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72020.09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보산동 월드 푸드 스트리트 ⓒ동두천시

우리고장 평화 ROAD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전쟁의 기억 덮은 그래피티,
마을을 바꾸다

1960년대 한국은 미군기지 주둔으로 형성된 ‘기지촌’의 전성기였다. 한국에 주둔한 6만 2,000명의 미군 병사들과 그들로 인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만든 도시가 ‘기지촌’이다. DMZ와 가까이 있어 군사적 요충지였던 경기도 파주지역은 1971년까지 미군 부대의 최대 집결지였고, 일명 ‘지아이들의 왕국(GI : Government Issued, 미국사병을 부르는 속칭)’이 파주 인근인 동두천이었다.

Scene. 1 한국 안의 작은 미국, 동두천 보산동
동두천은 ‘리틀 텍사스(Little Texas)’라고 불렸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캠프 케이시(Camp Casey)와 캠프 호비(Camp Hovey)가 주요 보병기지로 확정되자 외딴 시골 마을이었던 동두천은 갑자기 미군과 이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의 도시로 발전했다. 동두천을 포함해 경기 북부의 도시 대부분이 미군부대의 생필품을 조달하는 산업으로 발전했으며, 미군을 위한 클럽, 술집, 세탁소, 양복점, 잡화점, PX 등이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미군기지 정문에 위치한 동두천시 보산동에는 아직도 1970년대의 상점과 주거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70년대 보산동은 한국 안의 ‘작은 미국’이었다. 상점의 주인과 종업원들은 영어를 주로 사용했고, 미국적인 생활습관과 방식으로 살아왔다. 지금도 보산동의 음식점과 술집들은 선불이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특수성을 감안해 경기도는 1990년 동두천을 외국인관광특구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미군부대들이 병력 감축과 해외파병을 이유로 기지를 떠났고, 캠프 케이시도 이라크 파병으로대부분의 전투 병력들이 떠나자 2만 2,000명에 달하던 병력은 3,00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보산동을 지탱하던 상인들도 이곳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주하였고,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은 미군을 상대로 ‘외국인 관광 특구’라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교각 아래 설치된 캠프 보산 공용 시설
Scene. 2 낮은 기대 속에 시작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보산동에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의 첫 공공미술프로젝트(동두천 K-Rock 빌리지 공공미술)가 시작된 것은 2015년 겨울이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의 명칭도 없었고, 대상지역에 대한 조사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저 동두천 보산동의 거리 환경 개선을 위한 최선책을 찾자는 것이 전부였다. ‘동두천’이라는 도시와 ‘보산동’이라는 지명도 낯설었으며, 미군이 돌아다니는 풍경도 신기하기만 했다. 지역 주민들도 지속되는 상권 붕괴와 찾는 이 없는 거리에 별 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다. 경기문화재단은 이런 현실을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동두천이 갖고 있는 가치를 찾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동두천은 미군부대가 주둔하는 도시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곳이었다. 특히 한국 밴드음악과 그래피티 아트는 동두천만의 특색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였다.

경기문화재단은 이러한 이야기를 ‘동두천의 신화’라는 주제로 연결해 그래피티 작가들에게 제공했고, 작가들은 각자의 작업에 신화적 이미지를 대입해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주민들은 기대보다 냉소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거라도 해서 무엇 하나 얻는다면, 지금보다는 좋은 것 아닌가’라는 말도 많았다. 동두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싸늘했던 그해 겨울처럼 차가운 주민들의 시선과 함께 출발했다.

다음해인 2016년은 국제적인 그래피티 아트 페스티벌과 행사들로 ‘그래피티’가 세계적인 시각문화 저변으로 확대되는 시점이었다. 이에 ‘동두천 K-Rock 빌리지 공공미술’도 국외 작가의 그래피티 아트를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전 국내 작가들의 소규모 작업이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기도 했고, 국내에서는 그래피티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았기 때문이다. 경기문화재단은 국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중 태국과 러시아 출신의 작가를 초청하여 동두천에 그들의 작품을 이식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7년에는 한국의 그래피티 작가들을 모아보자는 취지로 1990년대 말 활동한 1세대부터 가장 어린 2세대까지 9명의 작가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은 자신이 선정한 건물에 그래피티를 남겼고, 보산동 곳곳에 남아 있는 1세대 작가들의 옛 작품을 찾아 사진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병행했다.

4년간의 활동이 축적되자 이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의 냉소적인 시선과 거부감이 사라졌고, 많은 주민들이 자신의 건물에도 그래피티 작품이 그려지기를 원했다. 주민들이 직접 동두천시에 관련 예산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그간의 활동으로 축적된 언론보도와 타 지역 관계자들의 답사, K-POP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이어졌고, 동남아 관광객들이 관광코스로 보산동을 찾아오기도 했다.

보산동 곳곳을 물들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품(Xeva作)

보산동 곳곳을 물들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품(심찬양作)


Scene. 3 동두천 캠프 보산 월드 푸드 스트리트
그래피티 아트 사업은 동두천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색적인 문화관광지로 만들었다. 경기문화재단은 보산동을 찾는 이들의 편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동두천 캠프 보산 월드 푸드 스트리트’를 조성하기로 했다. 보산동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종의 음식을 주제로 음식매장을 조성하고, ‘집 속의 집’이라는 주제로 투명하고 개방된 형태로 디자인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집 속의 집’은 규정되지 않은 공간인 동시에 사용자가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담겨 있다. 예전의 보산동은 내국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하는 곳이며, 동시에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이런 선입견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먹고 머무르며 지역민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경기문화재단은 지역주민과 방문객을 위한 ‘공용쉼터(UBO: Unidentified Building Object)’를 설치해 누구나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했다. 공용쉼터 UBO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대규모 집합시설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공간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지하철 교각의 하부공간을 이용하여 접근하기 쉽고, 건물 앞뒤가 열리는 독특한 공간이기에 안전하게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동두천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는 앞으로 다양한 인종과 음식과 문화가 공존하는 거리이자,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트 작품이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보산동 곳곳을 물들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품(JayFlow作)

보산동 곳곳을 물들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품(Rukkit作)


Scene. 4 이해에서 출발한 예술, 지역을 변화시키다
보산동에서 벌인 프로젝트는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삶 속에서 만들어가는 공공예술을 목표로 했다. 문화와 예술이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가 아니라, 문화예술이 어떻게 지역과 함께할지를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문화와 예술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이해시키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경기문화재단은 ‘지역’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문화재단의 자율성이 지역과 소통하며 지역의 장점이 예술로 표현되도록 한 것이다. 동두천 보산동은 작가와 문화재단이 함께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공공의 정원으로 지속될 것이다.

지하철 교각을 활용한 그래피티 아트(Hopare作)
+ Information
그래피티 아트 빌리지 / 월드 푸드 스트리트
보산동 외국인 관광특구 일원(서울 지하철 1호선 보산역 1번 출구)
* 월드 푸드 스트리스트 운영시간 : 2020.06.20.~11.30. 18:00~23:00(2021년부터는 3월~11월 운영)
최 기 영 경기문화재단 책임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