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02020.12

지난 11월 14일 청와대에서 제15차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화상으로 열렸다. ⓒ연합

국제

신남방정책과 아세안

패권 중심 극복하고
규범 중심의 국제질서 모색해야

신남방정책의 중심지역인 아세안 국가들은 국제질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강대국의 리더십 변화, 그에 따른 국제질서 재편을 준비하는 아세안 국가들의 움직임을 알아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이들 국가들과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강대국 리더십의 변화와 국제질서
11월 3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이 선거인단 270명 이상을 확보했다. 아직 공식적인 절차가 끝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저항할 가능성이 있지만 바이든의 당선은 확정적이다. 바이든 당선에 따른 리더십의 교체는 국제질서의 변화를 예고한다.

트럼프는 재임기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파리기후협정, 유네스코에서 탈퇴하는 한편 대중국 무역전쟁을 펼치며 WTO 규범의 근간을 흔들었다. 바이든 측은 파리기후협정으로의 복귀 의사를 밝혔다. 바이든 시대가 본격화되면 미국은 다자체제로 복귀하며 국제사회에서 제자리 찾기를 추진할 전망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정치안보 질서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띨 전망이다. 트럼프는 재임기간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역동성을 강화시켰다. 종전선언과 한반도 비핵화의 과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남북한 당국의 노력과 더불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완화되었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대비되지만, 중국 견제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갖는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하고 중국 견제를 본격화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펼치고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을 구체화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외교안보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를 고려할 때 바이든 취임 후에도 중국 견제라는 정책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5G를 비롯한 미래기술 분야 선점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이후 다자 무역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재난 상황을 극복하는 일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인태전략을 통해 동아시아 내 핵심 국가, 특히 일본의 지지와 적극적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 개정 시도, 한국에 대한 부당한 무역제재 등 극우성향의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한편 인태전략을 통해 미국의 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아베의 뒤를 이은 스가 총리도 미·일동맹의 강화를 천명하고 중국 견제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스가 총리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택했다. 스가 총리는 법의 지배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남중국해 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세안 회원국은 그간 미·중 간 갈등 구조의 심화 속에서 중립성을 표방하며 아세안 중심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아세안 회원국과 중국 간 경제적 의존관계는 더욱 심화되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과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을 통해 아세안 국가의 인프라 개발에 적극 참여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을 통해 지역협력의 제도화도 추진되었다. 반면, 아세안 국가 내에서는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제적 의존도, 남중국해 갈등을 포함해 중국의 역내 영향력 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미국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중립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아세안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협의체인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불참하는 등 아세안에 소원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중심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미국과 일본 내 리더십 변화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연속성을 동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일 동맹 강화와 중국 견제 심화가 예상되는데 그 핵심에는 인태전략이 있다. 아세안의 인태전략에 대한 대응은 국제질서 변화 속에 그 위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아세안
인태전략은 2017년 국가안보전략과 2018년 국가방위전략을 거치면서 발전되었고 2019년 인태전략보고서(IPSR)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이자 현 국제질서의 수정을 추구하는 도전자로 정의한다. 인도태평양 개념은 기존 아시아태평양 또는 환태평양 개념과는 달리 지경학과 지정학이 결합된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포용성을 지향하고 있지만, 인도의 적극적 관여를 요청하면서 중국을 배제하는 배타적 전략이자, 동맹국의 참여와 부담공유(Sharing Burden)를 의도하는 전략이다.

인태전략의 전개로 인해 역내 미국과 중국의 양자 경쟁이 심화되고 아세안은 그 사이에 끼인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개별국가 차원을 넘어 기존 지역협력체(아세안, 아세안+3, EAS)에도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 지역협력체 내 중국의 역할과 참여를 고려할 때 인태전략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경우 아세안이 주도해 온 지역협력체의 상대적 비중과 영향력 감소도 우려된다. 인태전략은 다양한 개발협력(인프라 개발협 력, 인적자원개발)프로그램도 제시하고 있어 중국의 일 대일로 전개와 경쟁적 관계가 불가피하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목표 : 미국 우선주의로 약화된 미국의 영향력 복원과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의 확장 저지를 위한 정책으로, 인도-태평양에서 법치,
자유, 항공·운항자유 보장

