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32020.05

평화 사랑채

북한의 2030 ‘깬 세대’ 여성들
자기결정권 높아진 사랑과 결혼*

* 이 글은 조정아·이지순·이희영, 『북한 여성의 일상생활과 젠더정치』(서울: 통일연구원, 2019)의 일부 내용을 정리한 글임을 밝혀둔다.

북한의 2030세대 여성에 대해 남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아마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화제를 몰고 왔던 ‘미녀응원단’이 아닐까 한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에도 ‘미녀응원단’ 참가 여부를 두고 언론에서 전문가들의 논평이 이어졌고, 지금도 ‘탈북미녀’를 내세운 방송들이 종편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북한 여성을 아름다운 외모, 순종적 태도와 관련지어 이미지화하는 남성중심적 시선은 지나간 시대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내가 북한 여성 관련 연구를 수행하면서 만나 본, 북한 출신 젊은 여성들은 그런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북한에서 온 20대 초반의 한 여성은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친구를 북한에 두고 남한으로 온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뭐 남자친구가 괜찮고 좋긴 하지만, 그래도 내 앞의 인생을, 앞길을 생각하면 한 남자를 위해서 내가 뭘 바쳐야 된다는 건 없잖아요. 젊은 나이에 진짜 나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면서 그 남자 하나 바라보고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이게 싫더라고요. 그래서(탈북을) 결심했어요.”


일반적으로 북한 여성들의 삶에서 공식노동은 주변화되고, 시장활동과 연계된 노동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새 세대 여성들은 학업 및 직장 등 제한적인 진로 선택의 구조 속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간다. 또한 혼기가 되어도 적당한 혼처를 찾아 결혼 준비를 하는 대신, 자신의 ‘세계관’을 세우고 ‘미래를 내다보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낭만적 사랑’과 ‘깬 세대’의 행동양식
새 세대 여성들의 변화된 모습은 연애나 결혼과 관련해서도 나타난다. 최근 북한의 젊은 세대에서는 연애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북한 여성들에게 ‘낭만적 사랑’을 전하는 매체는 바로 외부사회로부터 유입된 영화, 드라마, 노래 등의 문화 콘텐츠들이다. 경제난 시기 생존을 위해 북한 주민들은 중국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물품을 들여왔는데, 한국, 중국, 미국의 영화, 드라마, 노래와 이를 재생하는 디지털기기도 그중 하나다. 이 노래와 영상물들은 각지로 퍼져 전국으로 유통되었고, 북한 여성들의 의식과 행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남한 영화와 드라마는 북한 매체에서는 보기 드문 남녀 간의 사랑과 낭만적 연인관계를 북한 여성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들은 영화와 드라마에 나타나는 남한 사람들의 행동 방식, 예를 들어 남자에게 대항하는 여성의 행동이나 여성을 배려하는 남성의 행동에 주목하고 이를 북한 남성들의 행동양식과 비교하기도 한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남한 영상물에 대한 단속이 대폭 강화되었지만, 젊은 여성들은 통제를 피해 남한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믿을 만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눈다. 영상물이 보여주는 사랑의 정서는 젊은 북한 여성들의 정서에 반영되고, 영상물이 보여주는 남녀 간의 의사소통과 인간관계의 방식은 기성세대와 다른 ‘깬 세대’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만들어낸다.

외부세계로부터 흘러들어온 새로운 문화는 연애 관계에서 여성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섹슈얼리티의 변화로도 연결되었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최근 접경지역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2030세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남녀 간의 자유로운 연애와 스킨십, 피임과 낙태, 혼전동거 등 섹슈얼리티 측면의 새로운 실천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에는 이성교제를 하는 남녀 간에 성적인 친밀성을 형성할 수 있는 공공연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외부문화의 영향으로 과감한 스킨십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교제하는 남녀의 스킨십과 혼전성관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 같은 대도시나 중국과 인접한 접경지역에서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농촌지역에서는 그런 행위가 따가운 눈총이나 구설수의 대상이 된다.

기혼여성의 피임과 낙태를 국가권력의 인구통치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면, 미혼여성의 피임과 낙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문제다. 북한에서는 1980년대 초반 피임시술 방법으로 자궁 내 장치가 보급되었고, 인구증가 문제로 1980년대 중반에는 여성들의 낙태수술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혼여성에게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 최근 혼전성관계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따르는 ‘책임’은 여성의 몫이다. 학교를 비롯한 공적인 영역에서는 성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피상적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성들은 성관계, 피임, 낙태, 임신, 출산 관련 지식을 어머니, 여자친구, 아는 언니, 동네 아주머니 등 주위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습득한다.

