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72024.1.

2023년 설 명절을 맞아 평양 시내 나들이 나선 평양 주민들. (평양 노동신문=뉴스1)

평화통일 창

북한의 새해 설날 풍경

평양은 외식에 유희장 찾아 가족 나들이
지방은 설음식 차리느라 여성들만 고생

남한에서 새해는 제야의 종소리로 시작한다. 보신각 주변에 꽉 들어찬 사람들이 새해 직전에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다가 0시(자정) 정각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함께 환호성을 지른다. 그렇게 묵은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북한의 새해는 어떻게 시작할까?

북한은 남한보다 규모도 더 크고 더 화려하게 새해를 맞이한다. 12월 31일 밤이 되면 평양 주민들은 김일성광장에 모여 새해 시작을 기다린다. 수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합쳐 셈을 세다가 0시가 되면 확성기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시에 축포가 터진다. ‘새해 축하’ 글자가 밤하늘에 새겨지고 오색 불꽃이 대동강의 밤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김정은이 등장하면서 시작한 새해맞이는 날이 갈수록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2019년부터는 대동강변에서 평양 예술인들이 참가하는 예술 공연 무대도 펼쳐진다. 이처럼 화려한 설맞이는 평양 주민들만 누리는 특권이다. 평양 주민들은 설날에 아이들 손을 잡고 스케이트장, 승마장, 놀이기구들이 있는 유희장을 찾는다.

생활수준 높아지며 ‘음력설’ 확산
지방 주민들의 설맞이는 평양과 다르다. 놀 거리가 별로 없는 지방에서 설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다. 북한에서 1년 중 식료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생일날이 아닌 설과 추석 명절이다.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 명절 음식은 즐기기 위한 식도락이지만 배고픈 사람들에게 명절 음식은 먹는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다. 아직까지 북한에는 설날을 잘 먹는 날로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으므로 설 준비라고 하면 보통 설음식 준비로 생각한다.

북한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설음식 전통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강조하면서 음식 낭비를 없애라고 요구하고, 또 음식 재료도 부족하다 보니 전통 설음식이 사라졌다. 떡국, 만둣국이 북한의 전통적인 설음식이라는 것은 실향민들이 이어온 전통이지, 북한 주민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최근 들어 중국을 통해 남한의 설음식이 들어오면서 떡국을 먹는 집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의 공통적인 설음식은 떡이다. 북한에서는 떡을 집에서 직접 만든다. 미리 떡가루를 준비해놓았다가 새벽에 여인들이 둘러앉아 찹쌀을 찌고 떡을 빚는다. 찰떡은 메나 절구로 치는데 이는 남자들의 몫이다. 모이는 식구가 많은 집에서는 직접 두부를 만들기도 한다. 그 외에는 돼지고기, 생선, 채소 등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 재료를 사다가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놓고 실컷 먹으면 설을 잘 쇠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술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술을 실컷 먹어야 설을 잘 쇠었다고 여긴다.

설날 맞은 북한 주민들의 모습. 북한 사람들이 아이들의 춤과 노래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의 설 명절은 평양부터 변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의 중산층과 상류층은 설날을 먹는 날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설날은 즐기는 날이다. 음식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아니라 식당에서 외식하는 것을 선호한다. 제사를 모시는 집에서는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먹는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북한에서는 해방 후 러시아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음력설을 양력설로 바꾸도록 했다. 1980년대 후반기 들어 북한 당국은 개혁·개방의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선 민족 제일주의’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는 다시 음력설, 추석 등 민속 명절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음력설은 하루만 휴식하도록 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여전히 양력설을 설 명절로 생각했다. 2003년부터 음력설도 이틀간 휴식하도록 했지만 이러한 생각이 잘 바뀌지 않았다. 음력설은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데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을 며칠 앞두고 오는 때가 많아서 연이어 명절을 쇠어야 하니 주부들에게는 부담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음력설을 쇠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양력설 이틀, 음력설 사흘을 공휴일로 정하고 있어 평양 중산층과 상류층 집에서는 양력설과 음력설 모두 쇠고 있다.

2020년부터 ‘새해 신년사’ 사라져
북한의 설날은 남성과 아이들의 명절일 뿐 여성들은 고생하는 날이다. 북한은 돈이 문제여서 두세 배나 비싼 가공식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먹는 것을 선호한다. 여성들은 시장에서 음식 재료를 구입해서 손질부터 시작해서 만드는 전 과정을 직접 한다. 석탄과 나무로 음식을 하고 물이 없어 길어서 하는 집이 많다. 최근 북한도 MZ 세대는 부엌일을 남녀가 함께 하는 분위기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부엌일이 여성의 몫이라는 가부장적 관념이 강하다. 그러므로 명절에 여성들의 부담이 남한보다 훨씬 크다.

북한에서 1970년대와 80년대 설 명절은 정치적 성격이 강했다. 북한당국은 가족 단위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김일성의 신년사를 청취할 것을 요구했고, 기관·기업소별로 간부들이 꽃바구니를 들고 동상을 찾도록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새해 신년사를 하지 않았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먹고살기 힘들고 전기가 끊긴 곳도 많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등장하면서 다시 신년사를 시작했지만 2020년부터 사라졌다. 다만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을 찾는 행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현 인 애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