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평화 ROAD
아픔의 역사를 치유하는
평화의 길, 거제 섬길
‘크게 구한다’는 뜻을 가진 거제(클 巨·구할 濟)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이제는 통영과 이어진 거제대교, 부산과 이어진 거가대교 및 해저터널이 건설돼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춘 ‘섬 아닌 섬’이 됐다. 자연이 빚은 특유의 리아스식 해안 1000리길은 발 닿는 곳마다 절경이요, 눈길 머무는 곳마다 비경이다. 문명이 만든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조선도시인 거제의 야경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어울림이 아름다운 거제는 그 어떤 수식어로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거제는 자연비경 속에 감춰진 역사의 아픔과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려 의종이 무신정변으로 물러나 지냈다는 둔덕 폐왕성(현재 둔덕기성), 임진왜란 첫 승전인 옥포대첩과 조선시대 거제 땅이었던 견내량 한산대첩, 조선수군이 수장된 정유재란의 칠천량해전, 러일전쟁의 격전지와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절경들, 6·25전쟁의 상흔인 거제포로수용소의 제2의 포로전쟁, 흥남철수작전으로 10만 여명의 피난민들의 애환과 눈물이 서린 장승포항. 비릿한 바닷내와 민초의 피눈물이 어우러져 짜디짠 거제의 역사가 됐다.
거제섬길 1,000리. 오욕과 영수의 세월을 ‘희망의 길(路)’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평화로드’에는 감사와 감동이 숨쉬고 있다. 아픔의 역사를 평화로 치유한 ‘거제섬 & 섬길’ 평화로드의 역사현장을 소개한다.
민주평통 거제시협의회가 ‘우리고장 평화플랜’ 사업으로 조성한 벽화 ‘평화의 길’
Course. 1 평화를 염원하는 역사의 교육현장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거제포로수용소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사로잡은 조선인민군과 중공군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1년 2월 거제시 고현동과 수양동을 중심으로 설치해 1953년 7월까지 운영된 곳이다. 원래 야외캠프와 일부 유적터만 남아 있었지만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가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하면서 유적지를 확장해 1999년 개관했다. 현재는 흥남철수작전 기념조형물을 준공해 유적공원으로 탈바꿈되어 6·25전쟁의 참상을 말해 주는 민족 역사교육의 현장이 됐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걷다보면 인민군 포로 15만 명과 중공군 포로 2만 명 등 17만 3,000여 명을 수용한 흔적과 300명의 여자포로 생활관 등을 통해 전쟁의 잔혹함을 엿볼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DMZ전선이 제1의 영토 전쟁터였다면 거제포로수용소는 포로들 사이의 제2의 이념 전쟁터였다. 강제징집 등의 이유로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원하는 친공포로 간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했고, 1952년 5월 7일에는 당시 수용소 소장이었던 도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기도 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다 둘러볼 때쯤 계룡산 관광모노레일로 거제섬의 최정상에서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정상에 오르면 한눈에 들어오는 다도해의 비경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들린다. 그리고 당시 미군의 통신대 잔존유적에 또 한 번 놀란다. 전쟁의 흔적이 거제의 명산 계룡산에까지 남겨져 있는 것을 보면 왠지 슬픔이 밀려온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내에 조성돼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
Course. 2 흥남철수작전과 ‘크리스마스의 기적’ 장승포항
거제도에는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의 기적이라 불리는 항구가 있다. 10만 피난민들을 품어준 장승포항은 희망과 평화의 땅이었다. 그 평화의 항구를 따라 민주평통 거제시협의회가 ‘우리고장 평화플랜’ 사업으로 평화의 길을 조성했다. 흥남에서 생사를 걸고 배를 타고 건너온 사람들과 당시 장승포 주민들의 이야기를 벽화로 재현한 것이다.
