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02020.12

2018년 12월 7일 청와대 앞 사랑채 부근에 설치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는 작품 앞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

특집 3

바이든 정부의 미국, 어디로 갈까

새롭게 펼쳐질 북·미관계,
그 사이 한국의 평화전략

미국 대선이 끝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언론이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바이든 당선 확정을 발표했지만, 트럼프 현 대통령은 승복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하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이젠 미국 대선이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까지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미 대선의 후유증이 크고 길어지면 새로운 미국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역시 공백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과연 미국의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북한의 제8차 당대회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포스트 코로나’ 또는 ‘위드-코로나’ 시대로 불리는 예측 불가능성이 상수가 된 시대일 것이다. 미 대선 결과만으로 북·미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 시기와 비교해 예측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미 대선 결과의 후유증 조기 해소와 경제, 코로나19, 인종 갈등 문제 등 유권자들의 관심 영역에 대한 대내 정책을 우선 추진해 나갈 것이다. 대북정책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양자적 접근보다 시간을 두고 우선 동맹국들과 함께 다자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 해결을 단기적 성과가 아니라 미·중관계와 연결하여 장기적 과제로 설정하고 원칙과 절차에 따른 상향식(Bottom-up) 단계적으로 접근하려 할 것이다. 바이든의 대중 정책만 놓고 보더라도 미·중 전략적 경쟁은 지속될 것이고 이는 북·미관계 진전에 긍정적인 요인보다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북한은 이번 미 대선의 혼란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권위가 해체되었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권위가 실추된 미국으로부터 체제의 안정 보장과 이를 위한 합의의 안정적 이행을 담보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면 북·미대화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하노이 결렬 이후 지난 2018~2019년 북·미관계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시간을 허비했다고 보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미 대통령이 하향식(Top-down)을 선호한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교체돼 대미협상이 복잡하고 장기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북·미협상 테이블에 쉽게 복귀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북한은 북·미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내년 1월 제8차 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5개년 계획 및 국가전략을 수립·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신행정부의 대북정책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제8차 당대회에서 발표할 새로운 5개년 계획을 고려하지 않은 북·미관계는 예단에 불과하다. 북한이 중요한 행위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 대선 이후 후속 처리의 유동성,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의 지속, 북한의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개최 이후 2기 김정은 정권의 시작 그리고 한국의 대선 국면 진입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겹치면서 단기간 내에 북·미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검토와 인선이 마무리되기 전인 2021년 전반기에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시험발사를 실시할 경우 과거 2009년 오바마 시기의 데자뷔와 ‘전략적 인내’가 반복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바이든 정부가 북한의 군사적 행동만으로 ‘전략적 인내’를 선택하지 않도록 우리의 적극적인 메시지 전달과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강화 정책과 건강한 한미관계
바이든은 전임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대외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험 요인도 완화할 전망이다. 한미관계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정권 교체는 트럼프 정부 시기 방위비 분담금이나 전작권 전환 협상 등에서 나타난 난제들을 새로운 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경제분야에서는 미국 중심의 보호주의 경향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양보를 얻어내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맹 강화 정책에 따라 방위비 분담금의 경우 트럼프와 같은 과도한 증액 요구가 아닌 우리 측이 제시한 수준에서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동맹강화 정책하에서 전작권 전환은 한미연합훈련과 연관된 문제이면서도 미국의 유엔사 재확장과 대중국 군사전략과도 연결되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에 사드 문제의 재점화,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 요구 등 새로운 뇌관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강화 정책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정권 교체는 트럼프 정부 시기 방위비 분담금이나 전작권 전환 협상 등에서 나타난 난제들을 새로운 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연합

한국은 안보에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하면서도 경제는 중국과의 교역이 압도하는 불균형 상태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한미동맹은 중국을 겨냥한 다원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하려는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군사영역뿐만 아니라 한미관계 전반을 규율하는 한미동맹의 총체화, 신성화, 물신화가 유지되는 것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에 커다란 장애로 작동할 수 있고, 우리 사회에 동맹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장애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동맹의 의미와 목적, 효과 등에 대한 전반적인 재규정을 통해 건강한 한미관계를 만들기 위한 한미 상호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중 전략적 경쟁 속, 새로운 평화전략은?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한반도 비핵평화의 안착을 위해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한미/한중관계를 재정립하려고 노력해 왔으나 남남갈등과 동맹의 저항으로 한계에 직면했다. 대북제재의 지속, 북한이 생각하는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신뢰성 결여, 비핵화 협상의 부진 등으로 남북관계 진전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현재 글로벌 및 역내에서 점차 치열해지는 미·중의 전략적 경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동의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어렵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미·중의 입장 차이는 물론 미·중 양측으로부터 미·중 경쟁과 관련된 선택의 압박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중 양측의 요구를 계속해서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은 과거 냉전시기 중·소분쟁 사이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시계추 외교’를 다시금 미·중 사이의 전략적 경쟁 구도를 활용해 펼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등 김정은 체제의 생존과 이익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 및 주변국의 이해관계 상충이라는 배경하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 수립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미 대선 이후 북·미대화가 재개되기를 기다리며,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와 연계해서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한반도정책의 우선순위와 방향에 따라서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만큼 한국 정부는 미국의 바이든 신행정부가 조기에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인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적극 제시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한반도 평화전략은 자기주도적인 남북관계를 어떻게 모색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야 한다. 제재를 탓하며 북·미관계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한반도의 변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제적 변화로부터 한반도의 평화는 시작된다. 2018년 남북한이 잡았던 손을 다시 잡고,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과 대립의 공간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 스스로 중심이 되어 남북관계를 한 단계 진화시켜 남북한 모두 한반도 문제에 대한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한미, 한중, 북·미, 북·중 등 다양한 양자관계 연결 및 역할 공간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100여년 이상 타국에 의해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를 위한 선택을 강요당해 왔던 구(舊)한반도 시대를 더 이상 딸과 아들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김 동 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