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72024.1.

2022년 11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리고 있다.
유엔은 지난해 11월 15일 19년 연속 북한의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AP/뉴시스)

북한포커스

북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실체

‘사형’ ‘연좌제’ 전 세대 걸쳐 공포 극대화
北 주민 수요 바탕으로 ‘정보 홍수 전략’ 꾀해야

지난해 11월 15일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 컨센서스 (표결 없는 전원 합의)로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에는 강제 북송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규탄한 것과 더불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공개적으로 재검토하라고 권고한 점이 눈에 띈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주요 내용과 의미를 분석해봤다.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공식 채택(2020년 말)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이나 외국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거나 혹은 공개처형을 당하는 사례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다. 평양시의 한 보위부 책임일꾼의 자녀가 지속적으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법 저장장치를 유통했다는 혐의로 또 다른 자녀까지 강제로 전역시켜 일가족을 정치범수용소(25호 관리소, 함경북도 청진시 소재)에 수감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악행을 지적하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은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에서 우리의 인권침해를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특별히 주목한 이유가 뭘까. 법 조문 하나하나가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먼저 ‘사형’(제28, 29조)을 명시한 부분이다. 이는 세계인권선언 3조와 ‘자유권 규약’ 6조에 명기된 생명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북한 당국의 통제가 실효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회의적인 전망이 앞선다.
이미 북한 당국은 ‘인민 생활 향상 및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북한산
각종 기기를 주민들에게 적극 판매하고 있다.

씨 말리는 북한식 ‘참빗전술’의 일환
단속 대상을 ‘괴뢰(한국)’(제27조)에만 국한하지 않고 ‘적대국’(제28조)과 ‘다른 나라’(제30조) ‘개인’(제31조)까지 확대했다는 점도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대목이다. 오직 체제 선전을 위한 콘텐츠만 접하게 만들겠다는 뜻으로, 북한식 우둔화 전략으로 읽힌다.

법에는 또 모든 기기 및 콘텐츠의 북한 유입은 물론, 유포 움직임과 더불어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모든 기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는 모든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해서 아예 씨를 말리겠다는 북한식 ‘참빗전술’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참빗전술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독립군 활동 지역에 수많은 군대와 경찰을 투입해 참빗으로 훑듯 샅샅이 수색하고 공격한 데서 나온 말이다.

아울러 한국 영상 또는 성(性)녹화물의 유입, 시청, 유포 행위를 알고서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겠다는 조항(34조)을 통해서 감시 통제 매커니즘이 복합적, 다층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읽힌다.

문제는 더 있다. 자녀들에게 교육 교양을 무책임하게 하여 반동사상문화범죄가 발생하게 된 경우(37조) 노동단련형이나 노동교화형 또는 벌금형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이는 범죄를 저지른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도 연좌제적 처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콘텐츠 시청으로 형성되는 사상문화적인 요소와 더불어 이를 주도하고 있는, IT 기기에 능통한 장마당 세대, 그리고 더 어린 포스트 장마당 세대를 노린 전략이라고 평가된다. 그것도 기성세대에게 공포심을 주면서 연좌제 요소를 가미했다.

‘오빠’ ‘자기’ 부르면 처벌받는 세상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채택 이후 북한은 2021년 9월 ‘청년교양보장법’을 만들면서 이 같은 연대 책임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이른바 향후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할 청년들이 비사회주의인 한류에 물들지 않도록 기성세대들이 학교, 가정, 사회 ‘교양’에 책임을 다해야 하고, 만약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처벌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괴뢰문화재현죄(32조)는 ‘괴뢰식으로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괴뢰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괴뢰서체로 인쇄물을 만든 자는 노동단련형에 처하고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2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콘텐츠 향유로 변화된 행동양식까지 탄압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2023년 1월 제정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통해 이 법 조항을 바탕으로 처벌 규정을 더욱 강화(공개처형까지 명시)했다. 이제 북한은 ‘오빠’나 ‘자기’라고 부르면 처벌받는 세상이 됐다.

