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바이든 정부의 미국, 어디로 갈까
트럼프는 가도
트럼프주의는 남는다
미국 선거가 끝났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많은 유권자가 참여했고 관심 또한 높았다. 하지만 결과는 미국 사회의 분열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특히 선거 직후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결과 불복은 통합을 기치로 내건 바이든 행정부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또한, 내년 1월 5일의 조지아주 상원 재선거 결과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지형은 심대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건 트럼프 지지세력의 결집력이다. 바이든이 570만 표 이상의 차이로 승리했지만, 트럼프도 7,340만 표 이상을 득표했다. 역대 최다득표 낙선이다. 선거 출구조사를 보면 바이든이 좋아서 찍은 표 못지않게 트럼프에 반대하기 위해서 바이든을 찍은 표도 상당했다. 특히 상대후보에 반대하기 위해 투표했다고 응답한 투표자가 5명 중 1명 이상 꼴인데, 이들 중 트럼프에 반대하기 위해 바이든을 찍었다는 비율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물론 상대후보 견제가 아니라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좋아서 표를 던졌다는 비율에서도 트럼프가 훨씬 앞선다. 미국민의 30% 안팎이 스스로를 공화당 지지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는 재임 기간 내내 평균 90% 이상으로, 역대 어느 공화당 출신 대통령 혹은 대선주자보다 줄곧 높았다. 7,300만 표 이상의 득표가 결코 우연은 아닌 것이다.
역대 최다득표 낙선, 그 이면의 백인 인종주의
사실 미국의 현재와 향후 정치지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럼프에 대한 미국민의 지지가 왜 이렇게 높은가를 이해해야 한다. 개인으로서의 비윤리적인 행위들은 물론이고, 사법방해와 권력남용, 특히 코로나19 위기로 25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치적으로 응징하기보다는 더 강한 지지를 보내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의 선거불복까지 포함해서 통상의 상식과 논리, 정치문법을 벗어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미국 사회와 역사를 관통해 온 백인 인종주의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역학을 이해해야 하지 않나 싶다. 2019년 미국의 인구통계 조사에 의하면 스스로를 백인이라고 답한 비율은 전체 인구의 60% 정도다. 1960년대에 백인 비율이 90%에 육박했던 것에 비하면 30% 정도 낮아진 것이다. 백인 혼혈 등을 모두 합쳐도 백인 인구는 전체의 76% 정도로 줄어들었다.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계 등 소수인종의 눈에 비친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백인 위주 사회다. 하지만 백인들의 눈에 비친 미국 사회는 그들의 상대적 지위가 빠르게 쇠락하는 사회다. 특히 히스패닉계의 급격한 성장은 백인계층에게 강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켜 왔다. 워낙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히스패닉계 인구는 1960년대 초반에만 해도 미국 사회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폐지한 1965년 이민법 개정을 계기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19년 현재 6,000만 명을 상회한다. 이들은 전체인구의 18.5%에 달해서 흑인계(13.4%)보다 더 큰 인종집단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대부분 같은 종교와 언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백인계층이 느끼는 위협감은 상당하다. 미래가 더 걱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저소득, 저학력 백인계층일수록 히스패닉계를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계층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흑인 저소득층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의 위협감이 과장만은 아닌 게, 1994년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결성 이후 다수의 백인, 저학력, 저소득, 제조업 종사자들이 상대적으로 박탈된 사회경제적 위치로 내려앉았다. 미국 정부의 산업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7년 이후로 제조업 분야에서 9만 1,000개 이상의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5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집계된다. 특히 자동차 및 철강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는데, 흔히들 말하는 ‘러스트벨트(Rust Belt)’ 지역-펜실베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간, 일리노이, 위스콘신-이 제조업공동화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왔다. 지난 2016년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지역들이 된 이유다.
다른 한편, 보수적인 주류 백인들의 경우 1990년대 이후로 점증해 온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에 큰 위협이 된다고 받아들여 왔다. 인종-성-젠더 문제에 있어서 소수자 차별을 철폐하고, 보다 다양하고 포용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사회운동은 보수적 백인세력에게는 미국의 가치와 사회의 존망에 대한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이들에겐 자신들의 정치적 사망을 예고하는 서막으로 인식하게 됐고, 이후 백인 극우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미국적 보수주의 가치 보존을 기치로 한 시민운동인 ‘티파티(Tea Party)’운동 등이 거세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높은 지지도는 백인들이 느끼는 이 상대적 박탈감, 절박한 위기의식과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는 “내가 우리 백인들의 이익을 지켜주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로 화답해 온 것이다.
실제 백인들 절대다수는 트럼프가 제창해 온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란 정치구호에서 ‘미국’을 ‘백인’으로 치환해서 이해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백인층의 트럼프 지지는 견고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백인계층의 60% 정도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물론 백인 남성의 지지도가 백인 여성의 지지도에 비해 좀 더 높긴 하지만 그리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다. 흔히들 트럼프 지지계층은 저학력 계층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대학 이상 졸업자의 43% 정도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다만, 대학 이하의 교육을 받은 백인들은 67%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양극화, 정치적 갈등이라는 도전에 직면한 신정부
인종문제는 미국의 정치, 선거를 관통하는 상수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가까운 미래에도 가장 중요한 변수로 남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인종적 통합의 과정이 정치-사회적 갈등 없이 진행될 가능성도 지극히 낮다. 실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와 이어진 경제위기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풀뿌리 시민운동을 촉발시켜 진보진영이 민주당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게 했다. 이번 미국 대선캠페인에서 부각된 ‘흑인들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1990년대부터 이어진 진보적 자유주의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반면, 2016년 트럼프의 당선과 지속적인 높은 지지도는 ‘티파티’로 대변되는 백인 극우 인종주의 보수세력이 공화당 내에서 영향력을 늘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이로 인한 경제위기, 사회갈등 양상은 진보적 자유주의와 극우 인종주의 간 갈등을 폭발적 양상으로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정치경제, 사회 양극화는 바이든 정부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이자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월 초의 조지아주 상원 재선거 결과는 바이든 행정부의 미래에 특히 중요하다. 하원에선 근소한 차이로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수성했지만, 상원에선 공화당이 이미 50석을 확보한 상황이다. 조지아주에서 2석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다시 겨루게 됐는데, 만약에 공화당이 한 석이라도 얻게 된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2기 못지않게 의회와의 첨예한 갈등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기후변화 대비 그린뉴딜, 대규모 사회-경제 인프라(SOC) 재건설 투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대비 재정부양책 등이 상원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다.
실제 오마바 행정부 시기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지위를 상실하면서부터 쟁점 법안들이 미 의회를 쉽게 통과한 적이 없었고, 2012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에서도 다수당 지위를 차지하면서 오바마 정부는 사실상 식물정부 상태로 전락해 버렸었다. 조지아주 상원 재선거 결과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수성할 경우, 비슷한 수준의 첨예한 정치적 갈등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2년 후에 있을 중간선거를 위해서라도 민주당의 공약 이행에 제동을 걸면서 지지세력 결속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2년은 극심한 혼란과 갈등의 시기가 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불복은 향후 전개될 극심한 정치갈등과 분열의 전주곡이지 않나 싶다.
강 명 구
뉴욕시립대학교 바룩칼리지
정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