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72020.09

2018년 9월 20일 인천시 옹진군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NLL.
남북은 군사 합의를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고 시범 공동 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연합

분석

지체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남북군사합의 이행으로 동력 이어야

북·미 비핵화 협상을 배경으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서 9·19 남북군사합의가 체결된 지 어느덧 2년이다. 하지만 두 달 전 북한은 한국에 대한 날 선 비난을 발표했다. 명암이 교차하는 현실 속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해 군사분야의 과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남북군사합의, 얼마나 이행되고 있나?
9·19 남북군사합의서는 7·7 선언 이후 30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군비통제분야의 진전이기도 하지만, 2018년 초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더불어 갑작스러운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즉,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찬반 양론이 9·19 남북군사합의서 채택 직후에 제기되었다.1 먼저 남북군사합의 긍정론은 DMZ의 평화지대, NLL 일대의 평화수역, 지상완충구역과 비행금지구역 등 남북한 간에 완충구역이 탄생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남북군사합의서의 긴장완화 효과를 강조한다. 남북군비통제가 군사적 대응을 촉발하는 요인들을 제거하여 남북한이 원치 않는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줄였다는 것이다. 반면 남북군사합의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한국이 북한보다 군사안보 문제에서 더 양보했다는 판단에 무게를 둔다. 남북군사합의서의 비행금지구역 때문에 한국이 우위를 가진 정찰감시자산들이 북한 지역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2

현재 남북군사합의의 이행 현황을 점검해 본다면, 다행히도 핵심적인 운용적 군비통제 조치인 남북 간 완충 구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남북군사합의서 1조에서는 남북한 간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을 완화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일대에 완충구역 등을 설치하였다.

남북군사합의에서 규정된 완충구역은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km 이내로, 해상에서는 덕적도~초도, 속초, 통천 사이의 일정 수역으로, 공중에서는 동측 군사분계선의 40km 이내와 서측 군사분계선의 20km 이내로 규정되었는데, 이러한 완충구역 내에서는 포사 격 훈련과 기동훈련 등의 군사활동들이 금지되었다. 이 완충구역 조항은 2018년 11월 1일부로 전면 발효되었고 남북한은 관련 조치를 이행했으며, 이러한 실천적 노력은 남북관계의 부침에도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유지되고 있다. 그 예외는 2019년 11월 말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부전선의 창린도 방어대를 시찰할 때 해안포를 발사하게 한 일이었는데, 이에 대해서 우리 정부와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에 대한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라고 항의했었다. 아울러 2020년 초여름 남북관계의 악화 속에서 북한군 총참모부가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 연습 재개를 경고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조치는 2020년 6월 23일 당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에 의해 직접 보류되었다.

1) 한용섭, “군비통제 관점에서 본 9.19 남북군사합의의 의의와 전망,” 『국가전략』 25(2)(2019), pp. 21-22. 2) 그러나 서해 평화수역은 NLL을 기준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에, 서해 평화수역이 북한의 주장이 관철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용섭(2019), p.22.


아쉽게도 완충구역 이외의 사항에 대한 북한의 이행 노력은 다소 미온적이다. DMZ의 평화지대화(2조),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군사적 보장(4조)에 대해서는 초기조치만을 이행했을 뿐이다. 시범적 GP 철수를 이행하고 JSA의 비무장화는 실시했지만 JSA에서의 남북공동근무나 DMZ 안에서의 공동유해발굴 등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NLL 일대의 평화수역화 문제와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에 대해서는 한층 더 소극적이다. 먼저 평화 수역화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은 초기 조치를 이행했다가 다시 후퇴하고 있다. 북측은 지난 6월 우리 측 시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판하면서, 2년 전에 복원되었던 남북 간의 동·서해 지구 군통신선과 국제적 통신연락망을 다시 차단했다. 나아가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5조)에서는 북측의 실천이 아쉽다. 남북 군사당국 사이의 직통전화를 설치하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개최하며 남북군사합의 이행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기로 했지만, 아직은 어떠한 조치에서도 진전이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김정은 위원장이 서부전선의 창린도 방어대를 시찰할 때 해안포를 발사하는 장면이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됐다.
당시 우리 정부와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라며 항의했다. ⓒ연합