흥남철수작전은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국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이 고립되자 이들을 흥남으로 집결시키고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함경도 흥남항에 선박 170여 척을 보내 병력과 물자를 후방으로 철수하는 작전이었다. 국군의 후퇴 소식을 듣고 몰려든 10만여 명의 피난민들이 모여 들었고, 이들은 배를 타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이곳으로 왔다. 피난민들 일부는 부산항에 내렸지만, 나머지는 포화상태인 부산에서 다시 뱃길을 돌려 장승포항에 내리게 된 것이다. 거제 장승포는 흥남철수 피난민에게 희망과 기적을 안겨준 평화의 땅이다.
장승포는 항구도시이다. 거제~부산 간 해저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 부산을 연결하는 연안여객선 터미널이 있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어업기지로 수많은 어선이 드나들던 항구에 세관이 있는 도시였고, 거제에서 제일 번화한 장승포시가 있기도 했다. 지금은 일제강점기의 잔재와 흥남철수작전의 피난민의 흔적, 조선도시의 문명이 공존한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피난민들을 태우고 온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크리스마스 기적’으로 기억되는 평화의 도시. 장승포초등학교에서 시작되는 ‘거제 장승포 기적의 길’과 피난민들이 거주지를 배정받기 위해 희망을 품고 넘던 마전동 고갯길을 걸으면 민주평통 거제시협의회에서 조성한 평화로드 섬길 여행의 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동백섬 지심도’ 유람선 여행도 추천한다. 지심도는 동백나무숲이 자연 그대로 살아있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당시 만들어 놓은 포진지 등의 흔적을 보며 섬을 한번 둘러보는 것 또한 역사를 기억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6·25전쟁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함경도 흥남에서 1만 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온 거제시 장승포항
Course. 3 산, 바다 그리고 섬. 하늘과 바람을 느끼며 걷는 무지개길
거제도에서 최고의 해안 비경을 찾는다면 무지개길 ‘홍포마을’이 있다. ‘홍포’에서 ‘여차’까지의 해안선 풍경은 거제 최고의 절경으로 감히 형용하기 어렵다. 이른 아침 바다 안개를 감싼 다도해 일출, 일몰 시간에 볼 수 있는 섬 뒤로 펼쳐지는 수평선의 석양은 거제관광의 백미라 해도 손색이 없다.
홍포에서 여차까지는 걸어갈 수도 있고 차를 이용해 구경할 수도 있다. 구간을 지나는 동안 여러 개의 전망대가 있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 역시 각양각색이다. 홍포전망대에서 쥐섬(쥐도)과 소병대도, 대병대도 등 섬들을 바라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파도에 두둥실 헤엄을 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홍포전망대를 지나 여차몽돌해수욕장으로 접어들 때면 몽돌과 파도가 들려주는 오케스트라를 감상할 수 있다. 몽돌밭에 앉아 잠시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당신은 느낄 것이다.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준 마음의 평화를….
계룡산통신대와 전망대
Course. 4 거제섬 & 섬길 = 평화의섬 & 섬길
거제 섬길은 구국의 역사와 평화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다. 6·25전쟁 중에 섬주민 10만 명은 전쟁포로 17만 3,000명을 위해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고, 10만 여명의 피난민을 위해 아래채를 내주고 물과 음식을 나눠 먹었다. 배려고 관용이며 측은지심이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평화를 사랑한 고장이 있을까?
임진왜란 당시 최초 승전지였던 옥포 지역에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자리 잡았고, 포로수용소 비행장과 물자를 수송한 항구가 있던 장평 마을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가 자리 잡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선조의 고난과 시련은 후손에게 뼈가 되고 살이 돼 세계로 가는 평화의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흥남철수작전의 피난민과 후손들은 거제 장승포항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기억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며, 70년 전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평화의 길을 만들며 평화경제를 이야기한다.
대우조선해양의 야경 너머로 보이는 옥포만
+ Information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 경남 거제시 계룡로 61
계룡산 : 경남 거제시 거제면 옥산리
무지개길(여차~홍포) : 경남 거제시 남부면
평화의 길 :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장승로
김 동 성
민주평통 거제시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