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72020.09

북한 포커스

북한의 새 세대가 사는 법

오늘날 북한의 새 세대1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외부에선 북한의 20~30대를 ‘장마당 세대’라고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이들을 ‘고난의 행군 세대’라고 지칭한다. 이들은 더는 국가나 당을 믿지 않고 돈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북한의 새 세대가 사는 방식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가상의 인물 세 명을 등장시켜 그들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세 명의 삶은 모두 최근 탈북한 청년들의 인터뷰를 통해 꾸며본 것이다.
1) 북한의 청년, 신세대


스마트폰 알람에 깨어난 북한 대학생의 하루
오전 6시. 대학생 A는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깨어난다. 눈꺼풀은 천근만근이다. 어제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느라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오늘은 친구에게 빌린 USB 메모리 카드를 돌려줘야 한다.컴퓨터에 다운받아 볼 수도 있지만 기록이 남아 나중에라도 검열에 걸릴 수 있다. 세 번째 알람이 울린 후에야 A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준비한 뒤 학교로 향한다.

바쁜 와중에도 넥타이에 교복에 모자까지 챙겨가야 한다. 교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서는 학교 정문을 통과하여 등교할 수 없다. 국가에서 교복을 공급해주긴 하지만 그걸 입는 대학생은 거의 없다. 비슷한 색깔의 고급 천을 사서 몸에 꼭 맞게 지어 입는다.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떠나려는 버스에 허둥지둥 오르면서 A는 생각한다.
‘지난 주말, 체면 때문에 친구들 따라 비싼 식당에 가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침 택시를 탈 수 있었을 텐데….’

아침 7시 반. A는 교실에 들어섰다. 아슬아슬하게 아침 독보에 지각은 면했다. 북한 대학에서는 한 개 학급을 군대처럼 ‘소대’라고 부른다. 소대의 세포비서나 초급단체비서가 그날의 「로동신문」 주요기사를 읽어주는 독보에 지각하면 나중에 골치가 아파질 수 있다. 세포비서에게 싫은 말을 듣는 것은 기본이고 생활총화에서 집중비판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가 땀을 훔치며 둘러보니 어떤 친구들은 졸고 있고, 또 어떤 친구들은 밀린 과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독보 진행자는 그런 학생들을 못 본 척하고 신문만 큰 소리로 열심히 읽는다. A도 학교 앞 단골 서점에서 빌린 시드니 셀던(Sidney Sheldon)의 『사랑과 음모』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최근 셀던의 소설 『여자는 두 번 울지 않는다』가 ‘사랑과 음모’라는 제목으로 북에 퍼져 대학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누군가가 번역을 한 것을 몰래 인쇄한 것이라 질은 별로지만 내용만큼은 정말 재밌다. 물론 표지에는 누런 종이로 커버를 한 뒤 ‘현행당정책’이라는 가짜 제목을 써넣었다. 대학생이 이런 책을 읽다가 걸리면 처벌을 받지만, 이런 책이 오히려 인기가 더 많아 대여료가 일반 책보다 5배 이상 비싸다. 수요가 많아 예약한 후에도 1주일은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이런 책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 서점 주인과의 신뢰가 없다면 어림도 없다.

지난해 4월 평양의 한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청년들 ⓒ연합

유행에 민감하고, 진로를 고민하는 북한 청년들
오전 11시. C는 시내 고급 식당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제대군인 C는 대학 졸업 후 배치를 기다린 지 벌써 6개월째다. 동기들 중 상당수가 이미 당, 검찰, 보위부 등 권력 기관에 배치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와 조급하다. 부모도 배치 기간이 길어지니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C는 북에서 출세의 3대 조건인 당원, 대학 졸업, 군 복무 모두 갖추었지만 연줄이나 돈이 없으니 배치가 쉽지않다. 더구나 가고 싶은 곳에 가려면 뇌물이 필수이다. 오늘 만날 사람은 보안서 계열의 도급 간부이다.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이 아마 열 명은 넘을 것 같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줄이 든든해 보이는 경우엔 금액이 지나치게 높았고, 금액이 적당해 보이는 경우는 믿음이 덜 갔다. 그래도 오늘은 도 보안국에 먼저 배치 받은 동기가 소개해 준 사람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는 터이다. 어려서부터 문학 소년이었던 C는 커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허나 군대와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이 사회에선 권력이 최고란 것을 알아버렸다. 어릴 적 꿈은 사라졌다.

오후 4시. A의 옷차림이 변해있다. 나이키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청바지를 입었다. 오후에는 평양종합병원 신축공사장에 노력동원을 가야 한다. 청년들의 패션에 대한 통제가 심한 북한 당국도 공사장에서까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노력동원을 하는 동안은 대학생들의 옷차림이 자유로운 편이다. 특히 여대생들에게는 이때가 자신의 새로운 패션 아이템들을 선보일 좋은 기회이다.

