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영국, 프랑스, 중국, 이란, 터키, 러시아, 벨기에, 캐나다 순으로 확진자가 많다.
사망자 수도 유럽 9만 7,000명, 미주 3만 5,000명, 서태평양(한국 포함) 5,600명, 동지중해 5,800명, 동남아 1,100명, 아프리카 600명 수준으로 북반구의 인명피해가 큰 상황이다. 국가별 사망자 수는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영국, 벨기에, 이란, 중국, 독일, 네덜란드 순으로 강국이 대부분 포함됐다. 이는 일반적인 감염병과는 달리 코로나19는 방역체계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선진국에도 많은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방역체계의 한계가 그 이유가 아니라면 다른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는 GDP 중 보건예산비율과 1인당 보건예산액 등에 있어서 단연 앞선 국가들이고,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및 간호사 수에 있어서도 좋은 보건·의료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들 국가는 이탈리아(31위)를 제외하면 2019년 글로벌보건안보지수(Global Health Security Index)에서 세계 195개 국가 중 Top20 안에 드는 국가들(미국 1위, 영국 2위, 캐나다 5위, 프랑스 11위, 독일 14위)이다. 이는 그 원인을 개별 국가의 내적 방역체계와 함께 다른 곳에서도 찾아야 함을 시사한다.
자료 : 2019년 글로벌보건안보지수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국내 방역만으로 감염병을 퇴치할 수 없다는 점과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한다는 점이 감염병레짐의 현실적 한계로 부각되면서, 오늘날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협력 없이는 감염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기존의 보건레짐이 선진국과 개도국 간 수직적(시혜적) 협력의 성격을 띤다면 감염병레짐은 양 국가군 간 수평적(호혜적) 협력의 성격을 지닌다. 이는 감염병에 대한 대응방안이 기존의 보건레짐과 달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확인 감염병 발생 시 의료 및 보건안보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최선의 해법은 ‘초기 봉쇄(Blockade)’인데 국제사회는 코로나19 대처에 있어서 한계를 보였다. 즉 강대국이 발병국이고 보건주권을 강조할 경우 초기에 대응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반면 약소국이 발병국일 경우 국제사회는 발병국을 봉쇄하는 등 즉각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수월해 조기 차단이 가능하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은 강대국인 중국이 발병 후 즉각 보고도 하지 않고, 국내적 해결을 모색하다가 감염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보건안보에서 리더십 갖춘 한국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하여 우리나라는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G20 국가 중 가장 모범적인 상황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방역체계, 즉 보건의료체계가 이를 가능하게 했음은 자명하다. 우리나라는 보건안보에 관한한 ‘역량’과 ‘의지’를 갖춘 나라이다.
역량면에서는 글로벌보건안보지수가 보여주듯이 우리나라는 세계 195개국 중 9위이고, G20 국가 중에서는 5위이다. 특히 감염병 감지·보고 및 즉각대응 능력에 있어서는 세계 Top5 수준이다.
보건·의료 의지도 선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감염병에 대한 인식은 공중보건(Public Health)에서 국제보건(International Health)으로, 나아가 글로벌보건(Global Health)으로 진화하고 있다. G20 국가 중에서는 아직 공중보건 수준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글로벌보건 수준의 인식을 하는 국가도 있다. 한국은 글로벌보건 개념에 기초한 인식과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는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인 고(故) 이종욱 박사의 공헌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최초의 아시아계 세계은행(World Bank) 총재인 의사 출신 김용 박사의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기여 역시 한국의 리더십을 더해준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2015년 9월 서울에서 글로벌보건안보 구상(Global Health Security Agenda) 두 번째 회의를 개최하고 ‘서울선언문’을 채택함으로써 그 역량과 의지를 입증한 바 있다. 아울러 1997년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 설립을 주도하고 1999년에 서울대학교 내에 사무소를 개소함으로써 한국이 주관하는 최초의 국제기구를 유치했다. 현재 사무총장도 한국계인 Jerome H. Kim(김한식) 교수가 맡고 있다. 이렇듯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보건·의료 분야 리더십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국제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국가 간 갈등이 아닌 공동체적 협력만이 국제사회의 살 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닫힌 사회가 아닌 열린 사회로의 이행만이 밝은 미래를 보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앞으로 더 심한 감염병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국제사회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코로나19 방역·위생 모범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산 제품의 수요가 급증했다.
사진은 지난 4월 6일 한 대형마트의 위생용품 판매대 ⓒ연합
코로나19로 드러난 협력의 한계, 우리의 국제 보건·의료 리더십 보여야
글로벌보건안보지수에 의하면, 한국(9위)은 일본(21위)과 중국(51위)에 비해 앞서 있다. 중국은 G2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보건안보 수준이 낮으며, 특히 국제규범 준수 부문에 있어서는 세계 195개국 중 141위이다. 일본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우수하나 감염병 예방에 있어서 취약함을 드러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가장 안타까운 점은 중국에서 발생한 감염병에 대한 초기 대응에서 보여준 동북아 3국의 비협력적 태도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국제 보건·의료 리더십을 보여야 할 때이다. 동북아는 물론 G20, 나아가 국제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국격을 높일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결국 한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감염병의 시대를 겪으며 대내외적으로 장벽을 경험하고, ‘닫힌 사회’로의 이행을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국가 간 인적·물적 이동을 제한하고 전 세계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면서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스크 수급을 둘러싼 국내외적 갈등, 국제분업체제에 타격을 주는 생산체계 마비 등이다. 이것이 향후 국제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3월 27일 방호복과 진단키트를 루마니아로 수송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착륙한 나토 수송기에 물품이 실리고 있다. ⓒ연합
이제 우리의 과제는 ‘미래의 국제관계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이다. 열린 서구사회가 난민 문제와 코로나19로 내부 갈등을 경험하면서 닫힌 사회로 이행할지도 모른다. 이미 열린 사회의 리더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닫힌 사회로의 이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둘러싼 인접국과의 갈등, 코로나19에 따른 국내적 인종·계층 갈등 등이 그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열린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인 다자주의·규범주의가 약화되고 닫힌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인 양자주의·협상주의가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향후 열린 사회 대 닫힌 사회 간의 갈등,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 등이 우려된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국제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국가 간 갈등이 아닌 공동체적 협력만이 국제사회의 살 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닫힌 사회가 아닌 열린 사회로의 이행만이 밝은 미래를 보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앞으로 더 심한 감염병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와 국제사회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보건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G7 국가를 중심으로 한 G20 국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G20 국가는 기존 강대국에 지역거점국가가 참여하는 형태의 레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감염병 등 보건안보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그 역할이 기대되는 국가군이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한국의 방역모델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 우리는 보건안보 역량을 갖춘 중견국으로서 G20 국가 간 간극을 연결하는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의 전 세계적인 보건안보 위기를 한국의 국격을 제고하고 향후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상 환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