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02020.12

Peace Forum

미국의 대북정책과 한반도

긴 안목으로
‘우리의 시간’ 만들어야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미국 대선이 끝나고 이제 우리의 눈은 새로운 미국이 과연 어떤 대북정책을 취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18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민주평통이 주최한 평화통일포럼이 열렸다.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적 접근’을 주제로 열린 포럼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됐다.

평화통일포럼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현장 참여인원을 최소화했으나, 온라인으로 생중계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포럼 현장을 지켜봤다. 이승환 사무처장은 개회사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운전자로서 우리 정부가 본격적인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라며 “오늘 포럼이 많은 분들에게 지혜와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정세현 수석부의장의 기조연설이 진행됐다. 정 수석부의장은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진행했던 대북정책과 궤를 달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며, “미국을 어떤 논리로 설득해 우리의 페이스대로 끌고 갈 것이냐가 대북정책, 한미협력에 있어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 있었던 대북정책조정관제도와 페리프로세스를 언급하며, 한미가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해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판을 짜면서 페리프로세스를 현 시점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ㅣ정세현 수석부의장ㅣ
“미국을 어떤 논리로 설득할 것인가가 중요... 대북정책조정관 도입, 페리프로세스 업그레이드 해야”


ㅣ김준형 원장ㅣ
“지나치게 기다릴 필요 없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ㅣ김흥규 소장ㅣ
“북한은 이미 핵으로 무장한 상태, 우리 스스로의 내구성 높여야”


ㅣ이정철 교수ㅣ
“북·미 합의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역할해야”


바이든의 미국, 어떤 대북정책 펼칠까?
“전략적 인내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을 것,
미국의 협상파가 주도권 잡도록 공략”

이어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의 발제가 이어졌다. 김 원장은 “조 바이든 미국의 시대가 온다”며 발제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앞으로 펼쳐질 바이든의 대외정책을 ‘미국이 원래 추구했던 지도력으로의 회귀’로 내다보며 한미관계에서는 한미동맹의 회복, 분담금 압박 완화, 가치동맹 중시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 시절처럼 미국이 미·일동맹을 강화하며 한국에 대한 압박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으나, 북·미관계에서는 일각의 우려처럼 전략적 인내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바이든의 대북정책은 대북 강경파와 협상파 중 누구의 목소리가 커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입각설이 나오는 미국 내 급진 진보파 의원들을 공략해 우리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토론에서는 김희준 YTN 통일외교안보부장의 사회로 김준형 원장,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논의를 이어갔다.

먼저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하에서 우리의 대미외교 전략과 관련해, 김 원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체제 정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 이후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던 말을 인용하며 “바텀업과 톱다운의 동시 추진”을 제시했다.

이정철 교수는 “북한은 과거 미국에 의해 협상이 뒤집어졌던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며 “미국이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하며, 우리 정부 역시 이를 바이든 행정부에 명확히 짚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흥규 소장은 “한반도 통일은 ‘제로섬’이 아니라 ‘포지티브섬’이라는 담론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한반도의 미래가 새로운 국제질서 창출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북한, 북핵, 통일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우선주의나 대중국 강경노선이 유지되며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김흥규 소장은 “미국과 중국 모두 현 상황을 제로섬게임으로 보고 있지 않다”면서도 “이 상황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냉전으로 전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냉전과 달리 한국이 운용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이 존재하는 만큼 현 상황을 우려하는 그룹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주어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김준형 원장은 “우리가 먼저 ‘신냉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틀에 갇힐 필요는 없다”며, 바이든 캠프에서 “신냉전으로 가지 않는다”고 밝혔던 점을 분명히 했다. 또 현재 미국 민주당 내부의 최대 현안은 노동 문제이며, 미국은 자국의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다자협정을 만드는 데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 내부에서 중국과의 전면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중의 전략경쟁과 미·일관계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한국이 운용할 수 있는 제3의 공간 존재,
새로운 세계질서 만드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편 바이든 정부가 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의 회기 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과거 오바마 정부에서처럼 미국이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며 강력한 한일관계의 중재자로 나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철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가 강력한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한미동맹을 거기에 집어넣는 식으로 재균형 정책의 서열을 잡은 결과 2016년의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가 나왔다”고 설명하고, “만약 이런 생각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동아시아 정책에 나선다면 100%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우리 정부가 먼저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바이든 행정부의 의향에 따라 대일정책이 바뀔 것으로 해석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수립까지 남은 기간은 적어도 6개월. 2022년 대선을 앞둔 우리로서는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남은 시간을 우리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김준형 원장은 “바이든 자신이 이미 외교분야의 전문가이고, 북한 전문가들이 내부에 포진돼 있어 북한 정책에 대한 리뷰도 끝냈을 것이기 때문에, 관건은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일 것”이라며, “우리가 지나치게 기다릴 필요 없이 먼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김흥규 소장은 “북한이 이미 핵으로 무장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무언가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우리 스스로의 내구성을 높이고 무엇을 준비할지 활발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단순히 남북한 또는 한반도를 바라보고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안목과 접근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역량과 장기전을 준비하는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에 이정철 교수는 북한이 이미 비핵화의 한계선을 넘었기 때문에 스몰딜이 아닌 미니딜을 통해 동결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의 논리를 인용하며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어떻게 살지 긴 안목으로 준비하자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새 행정부는 우리에게 기회일까 위기일까. 장시간 이어진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우리 내부의 평화 담론 확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활발한 의견 개진이 미국을 설득하는 근거로,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추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기 위해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의 역할과 활동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