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멈춰서 있다. 2018년 판문점과 평양, 싱가포르에서 남북과 북·미는 새로운 양자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틀에서 비핵화 추진에 합의했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공동성명도 없는 노딜로 끝났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제가 문제였다. 북한의 입장은 2016년 이후 5개의 대북제재 중 민수경제와 민생에 영향을 주는 항목들을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었지만, 미국은 이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이후 북·미협상의 교착은 최근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상징하듯 남북관계마저 동결시켰다.
‘이상적’으로 보면, 핵 확산 방지가 아니라 핵무기 자체를 없애는 것이 인류를 핵전쟁의 위험에서 구하는 길이다. 2017년 유엔 총회는 핵무기금지조약(The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을 통과시켰고 핵무기철폐국제캠페인(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제재하는 국제법적 근거는 비확산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NPT)이다. NPT도 핵무기가 핵전쟁의 위협을 높인다는 전제에 입각하고 있고 핵보유국에 군축, 궁극적으로는 핵무기 철폐를 위한 노력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핵 개발에 따른 대북제재가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더라도 군수와 민수경제를 구별하지 않는 2016년 이후의 새로운 대북제재 레짐이 과연 효과적이고 윤리적인지도 문제다.
안보리의 상임이사국들은 모두 핵보유국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기존의 핵군축조약들(ABM, INF, Treaty on Open Skies)을 폐기하고 전면적인 핵군비증강에 나서고 있으며,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의 코로나19 휴전과 경제제재 중단 요구도 일축하고 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새로운 길’의 모색을 경고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북한은 8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인정했듯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새로운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 외교의 현실도 가시밭길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독재와의 타협은 없다고 외치는 바이든이 당선되든, 싱가포르 공동성명 이후 하노이 노딜을 선택하고 최근 ‘중공’에 대한 공세를 높이고 있는 트럼프가 재선되든 미·중의 갈등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기존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미국에 ‘올인’하는 동맹의 이념적 관성으로는 평화도 생존도 보장되는 않는 기로에 섰다. 판문점과 평양 선언의 군축 공약에 반하는 역대급 군비 증강은 한반도에 새로운 군비경쟁 시대를 열 것이다.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는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