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코로나19 이후...
코로나19가 가져온 음악계의 변화,
예술의 권위 대신 일상의 삶으로...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음악계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공연과 예술교육의 연기와 취소는 온라인이라는 공간과 만나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공연예술계는 시련의 시간을 겪고 있다. 한국 음악계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등 국공립 공연장의 공연 취소와 민간 공연계, 예술계, 음악산업계의 피해가 이어졌다. 공연의 취소는 예술가 개인뿐 아니라 공연감상, 음악교육 등 여러 차원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음악 생태계와 음악 환경 전체를 변화시켰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공연과 예술교육의 연기와 취소가 잇따르면서 예술가들은 당장의 공연무대를 잃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반복되는 공연 예매와 환불로 관객들도 혼란과 피로를 겪고 있다. 서서히 붕괴되는 공연 인프라와 예술인의 심리적·재정적 불안 등 음악생태계의 무형적 피해는 공연예술전산망(KOPIS)이 보여주는 1,135억 원 피해액이라는 수치보다 훨씬 크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관객과 만나려는 시도는 진화 중이며 예술가들은 예술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보고자 고민한다. 이 글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코로나19 이후 한국 음악계의 대응, 극복을 위해 등장한 다양한 시도, 미래를 위한 변화를 정리하고자 한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음악계의 대응
일시적일 것 같았던 코로나19는 세계 유수의 극장과 공연장,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페라 하우스, 뮤지컬 컴퍼니, 극장, 페스티벌 등의 문을 닫게 만들었고, 관련 인프라와 예술가들의 생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 음악계도 지난 2월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국공립 극장 운영의 중지로 사실상 공연장에서 관객을 맞는 일이 어려워졌다. 공연장에서의 공연을 대신하여 온라인 공연 공개가 시작되었는데, 국립국악원의 <일일국악>, 국립국장의 <패왕별희> 등 창극, 예술의전당의 <싹 온 스크린> 등이었다. 이어 무관중 혹은 소수 관객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연이 유튜브, 네이버TV 등 실시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개되었다. ‘방구석 1열 콘서트’는 거리두기와 격리로 집안에 고립된 관객들을 온라인 공연장으로 초대했다. 민간 공연계와 상생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도 속속 등장했다. 국립국악원이 민간 예술가들의 공연을 뮤직 비디오로 촬영하여 공개하는 <국악 人>을 필두로, 예술의전당의 대관료 전액 지원, 예술인 긴급생활자금 지원을 비롯하여 영상화 지원과 온라인 공연 공모사업이 이어졌다.
온라인 공연은 촬영부터 송출에 이르기까지 자본과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예산을 갖고 있는 국공립 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며, 상업예술-기초예술의 장르 간 격차는 더욱 심화되는 모순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공연 영상화가 가져온 공연 정체성과 미학에 대한 논쟁도 시작되었다. 공연장을 잃은 음악가들의 고통과 현실 인식은 관습적이라 여겨졌던 공연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활동을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와 실험이 등장했다. 극장의 공연을 그대로 생중계하는 방식을 벗어나 공연의 해설을 보완하는 영상을 추가하거나, 처음부터 안방 1열 관객을 배려하는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고, 자동차를 타고 공연을 감상하는 드라이브 스루 공연을 시도했다. 극장 대신 대안적 공연장과 공연의 형태를 시도하는 일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서는 코로나19로 등장한 한국음악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튜브에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슈가의 <대취타> ⓒ유튜브 영상 캡쳐
코로나19와 한국 음악계의 다섯 가지 트렌드
① 코로나19가 앞당긴 디지털 공연의 세계
음악 생산과 향유에서 디지털 환경은 가장 중요한 작동방식으로, 음악소비에 있어 음반에서 음원으로의 전환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디지털 전환 이후 극장과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한 라이브 공연이 더욱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대면 공연이 불가능해지자 라이브 공연의 시대는 급속히 막을 내리고, 디지털 공연의 세계를 앞당겼다. 관객들은 전 세계 유수의 음악공연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예술가는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음악계에서는 텔레콘서트 등을 통해 타 지역의 예술가들과 온라인 음악협업을 하려는 시도도 더욱 빈번해졌다.
