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72020.09

평화 LIFE

155마일 철조망이
꽃나무였으면 좋겠어

1985년 1월 7일 ‘바위섬’이 처음 방송되며 당시 전남대학교 복학생이었던 나는 덜컥 가수가 되었다. 80년 5월 외로운 섬 같았던 광주를 노래한 ‘바위섬’은 나를 최루탄과 백골단의 몽둥이가 난무했던 광주 금남로에서 20여 년 간 노래하게 했다. 바위섬이 알려진 후에 발표한 다음 음반에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직녀에게’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보이지도, 만질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괴물 같은 지역감정과 씨름하게 하였으며,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 내는 일에 관심을 갖게 했다.

지역감정 걷어 내려 시작한 공연,
북한 어린이 돕는 달거리 공연으로 이어져
자기소개서의 취미를 적는 칸에 ‘손님접대’라고 쓰는 나에게 거친 바다와 닮은 부산의 사나이들과, 듣기만 해도 정겨운 사투리를 쓰는 대구 여인들이 늘 반가운 손님들일진대,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지역감정이 집단 간의 증오를 부추기며 ‘손님접대’라는 취미를 방해하는 것을 인정할 수도 참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8톤 트럭을 개조해 무대로 만들고 음향과 조명, 발전기를 싣고 2002년 8월 26일부터 49일간 49개 도시를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렸다. 제주를 시작으로 전남, 경남, 부산을 거쳐 경북, 강원, 경기, 서울, 충북, 충남, 전북을 지나 10월 13일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섬진강 화개장터까지. 길거리에서 시와, 그림과, 연주와, 춤과, 노래를 지나가는 각 지역의 뮤지션과 아티스트, 시인들, 전국에서 달려온 예술인들과 함께했다.

화개장터 앞 섬진강변에서 각 지역에서 한 줌씩 가져온 흙을 모으는 합토식을 할 때, 당시 북한에 다녀온 한 뮤지션이 북한에서 가져온 흙을 합토하여 더욱 가슴이 뭉클했다. 이 트럭을 몰고 휴전선을 지나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까지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즈음은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발생하고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이라 하여 한반도가 전쟁위협으로 빠져들고 있던 때였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력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전쟁 상황!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뭔가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북녘어린이를 위한 사랑모으기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을 시작하게 했다.

“다달이 한 번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습니다. 노래를 가지고 벗님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통해 지금 고통 속에 있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한줌 사랑으로 흐를 수 있다면 큰 보람이겠습니다.”

당시 달거리를 시작하면서 쓴 글이다. 2003년 1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24개월의 공연을 마치고 2005년 4월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를 만나 광주시민들이 모아주신 2,000여만 원을 평양 대동강변에 영양빵공장을 짓는 데 써달라며 기부했다. 당시 다행히 남북관계가 좋아졌고 다달이 2년 동안 24번의 공연을 같은 장소에서 하다 보니 더 이상 부를 노래도 마땅치 않아 공연을 접게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의 교류가 끊기고, 다시 암울한 대결의 시대로 접어드는 것을 보며 2010년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공연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55마일 철조망이 꽃나무였으면 좋겠어.
꽃 한 송이 들고 경계를 넘어가는 거야. 앞으로 앞으로 가는 거야…”

- 김원중 작사·작곡 ‘시베리아 나타샤’ 중 -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철조망을 넘어 평양, 모스크바, 베를린까지…
그리고 2017년 달거리 공연을 꾸준히 지켜오던 분들과 무대가 있는 트럭으로 광주, 부산, 서울, 평양, 시베리아, 모스크바, 베를린까지 육로로 국경을 넘어 보고자 ‘코리아-유라시아 로드 런’을 시작했다. 철조망을 10~20여 미터만 자르면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를 이유로 불가능하다며 섬처럼 살아왔다. 섬도 아니면서 비행기나 배를 타고 외국에 간다. 그리고 그것이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결국 우리의 열망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한반도 분단 상황을 지속하려 하는 옆 나라들이 무엇 때문에 발 벗고 나서겠는가? 그리하여 ‘코리아-유라시아 로드 런’은 ‘잘가라 지역감정’ 공연 때 보다 훨씬 큰 트럭을 준비했다. 작년에는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진 정읍, 5월의 광주, 여수, 순천, 거창, 산청 등 우리 민족의 상처가 깊이 새겨진 지역을 위로하는 순회공연을 했다. 올해 9월 22일부터 5일간 부산, 울산, 포항, 경주, 대구 등 아시안 하이웨이 1번과 6번 도로가 지나는 영남 지역을 순회할 예정이다. 혹시나 이곳을 지나다 우리의 공연을 보게 되는 분들이 있다면 휴전선을 지나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대륙으로 가는 꿈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NASA에서 발사한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난다는 21세기다. 경계선이 필요하다면 탱크나 중화기 앞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철조망이 아니라 꽃나무를 심기를 원한다. 155마일이 꽃으로 된 평화의 경계선 말이다. 그리고 자동차가 지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소망한다.
김 원 중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