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02020.12

협의회 탐방

제주시·서귀포시협의회

평화의 섬 제주에서
그리는 미래

무언가를 설명하는 데 얼마나 많은 수식어가 필요할까. 청정 자연과 수려한 경관, 한라산과 백록담, 휴양지, 한반도의 가장 큰 섬, 국제자유도시… 수많은 표현이 있지만 제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평화’일 것이다. 예로부터 도둑, 대문, 거지가 없다는 3無의 독특한 제주의 전통에는 분쟁과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평화 정신이 깃들어 있다.

4·3 위에 깃든 평화의 가치
1945년 해방 후 한반도에 벌어진 이념의 대립은 제주에 4·3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만들었다. 70여 년이 흐른 지금, 4·3의 기억을 바탕으로 제주는 ‘평화’의 가치를 쌓아올렸고, 이제는 도민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평화의 섬으로 변모했다.

제주 지역 자문위원들의 활동도 이러한 평화의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활동과 사업이 축소되긴 했으나, 각 협의회 자문위원들은 도민과 함께할 수 있는 사업을 고안하면서 평화통일을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만들고, 자문위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제주시협의회가 ‘제주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개최한 제주 평화플랜 시민대화는 시민들 사이에 평화 담론이 싹트는 계기였다. 이 자리에서는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과제와 평화통일을 위해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이 논의됐는데,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서로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나눌 수 있었다.

강보배 제주시협의회 사무국장은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15년이 됐지만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는데 평화플랜을 통해 시민들의 쓴 소리와 함께 구체적인 방향성이 제안됐다”며 “평화를 만들기 위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이 시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전했다.

제주시협의회 자문위원 힐링 숲 걷기

서귀포시협의회 청년 평화공감 원탁회의


신진성 제주시협의회장은 “평화플랜을 통해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지만 실제로 꿰어 맞춰서 결실을 만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며 “이런 활동들이 계속 이어져 나가면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와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귀포시협의회는 자문위원들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청년들의 평화통일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평화공감 원탁회의와 자문위원 역량 강화 워크숍이 대표적이다.

17기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어머니의 뒤를 이어 19기 민주평통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연정 서귀포시협의회 교육홍보분과위원장은 “평화통일이 나와는 먼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실천했다”며 “통일시대 시민교실, 청년 평화공감 원탁회의, 자문위원 역량 강화 워크숍 등을 퀴즈, 캘리그라피 같은 활동으로 흥미롭게 접근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허상우 서귀포시협의회장은 “지난 11월 진행한 워크숍에서는 통일교육과 함께 ‘내가 찾는 평화와 행복’을 주제로 한 특강과 문화공연, 여행까지 함께해 자문위원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며 즐겁게 어울리는 속에서 실천력이 나오는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서귀포시협의회 자문위원 역량 강화 워크숍
여성과 청년, 주체가 되다
두 협의회를 한 자리에서 만나보니 모두 19기에 처음 활동을 시작하는 여성과 청년 자문위원에게 중책을 맡겼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제주시협의회에서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자문위원이 된 강보배 사무국장은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자문위원분들이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존중해 주신다”며 “덕분에 평화통일 영어스피치나 대학생 토론회 등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19기에 여성과 청년 자문위원의 비율이 늘어나 이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는 자문위원들의 활동을 위축시켰다. 그러나 서귀포시협의회 여성분과위원회는 방역과 예방을 철저히 하면서 여성 자문위원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그동안 8·15 광복절을 맞아 항일운동유적지 탐방, 제주의 환경을 지키는 클린 올레, 2032 공동올림픽 유치 기원 메시지를 담은 평화트리 제작 등을 안전하게 진행했다.

이연정 위원장은 “‘2032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유치기원’이라고 적힌 배낭을 메고 클린 올레 사업을 할 때 관광객들이 많이들 궁금해하고 관심 가졌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우리의 작은 노력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평화 공감대도 점점 확산될 것”이라고 전했다.

제주시협의회 제주 평화플랜 2032 공동올림픽 기원
작은 것부터, 세심하게, 제주형 평화통일 사업
앞으로 남은 활동 기간은 약 10개월. 이 시간 동안 제주 지역 자문위원들은 어떤 평화의 주춧돌을 놓을까.

제주시협의회는 2032 공동올림픽 홍보와 평화통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연령별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아이의 눈으로 본 평화를 담은 평화사진 공모전, 중고등학생 대상 랩 페스티벌, 대학생과 청년을 대상으로 한 토론대회 등이 대표적이다.