② 4차 산업혁명, 미래 기술과 예술의 융합
4차 산업혁명이 한국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2016년 이후에도 예술계에서 기술에 대한 기대는 회의적이었다. 기술이 예술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을지, 기술에 의해 예술이 왜곡되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들이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기술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자 예술가들은 기술과 예술의 접목에 전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국립국악원의 ‘360° 국악VR’, 서울시향과 EBS가 공동제작한 ‘VR 오케스트라’, 경기아트센터의 ‘VR 공연생중계’ 등 온라인 기반의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AR(Agmented Reality, 증강현실)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VR 실감형 콘텐츠를 기초예술분야에서 활용한 시도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기술과 예술의 접목은 이후 대면공연이 다시 활성화될 때 더욱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③ 예술양식의 변주, 무대미술 생략된 오페라
코로나19가 가져온 비대면, 거리두기, 온라인 공연 문화는 기존 예술양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광주 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박하사탕>은 극장 공연을 기반으로 압도적·음악적·양식적 미장센을 보이는 장르인 오페라에서 무대미술을 과감히 생략하고 음악 중심의 콘서트를 중계했다. 무엇보다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분리된 두 개의 스튜디오 공간에 솔리스트,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배치하여 동시에 녹화하는 이원녹화를 진행하였는데, 코로나19 시대에 맞추어 오페라라는 장르의 특성을 재해석하고 예술양식을 변주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영화와 음악,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연 등 이종장르를 결합해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서울대학교 국악과의 사례도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음악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공연은 게임 요소를 도입하여 관객 이머시브 공연을 실험한 경기시나위 오케스트라의 ‘미래극장 프로젝트’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음악공연이 아니라 관객이 선택하여 참여하는 공연, 게임의 룰을 따라 진행되는 공연은 실시간 공유 등 기존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으로 확장된 예술양식의 실험이자 변주이자 확장이었다.
이날치밴드와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Feel the Rhythm of korea ⓒ유튜브 영상 캡쳐
④ 대안공간의 부상과 관객 친화적 공연의 재발견
비대면 문화는 가급적 적은 수의 관객을 비교적 적게 대면하는 문화로 이끌어갔다. 음악계의 뉴노멀은 연주자의 수와 관객의 수를 줄이고 숲속, 야외, 자연, 한옥 공간 등 공연장을 대신하는 대안공간의 부상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대안공간에서의 공연들은 기존의 살롱음악회의 진화이면서 코로나19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공연 공간의 재발견이다. 소규모 관객을 위한 공연들은 관객 친화적 공연으로 즉각 연결된다. 근거리에서 공연 해설을 하고 예술가와 관객은 대화를 나눈다. 온라인 공연도 관객 친화적으로 기존 극장공연에 비해 시간을 축소한 소형 공연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⑤ 예술의 권위 대신 일상의 삶으로 들어온 음악
이러한 변화들은 오랫동안 누려온 음악의 예술적 권위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예술은 전문가인 예술가와 계급 기반의 공동체인 애호가만의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계에서 서서히 감지되고 있었지만 코로나19는 이를 훨씬 빠르게 당겨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술의 순수성에 대한 오래된 논쟁을 뒤로하고 평등한 예술, 삶 속의 예술이 가능해진 것이다. 음악계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지난 9월 16일 ‘2020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코로나19로 방한하지 못한 해외의 연주자들이 온라인 연결을 통해 합동 공연을 했다. ⓒ연합
포스트 코로나 한국 음악계의 미래
코로나19는 여러모로 고통스러웠지만 예상치 않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클래식계에서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수 예술가들이 대거 귀국하게 되어 국내 공연계의 내부 인적 인프라가 풍부해졌다. 온라인 음악회로 인해 관객들은 수준 높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야외활동 대신 혼자 있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음악감상 시간이 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게 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국악계는 BTS 멤버인 슈가의 뮤직비디오 <대취타>, 한국관광공사가 이날치 밴드와 공동으로 제작한 영상이 전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영상화가 기존 대면공연으로는 만날 수 없었던 관객을 유입시키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영상화 작업과 라이브 공연의 온라인 송출을 경험한 것은 새로운 자극과 미래를 위한 준비의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준비하게 된 뮤직비디오와 공연 영상은 추후 국제교류 등에도 유용하게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공연장뿐 아니라 OTT 플랫폼(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을 통해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면 음악계에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온라인상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겠지만 얼마나 창의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느냐에 따라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은 달라질 것이다. 코로나19는 공간, 매체, 소통의 방식을 다변화하도록 요청하는데, 무엇보다 비대면 환경은 예술가와 관객 간 다른 방식의 소통을 가능하도록 하며 때로 더 깊고 넓은 대화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를 통해 예술계 내부의 해묵은 논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 논의가 시작되며 성찰과 반성의 계기가 되어, 예술생태계의 건전성이 증가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 세계의 인류가 겪는 위기 속에서 음악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어려움을 겪을 때 예술은 더욱 힘을 발휘하여 우리 사회에서 그 존재 이유를 드러내야 한다. 미래의 음악은 소통과 치유, 생명중시, 인간존중과 문화다양성을 실천하는 삶의 예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 희 선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