군사합의 이행은 북한 경제발전 위해서도 필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한 북·미관계의 여건 마련은 쉽지 않은 상태이다. 지난해 하노이 정상회담이 무위로 돌아간 여파가 지속되고 있고, 하노이 노딜이라는 결과가 북·미 양국에게 비핵화 협상의 타결이 쉽지 않은 문제임을 인식시켰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보였던 수준 이상으로는 양보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에서 선회해, 미국이 먼저 양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자신들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먼저 완화하거나 그럴 결단을 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비핵화 협상에 복귀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대선이 있는 해에 국내 외적인 비판을 불러일으킬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 어렵고, 비핵화 합의에서 북한의 과거 핵 문제를 다루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핵화 협상의 교착국면에서도 북한이 자체의 필요에서 남북군비통제를 파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군사합의는 북한의 경제발전 노력에 필요한 여건을 마련해준다. 북한의 경제발전 추진 전략은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발전을 달성하겠다는 입장에 기초한다. 그리고 그러한 틀에서 북한은 내부의 자금과 노동력을 경제발전에 집중하려 한다. 비록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어 경제발전에 불리한 상황이지만, 북한은 남북군사합의로 전방의 안보에 대한 우려를 덜고 후방의 건설현장에 군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다. 남북군사합의가 경제발전 수단이 전혀 없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주고 있다.

올해처럼 미국의 대선과 감염병 사태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기 어려운 상태에서는, 비핵화 문제에 진전이 없더라도 남북군비통제를 통해 북한의 도발을 자제시키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접근을 기울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9·19 남북군사합의를 유지하고, 그 중에서 이행이 미진한 군사적 신뢰구축 분야의 합의도 이행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남북 간의 군사적 신뢰는 당장의 한반도 상황관리에도 필요하고, 비핵화 협상 진전 시 남북군비통제가 더욱 큰 보폭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남북군사합의를 정상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남북군사합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북한도 대북제재 하의 경제발전을 위해 군병력을 계속 후방동원 할 수 있고, 김정은 정권의 경제집중노선에 대한 군부의 반발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추진 동력을 바탕으로 북한 지도부가 경제발전을 우선시하는 방향에서 군비통제를 보다 심화시킬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남북한 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노력도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예컨대 북한이 문제 삼는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을 제안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단살포는 4·27 판문점 선언에서도 군사적 긴장의 원인으로 지적된 사안이기 때문에, 군사적 긴장해소 및 신뢰구축을 다루는 남북군사공동 위원회의 사안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이에 호응한다면, 적대행위 중단과 운용적 군비통제에 방점을 두고 남북군사공동위 활동을 시작하되, 점차 활동의 초점을 남북한 간 군사적 신뢰구축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군사적 신뢰구축부터 운용적·구조적 군비통제 문제까지 모두 다룰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시작된 협력을 다른 분야로 확대하는 데 유용하다.

덧붙여 북한이 차기 당대회에서 비핵화를 염두에 둔 국가전략을 제시하도록 독려하고, 앞으로 만들어갈 남북 평화를 비가역적인 것으로 공고화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2021년 1월로 예정된 북한의 8차 노동당 당대회에서 완전한 비핵화 단계의 국가전략이 수립될 수 있도록 남북 간의 지속적인 대화를 모색해야 하며, 북한이 군사시설을 경제발전을 위한 시설로 전환해가기 위한 방안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지난해 8월 9일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에서 장병들이 ‘DMZ 평화의 길’ 행사를 위해 통문을 열고 있다. ⓒ연합

“무엇보다 남북군사합의를 정상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남북군사합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북한도 대북제재 하의 경제발전을 위해 군병력을 계속 후방동원할 수 있고, 김정은 정권의 경제 집중노선에 대한 군부의 반발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이 중 구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