참여국가 : 미국, 호주, 인도, 일본, 아세안 등

<한국의 신남방정책> 목표 : 신남방국가들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폭넓은 분야에서
미·중·일·러와 유사한 수준으로 관계를 강화해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 세계의 공동번영과 평화 실현

참여국가 : 인도, 아세안(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태전략은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공 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아세안은 그간 아세안 역내 지 역협력 심화와 역외 또는 동아시아 차원으로의 지역주 의 확대를 추구해 왔다. 지역주의 확대 과정은 아세안의 경제력 등 물리적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경 쟁적 관계를 고려한 중립원칙과 유연한 대응으로 가능 했다. 일례로 아세안+3 체제에서 중국의 역내 영향력이 강화될 것을 우려한 일부 회원국의 이해를 반영하여 별 도의 협의체로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창설했다.

미국의 인태전략 추진에 대해 아세안은 ‘인태전략에 대한 아세안전망(AOIP)’이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아세안은 ‘갈등과 경쟁’이 아닌 ‘조화와 협력’ 으로서의 인태지역이라는 지리적 인식을 새롭게 제시한 것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이 개별적으로 인태전략에 대 응할 경우 상이한 비용, 리스크, 이익 등에 대한 기대와 전망으로 아세안 공동체의 비전 실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고려되었다. 이에 개방성, 포용성, 아세 안 중심성 재확인을 통한 규범과 연계성, 해양협력, 지 속가능개발협력, 경제와 기술 분야 협력을 강조하여 실용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인태 전략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인도네 시아 조코위 리더십이 추구하는 글로벌 해양전략의 상 승효과와 개발협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세안 은 아세안 중심성을 확보하여 인프라 개발 및 경제원조 추구를 위한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즉 개별국가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 간 양자택일의 정치적 문제를 지 역적 차원의 중립성과 아세안 중심성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태전략과 신남방정책 사이, 아세안과의 전략적 연대 필요
인태전략 추진과정에서 동맹국가의 참여와 역할분담 에 대한 미국 측의 요청은 한국 정부의 대중국 관계를 고려할 때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인태전 략과 신남방정책의 연계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국방부 가 인태전략과 신남방정책과의 연계 협력 구상을 발표 한 데 이어 외교 당국은 기능적 협력 측면을 부각하여 신남방정책과 인태전략의 중첩성을 강조하고 이와 연대 할 것을 밝혔다.

그러나 아세안이 인태전략이 내포한 중국 배제와 견제 적 성격을 거부하며 중립성과 아세안 중심성을 강조하 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태전략과 신남방정책의 연계는 아세안의 인태전략에 대한 대응과 상충되며 오히려 아세한 국가가 신남방정책을 인태전략의 하위 전략으로 인식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인태전략을 신남방정책과 기계적 조합으로 연계하는 데 그칠 경우 인태전략에의 대응과 신남방정책 추진 모두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이는 인태전략의 현실적 수용에 있어 개별국가에서 발생하는 외교적 선택 문제를 아세안 차원으로 이전시키는 아세안의 대응과도 거리가 멀다.

코로나19는 동아시아 질서에 또 다른 변수이다. 미국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인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의 코로나19 대책 공유”를 강조하여 코로나19 이슈를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국내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트럼프 재선 실패 등을 고려할 때 국제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중국을 배제한 인태전략의 적절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11월 12일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담에 각국 정상들이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연합

코로나19에 따른 대응과 피해 정도는 국가별로 상이하다. 코로나19는 보건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침체와 함께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 정부는 강도 높은 통제정책과 함께 수차례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아세안 및 동아시아 차원의 포괄적 보건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모범적 방역 사례를 통해 아세안 국가들에 방역물품을 제공하고 아세안코로나대응기금에 기여하고 아세안+3 긴급의료용품비축제도 구축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아세안 및 아세안+3의 지역협력체를 통해 감염병 통제와 신속대응을 위한 투명한 협력 메커니즘을 추구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위기적 상황 속에서 강대국의 리더십 교체에 따른 국제질서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강대국의 역학관계에 대한 수동적 대응을 고민하기보다는 코로나19 위기를 협력과 상생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강대국 패권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규범 중심의 대안적 국제질서를 모색해야 한다. 이는 아세안과의 적극적 협력과 전략적 연대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양자택일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 강화는 중견국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아세안 공동체를 추진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김 형 종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국제관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