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02020.12

북한 IN

도심 축전으로 펼쳐진 평양의 미디어 공연
‘빛의 조화 2020’

지난 10월 6일 저녁 평양 시내 장대재 앞 광장에서는 북한판 미디어 쇼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6층 건물인 평양제1백화점 서쪽 벽면을 활용한 대형 미디어 아트는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 미디어 쇼의 공식 이름은 ‘조명축전-빛의 조화 2020’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빛을 이용한 미디어 퍼포먼스는 북한에서 처음 소개되는 이벤트였다. 10월 8일까지 3일간 진행된 조명축전은 10월 10일 당창건 75돌 기념행사의 사전 행사 격이었다.

보기 드문 객석과 무대... 파격의 연속
조명축전의 관람석은 만수대예술극장과 인민학습당을 배경으로 분수공원 쪽에서 백화점을 향하는 방향으로 배치되었다. 스크린도 객석도 김일성광장처럼 정규적인 대형 이벤트 전용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파격적인 설정이었다. 지난 12월 31일 밤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신년음악회에 이어 당창건 75돌을 맞아 새롭게 창조된 조명축전은 첨단미디어를 활용한 대형 영상 축제일뿐만 아니라 야간 행사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축제로서의 효과성이 높은 행사였다. 관람석 여기저기에서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는 등 관객들의 적극적 참여도 눈에 띄었다.

조명축전을 창작, 연출한 목란광명기술사는 VR을 이용한 실감 콘텐츠 생산에도 주력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쳐

10월 10일 당창건 기념일 경축 장면으로 시작한 ‘빛의 조화 2020’은 마지막 축하 불꽃 장면으로 마감하기까지 20여 분간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과 관련된 김정은 시대 성과들을 빠른 장면 전환으로 보여 주었다. ‘빛의 조화 2020’의 장면들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과학기술 교육의 전당인 과학기술전당 내부와 외관, ‘주체철’ 생산 장면, 신형 지하전동차와 리모델링한 지하철역 플랫폼,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생산되는 트랙터 공장, 탄소하나화학공장과 비료 폭포, 황금벌판과 벼이삭, 양묘장과 남새 온실, 과일 바다, 축산 풍경, 동해안 풍어 장면 등 김정은 시대 경제산업 성과를 전반부에서 보여 주었다. 이어 조명축전이 진행되는 평양제1백화점의 로고를 연출한 후 백화점 내부를 영상화하여 다종화, 다양화, 다색화를 기치로 생산·공급되고 있는 인민 소비품을 보여주었다.

이어 미림승마구락부를 시작으로 중앙동물원, 자연박물관, 릉라곱등어관과 수족관, 마식령스키장,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울림폭포, 송도원유원지, 입체율동영화관(4D영화관), 목란오락관 등 유원시설 및 관광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어 원형 건물인 기상수문국에서 인민극장으로 연결되는 장면, 무대 위 가수들의 공연, 발레 공연을 실루엣으로 보여 주고 보건분야의 성과로 자랑하는 류경안과병원과 현재 건립 중인 평양종합병원에 응급헬기가 착륙하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끝부분에서는 지난여름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재난 장면을 보여 준 후, 수도당원사단 동원에 의한 피해복구 장면, 그리고 신축된 살림집 장면을 배치하였고, 다시 당창건 기념 불꽃 장면으로 마감하였다.

‘빛의 조화 2020’이 펼쳐진 장대재 앞 광장 ⓒGoogle Earth

북한의 콘텐츠 제작 능력 보여주는 선전물이자 새로운 예술 장르
이와 같이 ‘빛의 조화 2020’은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수많은 영상들의 역동적 전환이 가능하도록 편집하였다. 내용적으로는 김정은 시대 경제개발과 ‘정면돌파전’의 성과를 집약하여 보여줌으로써 북한 주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고자 하는 거대한 선전물이었으며, 형식적으로는 입체 영상과 멀티미디어 기술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예술 장르라 할 수 있다.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0월 6일 평양 장대재 앞 광장에서 펼쳐진 ‘빛의 조화 2020’ ⓒ연합/조선중앙통신

이번 조명축전은 우리 언론에 언급된 것처럼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전야제나 4월 판문점 평화의집 미디어 쇼에서 힌트를 얻은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첨단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쇼를 구현하려면 북한 내부의 축적된 기술과 역량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 이번 조명축전을 창작, 연출한 목란광명기술사이다. 목란광명기술사는 2013년 북한 최초 4D 영화관인 ‘릉라입체률동영화관’을 만들면서 주목받은 북한을 대표하는 콘텐츠 개발회사이다. 칠골역 부근에 공장을 신축하고 4D 영화관만이 아니라 다양한 첨단 놀이기구를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VR을 이용한 실감 콘텐츠 생산에도 주력하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빛의 조화 2020’의 14분 28초부터 1분 30초 동안 이 회사의 핵심 콘텐츠인 4D 영화와 ‘목란오락관’의 다양한 게임들이 일종의 PPL 광고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빛의 조화 2020’에는 자연박물관 공룡 장면과 같이 목란광명기술사가 개발한 3D 영상이 그대로 활용된 곳도 있다. 이렇듯 이번 조명축전은 북한 나름의 콘텐츠 제작 능력을 보여준 것이며, 향후 남북한 콘텐츠 교류 시 살펴보아야 할 참고자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주목이 필요하다.

박 영 정 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