노력동원에 빠질 수 있는 여건임에도 패션쇼 효과를 노리고 이따금 참가하는 학생들도 있다. 사실 돈을 내면 공사에서 빠질 수도 있다. 북한의 건설자재 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자재비를 충당하기 위해 오히려 돈을 내고 빠지는 것을 장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A처럼 지방에서 올라와 형편이 넉넉지 못한 학생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오후 7시 반. 일을 끝낸 A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대동강 맥주집에 들려 호프를 나눈다. 지갑에 달러 좀 넣고 다니는 친구들은 좀 더 비싼 식당으로 향했지만 A에게는 이곳이 가장 편한 곳이다.

A는 요즘 졸업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생각이 많다. 대학에 다니는 내내 느낀 것이지만 요즘 들어 일부 친구들과 자기 사이의 벽이 생각보다 더 두터웠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 벽은 단순히 호프집과 외화식당의 메뉴판 가격 차이가 아니라 훨씬 더 구조적이고 부동의 성격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 같아선 한 ‘조끼(잔)’ 더 하고 싶어도 해야 할 과제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다. 여자친구와 통화도 해야 한다. 사실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만 해도 집안 형편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2학년 때 사업을 하시던 어머니가 병이 나자 A의 대학 생활도 휘청거렸다. 당시에 자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대신해 후원해 준 것이 여자친구였다.

A가 지금 쓰고 있는 ‘아리랑’ 스마트폰도 여자친구가 마련해 준 것이었다. A는 그런 여자친구에게 늘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느꼈다. 그동안 친구나 교수님들이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할 때마다 그는 항상 거절했다. 하지만 졸업이 점점 다가오고 주변 친구들이 가족이나 친척들의 강력한 재정적 후원을 은근히 드러내며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운운할 때마다 그는 흔들렸다. 그리고 그러는 자신이 부끄럽고 화가 났다.

지난해 평양국제무역박람회에서 공개된 북한의 새로운 스마트폰 브랜드 ‘푸른하늘’.
북한의 대표적인 스마트폰 브랜드는 아리랑, 푸른하늘, 진달래 등이 있다. ⓒ연합

좋은 직업보다 비전을 선택
오후 8시가 돼서야 B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며칠 동안 잠을 거의 잘 수 없었다. 중국에서 신상 의류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B는 철 따라 중국에서 출시되는 신상 의류 제품을 받아 그것과 꼭 같은 도안을 만들고 수치화해서 북한의 의상 제작자들에게 넘긴다. 한편으론 남한 드라마나 중국 잡지를 보고 의상 제작자들이 주문하는 스타일에 맞는 의상 제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중국에서 신상품들이 출시되는 계절이면 B는 밤잠을 잊고 디자인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제작자들은 기다려 주지 않고 다른 도안가들에게 부탁하기 때문이다.

B의 디자인은 의상 제작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사업이 매우 잘 되는 편이다. B는 학생 때부터 인기가 많았다. 공부도 학급에서 제일 앞서가는 편이었고, 이웃학교까지 그 미모로 소문이 났다. 많은 남자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고등학교 졸업 6개월 전에 만난 A는 세 번째 남자친구였다. A를 만나고 일주일 후 그녀는 친구들에게 A가 자신의 마지막 남자친구가 될 거라 선포했다. 앞으로 명민하고 매력적인 A보다 훌륭한 남자친구를 찾아내긴 어려울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부모님들은 초등교사인 어머니처럼 B도 교원대학에 진학해서 선생님이 되길 바랐고, 담임선생님은 성적이 우수한 B에게 의대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그러나 B의 결심은 확고했다. 의상 제작 쪽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학년 때 평성에서 의상도매업을 하는 고모네 집에 놀러갔다가 의류 디자인 및 제작 업계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함께 대학에 가는 게 어떻겠냐는 A의 제안에도 B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1년 동안 고모네 집에 가서 일하며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B는 사업을 시작했고,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린 나이에 주변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디자인 실력과 유통망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대학교에 진학한 동기들도 그녀를 부러워한다.

B는 요즘 들어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A의 졸업을 앞두고 뇌물로 쓸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A는 B에게 사랑의 상대인 동시에 장기투자의 대상이기도 했다. B는 잠시 후 A와 나눌 대화 주제들을 수첩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오후 11시, A·B·C는 각자의 하루를 정리한다. 오늘 세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망은 얼마나 커지고, 불안은 얼마나 작아졌을까. 혹은 그 반대일까. 그럼에도 청춘, 젊음이라는 축복이 있기에 그들은 여전히 내일의 희망을 안고 각자의 꿈속으로 빠져든다.

지난 4월 22일 마스크를 쓴 채 강의를 듣는 북한 김책공대 학생들ⓒ 연합
주 성 하 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