이런 모습에서 북한 당국도 정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읽혀진다. 즉 북한 당국도 주민들이 외부 세계의 실상을 알아간다는 건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 노동신문이 2023년 3월 23일 보도한 ‘반미 · 반남’ 청년학생 집회.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통해 기성세대부터 장마당 세대,
포스트 장마당 세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에 걸쳐 한류 문화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거꾸로 말하면 자신의 미래는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이 그려보고 생각해보고 부딪쳐 봐야 한다는 역사적 진리가 북한에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체제 자체가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북한 당국의 통제가 실효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일단 회의적인 전망이 앞선다. 이미 북한 당국이 ‘인민생활 향상 및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북한산 각종 기기를 주민들에게 적극 판매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심지어 외부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USB와 SD카드가 작동되는 액정 TV의 경우엔 김정은 위원장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와 동시에 외부 콘텐츠를 휴대전화 등을 통해 접근하지 못하는 형태로 기술 발전도 꾀하고 있지만, 이를 우회하는 기술 개발도 내부에서 진행되는 만큼 당국의 행정력은 점점 힘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일부 지역 단속반을 중심으로 ‘단기간에 해먹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뇌물로 외부 콘텐츠 시청자들을 봐주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김정은식 부정부패 척결 기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단속을 맡은 간부들이 어차피 조만간 잘릴 수 있다는 판단에 감시 역할을 맡았을 때 부(富)를 챙기려고 한다는 뜻이다.

K컬처 유포·시청 안전장치 마련 필요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가장 중요한 건 ‘정보 홍수 전략’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라디오 확충 전략도 고민해볼만하다. 또한 위성뿐만 아니라 밀수를 통한 SD카드나 대북 풍선을 통한 전단 전달, 대북 확성기 방송 등도 전향적으로 고민해볼 필요도 있겠다.

둘째, 북한 주민들과 함께하는 대(大)전략 마련도 고민해봐야 할 때다. 단순히 K팝이나 한국 영화, 드라마에 국한하기보다는 주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그들이 한반도의 미래, 세계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입과 유포 및 시청 과정에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도 필요해 보인다. 이런 연구개발이 주민들의 안전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도 있고 안전한 장치를 우리가 마련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가 믿을 만한 협력자이자 동지’라는 인식을 부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주요 내용
(2020년 12월 제정)


제1조(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사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반동적인 사상문화, 반사회주의 사상문화의 류입, 류포 행위를 막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려 우리의 사상진지, 혁명진지, 계급진지를 강화하는데 이바지한다.

제2조(정의)
반동사상문화는 인민대중의 혁명적인 사상의식,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사회를 변질 타락시키는 괴뢰 출판물을 비롯한 적대 세력들의 썩어 빠진 사상문화와 우리식이 아닌 온갖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사상문화이다.

제28조(적대국 사상문화전파죄)
많은 량의 적대국 영화나 록화물, 편집물, 도서를 류입, 류포하였거나 많은 사람에게 류포한 경우 또는 집단적으로 시청, 열람하도록 조직하였거나 조장한 경우에는 무기로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

제29조(성록화물, 색정 및 미신전파죄)
많은 량의 성록화물 또는 색정 및 미신을 설교한 영화나 록화물, 편집물, 도서, 사진, 그림 같은 것을 만들었거나 류입, 류포하였거나 많은 사람에게 류포한 경우 또는 집단적으로 시청, 열람하도록 조직하였거나 조장한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

제30조(이색적인 사상문화전파죄)
사회주의 사상문화와 우리식의 생활양식에 배치되는 많은 량의 다른 나라 영화나 록화물, 편집물, 도서를 류입, 류포하였거나 많은 사람에게 류포한 경우 또는 집단적으로 시청, 열람하도록 조직하였거나 조장한 경우에는 10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제31조(불순문화전파죄)
개인이 만든 퇴폐적이고 이색적인 내용이 반영된 록화물, 편집물, 사진, 인쇄물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보관한 자는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3년 이상 5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제32조(괴뢰문화재현죄)
괴뢰식으로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괴뢰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괴뢰서체로 인쇄물을 만든 자는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2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제34조(불신고죄)
괴뢰 또는 적대국 문화와 성록화물의 류입, 시청, 류포행위가 감행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 신고하지 않은 자는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이 상 용 데일리엔케이 조사분석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