신진성 회장은 “많은 사업이 우리만의 잔치로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웠다”며 “함께하는 분위기를 어떻게 확산시켜 나갈 것이냐를 깊이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강보배 사무국장은 “청년과 평화통일이 너무 멀어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하며 협의회뿐 아니라 도차원에서 젊은 평화통일 리더를 키우는 육성사업을 벌이는 등 젊은 층의 공감대를 얻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귀포시협의회는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선도해 왔던 제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다시 한번 교류협력의 물꼬가 터지기를 기대하며 참여형 교류협력 사업을 계획했다. 문화, 관광, 스포츠, 보건·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사업을 발굴하고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허상우 회장은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제주도의 의료진들이 북한에 가서 의료교류를 하는 식으로 교류의 면을 넓혀 가면 평화통일도 더 빨리 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전했다.

차 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이연정 위원장은 제주 녹차와 북한 강녕녹차를 반반씩 섞어 만드는 통일차를 제안하며 “평화통일은 첫술에 배부른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작은 사업 하나하나가 모인다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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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원 한마디
“제주의 평화는 ○○입니다!”

“곶자왈”


강보배 제주시협의회ㅣ 곶자왈은 돌 위에서 자란 숲을 말합니다. 평범한 땅에서 자라는 나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꽃피잖아요. 평화와 통일도 그런 게 아닐까요?


“지구력”


이연정 서귀포시협의회ㅣ 제주 말 중에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력을 갖고 끝까지 견디다보면 좋은 날, 행복할 날이 꼭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멍의 품”


신진성 제주시협의회장ㅣ 제주 말로 어머니를 ‘어멍’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품만큼 편안하고 평화로운 데가 없어요. 어멍의 품 같은 제주의 평화를 위해 만남과 소통의 장을 만들겠습니다.


“길”


허상우 서귀포시협의회장ㅣ 평화는 화해와 치유로 가는 길입니다. 자문위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의식이 평화통일을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김성수 제주부의장

“제주형 평화사업,
대한민국의 평화 축제로”

20년 넘게 남북교류사업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온 김성수 민주평통 제주부의장은 의료인으로서, 또 제주부의장으로서 제주만의 가치를 담은 제주형 평화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김 부의장에게 5가지 어젠다로 대표되는 제주형 통일사업과 새해 활동 방향을 들었다.


북한과 처음 교류협력의 물꼬가 트이던 90년대 말, 김성수 부의장은 제주에서 남북교류협력운동본부 결성에 함께하면서 북한에 제주의 감귤을 보내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북교류 분야로 활동 면을 넓혀왔던 그는 그 인연으로 18기에 이어 19기 민주평통 부의장으로 임명됐다.

남북교류사업이 활발하던 2000년대 초반 북한을 방문할 기회도 있었지만 당시 제주도에 유일한 신장내과 전문의였던 김성수 부의장은 북한 방문 대신 응급 환자의 곁을 택했다. 기회를 놓친 게 아쉽긴 하지만 도민들의 건강을 지켰다는 점에서는 보람을 느낀다. 그는 의료인으로서 남북의료협력 사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 고부가가치 산업인 의료관광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도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바람은 민주평통 부의장으로 활동하며 ‘제주형 통일사업’으로 구체화됐다. 남북관계는 막혀 있지만 제주도에서만 할 수 있는 5가지 어젠다를 설정하고, 제주에서부터 시작하는 평화통일을 만들기 위한 사업을 기획했다.

제주형 평화통일 사업의 어젠다는 첫째 4·3을 기반으로 한 제주형 화해와 상생 사업, 둘째 제주형 통일 교육, 셋째 제주형 남북교류협력사업, 넷째 제주형 국제관광협력사업, 다섯째 평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탈북민·다문화 가정 공동체 형성 사업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지난 10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제주 국제평화컨퍼런스다.

제주 국제평화컨퍼런스는 자문위원들의 역량을 높이고, 도민들의 평화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제주지역회의 평화통일 사업의 ‘결정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도민의 축제로 만들고자 했던 당초의 계획과 달리 코로나19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국내외에서 평화통일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끌어내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김 부의장은 “앞으로 제주도에서 이런 기회를 또 만들어서 애초 계획대로 평화축제와 같은 컨퍼런스를 만들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제주도에서만 할 게 아니라 관련된 시도가 모두 합동으로 하면 대한민국 평화통일 국제포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했다.

김성수 부의장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통일송 경연대회, 통일영어 스피치 대회, 모의 남북회담 등 어렸을 때부터 통일과 남북관계, 분단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조심스럽게 한 가지 희망을 전했다. 백두산에 남북 정상이 올랐던 것처럼 언젠가는 한라산 정상도 남북 정상이 함께 오르는 것.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백록담에서 남북의 화해, 통일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는 기회가 온다면 저를 비롯해 제주도민들에게 최고의 영광이겠죠.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