북한의 젊은 여성들은 또래나 ‘언니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공식담론에서 수용되지 않는 다양한 성적 실천들을 해나간다. 이제는 북한에서도 “굳이 연애한 사람과 살아야 된다는 이유가 없기 때문에” 결혼을 원하지 않는 여성이 늘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인 미혼여성들은 낙태를 선택한다고 한다. 미혼여성의 피임시술과 낙태수술은 주로 개인의사를 찾아가거나 집으로 부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비공식 의료체계를 통한 피임과 낙태는 성관계에 따르는 책임을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부과하는 북한 사회에서 최소한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려는 행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은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한다. 비공식 의료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피임시술이나 낙태는 위생 문제나 의료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2005년 8월 우리 언론의 주목을 받은 북한의 응원단. 우리가 만들어낸 허구적 시선 속에 북한 여성들을 가두어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연합
연애결혼의 확산과 중매결혼의 조건
북한의 2030세대 여성들 사이에서 ‘낭만적 사랑’은 개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에 스며들어 사회적으로 표현되며 또래들 속에서 공감을 얻는다. 이런 힘에 의해 ‘낭만적 사랑’은 결혼이라는 제도와 결합된다. 아직은 부모가 결혼 상대의 토대와 사회적 지위를 따져 중매결혼을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연애를 결혼으로 연결시키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 중매결혼에서는 상대방이 지닌 조건이 만남 성사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체적으로 여성의 돈과 생활력, 남성의 직업, 토대, 능력이 교환된다. 여성들이 보는 배우자의 조건은 돈, 배경, 발전가능성 등이다. 돈을 많이 벌거나 부수입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하는데, 외화벌이 이외에도 법관, 군관, 안전원, 보위부원 같은 ‘정복 입은 사람’과 간부가 이에 해당한다. 배경으로는 집안의 토대와 부모의 경제사회적 지위를 본다. 경제난 이후 당원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권력이 이전처럼 절대시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중요한 결혼 조건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권력이 경제·사회적 자본들을 획득하여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인으로 실재하는 2030세대
한편, ‘사회주의 대가족’을 구성하고 가족을 결속시키는 결혼제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기존의 결혼제도의 틀을 벗어나거나 이를 변형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결혼제도의 틀을 벗어나는 대표적인 행위는 결혼기피다. 예전에는 결혼 후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노동부담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순종하며 닥치는 대로 살자”고 생각했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결혼을 늦추거나 기피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이 결혼을 망설이거나 미루는 것은 북한에서는 결혼 후 배급이 없는 공식직장에 근무하는 남성을 대신해 여성들이 시장활동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아직까지 가사노동도 여성들이 주로 담당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2014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5세이고 남성은 28세로 여성보다 조금 높다. 최근에는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는 대도시 고학력 여성들에게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평양과 같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고학력 여성들의 결혼연령이 늦어지는 것은 대졸 여성 중 당원이 되어 좋은 직장에 배치받기 위해 군입대를 자원하는 여성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젊은 여성들은 어머니 세대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결혼하여 과중한 노동을 하고 가족에 헌신하는 삶 대신에 본인의 직업적 성취나 성공과 같은 다른 삶을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식을 하지 않고 일정 기간 혼전동거를 하거나 결혼식을 한 후에도 자녀를 낳기 전까지 법적으로 결혼등록을 하지 않고 사는 동거커플도 증가하고 있다. 굳이 결혼등록을 하지 않는 이유는 배급제가 와해되면서 여성이 결혼해서 남편의 부양가족으로 등록된다고 해도 실질적인 혜택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동거할 경우에는 같이 살다가 헤어지더라도 복잡한 이혼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법적으로는 이혼이 허용되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의 의사가 충분히 존중받기 어렵고 절차도 복잡하다. 때문에 젊은 여성들 중에는 살아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동거를 택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과 계층에 따른 편차는 있지만, 북한의 2030세대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낭만적 사랑을 꿈꾸고, 폐쇄적인 성문화 속에서 사회적 허용영역을 뛰어넘는 성적 실천을 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서 결혼을 미루고, 옷차림이나 소비활동에서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개인’으로 실재한다. 헌신과 봉사의 심성을 갖추고 당과 혼연일체가 된 사회주의 대가정의 구성원으로 그려지는 북한 공식매체 속 북한 여성의 모습이 허구이듯이, 우리 또한 우리가 만들어낸 허구적 시선 속에 북한 여성들을 가두어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조 정 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