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포커스
북한을 버티는 힘,
대중동원
최근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과 80일 전투 등 북한의 대중동원체제가 갖는 성격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북한의 대중동원이 수해복구를 비롯하여 북한 경제와 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분석해 본다.
임가공과 수산물 등 중하부층 인민의 생활까지 포괄적인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가해지는 상황에서 2020년 1월 북한 당국은 스스로 세계 최초로 코로나19를 이유로 국경을 폐쇄하였다. 필자는 과거 북·중 국경 등에서 인터뷰 조사를 하였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이런 조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지인들을 통하여 간접적인 형태로 북측 인사들에게 북한 내부 상황을 조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경제 생활이 다소 악화되긴 했지만 기본적인 식생활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물론 내년 봄 춘궁기가 되어야 정확한 식량상황을 알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식량문제가 해결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불만도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극심하고, 매일 조선중앙방송에서 선전선동을 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는 최근 조직이 재건되면서 조직적인 선전이 재생되었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 장기간의 포괄적 제재, 그리고 미국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와 한반도정책이 수립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에 대비해서 조직을 장악하는 등 전략적으로 상당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이루어진 열병식과 80일 전투 등 북한의 동원체제가 갖는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 조직 재건사업 꾸준히 진행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북한은 한때 조직이 붕괴되었다. 도시 노동자들조차 식량을 찾아 전국으로 유랑을 떠나면서 빈집이 등장할 정도로 당 일꾼에서 일반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조직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 들어 당국은 당 조직 재건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으며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들어선 이후 당의 말단조직에 이르기까지 조직 재건에 힘써왔다. 2013년 12월 27일 전국 3대 혁명소조원 열성자회의가 1984년 이후 29년 만에 평양에서 개최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는 고난의 행군 시기 붕괴된 조직을 다시금 통제사회로 재건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은의 리더십을 통해 재건된 조직이 체제를 받드는 동력이 될 수 있다. 2018년 여름 ‘김정은의 야망’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공영방송(NHK)에서 김정은 위원장에 관한 스페셜 방송을 하였다. 이 방송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약 6년간 발언한 2만 4,000여 개의 연설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초기 이미 과거 김일성, 김정일의 성과를 뛰어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른바 김정은 위원장은 ‘치밀한 셈법을 하는 전략가’이며 ‘현장방문이 많은 실무형의 젊은 지도자’라는 것이다.
지난 11월 13일 북한 김화군에서 수해복구를 마치고 새집들이 행사에 참여한 북한 주민들 ⓒ연합/조선중앙통신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의 실천적 면모는 여러 방면에서 포착되고 있다. 올해 홍수 피해만 보아도 김정은 위원장은 재해가 발생하자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피해상황을 파악하여 현지 지원을 직접 지시하는 등 발 빠른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재해피해 당시 공장기업소 등의 생산 현장보다는 주로 주민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주민지역을 우선적으로 방문했다. 복구사업의 주 대상 또한 주민들의 살림집 건설에 집중이 되어 있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일꾼’이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김정은 시대 숙청은 주로 관료들의 부패와 관련된 사례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주민들의 마음속에 김정은 위원장은 ‘실천하는 지도자’, ‘인민의 지도자’로 인식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인민의 조직을 재건하고, 위기 속에서 체제 내부의 결속을 다지게 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삼중고의 위기 속 북한이 버티는 힘은?
삼중고의 위기 속에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거대한 버팀목은 조직이다. 2016년 가을 두만강 전역에 대규모 홍수가 났다. 그럼에도 그해 연말까지 북한은 불과 3개월 만에 수십만 채의 대규모 아파트와 주택을 건설하였다. 평양, 남포 등 대도시 주민들이 대규모, 반자발적으로 동원이 되었고, 지역별로도 대대, 소대 등 군대편제를 따랐다. ‘전화위복의 무산’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중앙방송에 수차례 방영된 영상을 보면 대규모 군인돌격대와 인민들이 차출돼 조직된 ‘건설돌격대’들이 수십일 동안 두만강 유역을 재건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2010년대 초에 강원도 세포등판도 같은 방식으로 건설되었다. 지난 5년간 대중동원방식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는데, 최근 홍수피해로 인한 지역들도 대중동원방식에 의해 신속하게 복구되고 있다.
80일 전투와 김정은식 자력갱생
북한 주민에게 ‘전투’는 하루 세끼 밥 먹으면 하는 것이어서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앞두고 실시된 80일 전투 또한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 80일 전투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대북제재, 코로나19, 홍수피해 등 삼중고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내부 문제, 그 중에서도 특히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당국이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당국은 당면한 국내 경제문제,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재해피해 발생 즉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소집하고 군대를 전면 동원하였다. 아울러 정치국회의에서 이병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에게 원수칭호 수여를 결정하였다. 경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실용적·실천적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21일 함경남북도에서 수해복구전을 벌인 북한 수도당원들이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보고대회를 열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셋째, 과거에는 ‘전투’가 주로 공장기업소 등 생산 단위부문에 한정되어 행해졌다면, 최근에는 전당적, 전국가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농촌 동원, 하다못해 볏단 운반을 나가는 일도 80일 전투의 하나로 취급한다. 이는 통제구조가 더 강화되고 있으며, 경제상황이 그 만큼 어렵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전 사회적으로 모든 단위가 동원되게 구조화 되어 일부 생산단위만 해당되던 대중동원에 비해 전 국민에게 책임의 강도가 분산되는 효과도 있다.
넷째, 자력갱생이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기존과 다른 자력갱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종전에는 주민 의식주를 비롯하여 공장기업소의 생산, 지역의 재정에 이르기까지 중앙집권적 틀에서 국가(중앙)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였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실시 등을 통해 각 하부단위들이 스스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분권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국가 재정의 부담을 감소시키는 한편 각 경제 주체들의 책임을 강화시킨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각 단위들의 역량강화는 곧 김정은식 자력갱생이며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으며 80일 전투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의하면, ‘전투’를 2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적과 직접 맞서서 하는 싸움’,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혁명적 파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혁명적으로 벌이는 활동’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후자에 속하는 수많은 대중동원 성격의 전투를 전개해 왔다. 올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결정한 ‘80일 전투’ 또한 제7차당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의 마지막 해인만큼 총돌격전을 선언한 것이다.
대북제재와 함께 코로나19, 기상재해 등 삼중고에 직면한 어려운 상황에서 80일 전투는 이 내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총력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 시대 재건된 조직을 통해 인민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실천의 지도자’라는 인식을 인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삼중고 속에서 북한 체제를 버티게 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정 은 이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