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72024.1.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의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있다.
(AP/뉴시스)

특집


2024년 국제 정세 및 한반도 전망과 우리의 자세

北, 국제사회 ‘신냉전’ 속 제재 틈새 노릴 듯
정부 “북핵 절대 용납 안 돼” 의지 모아야

2024년에도 세계는 힘의 대결은 물론, 가치·이념·종교 문제 등을 둘러싸고 충돌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북한은 ‘신냉전’ 질서가 자신들의 목표 달성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올 한 해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를 전망하고 우리 정부가 가져야 할 자세를 제안하고자 한다.

2023년 지구촌은 갈등과 전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덧 2년이 다 돼가지만 끝날 기미가 없다. 작년 10월에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세계정세는 더욱 불안해졌다. 전쟁으로 수많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두 개의 전쟁에 직면한 세계 각국은 누구를 어떻게 도울지에 대해 다른 계산을 하고 있고, 이는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독일의 숄츠 총리는 세계가 ‘시대 전환’에 직면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가을 국제 정세가 ‘역사적 변곡점’에 놓여 있다고 말하면서 하마스와 러시아가 “이웃한 민주국가를 몰살시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무제한 협력을 외쳤던 중국과 러시아 역시 10월 정상회담에서 “현재의 어려운 조건에서 양국 간 협조는 필수적”이라며 결속을 다졌다.

다행히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미·중 경쟁이 충돌로 악화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약속함으로써 양국 간 긴장이 다소 완화됐다. 하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탈냉전 시대가 끝나고 ‘신냉전’ 시대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보여주듯이 2024년에도 세계는 힘의 대결은 물론, 가치·이념·종교 문제 등을 둘러싸고 충돌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국제사회 ‘힘의 대결’ 지속 전망 높아
국제사회의 블록화 현상과 갈등은 한반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신냉전 분위기를 활용하며 핵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북한은 2019년 제재 압박 무력화와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한 ‘정면 돌파전’ 강행을 선언한 이후 핵 능력 개발을 가속화했다. 2022년에는 핵 보유를 정당화하고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을 선언한 ‘핵 무력 정책에 대한 법령’을 제정했으며, 김정은은 “북한의 핵보유국으로서 국가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강조했다. 2023년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핵무기 발전 고도화’를 헌법에까지 명시했다. 김여정은 “주권 국가의 자주권은 협상 의제가 될 수 없다”며 핵보유국 입지를 공고화하려는 의지를 과시했다.

북한은 신냉전 질서가 자신들의 목표 달성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김정은은 2022년 12월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여기에 맞춰 북한의 국제 위상 제고와 국익 사수를 위한 대외 정책을 견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의 이러한 인식은 2023년까지 이어졌으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23년 12월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신흥대국의 출현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 세계가 막을 내리고 있으며, 북한이 세계적인 핵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푸틴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이유도 양국의 지지를 확보해 고립에서 벗어나고, 제재에 틈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해 11월 15일 “새형의 중거리탄도미사일용 대출력 고체연료 발동기(엔진)의 첫 지상분출시험을 11월 11일에,
2계단 발동기의 첫 지상분출시험을 11월 14일에 성과적으로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의 핵 개발은 안보적 목적이 가장 크지만, 핵보유국으로서 미국 및 국제사회와 상대해 정치·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남한을 압도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상당히 크다. 특히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통해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은 물론 분단 질서 자체를 유리하게 변경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北 억제와 압박의 시간
이미 김정은은 2021년 제8차 당 대회에서 “핵능력 고도와의 목표가 국방 차원뿐만 아니라, 외교적 차원에서 핵보유국이라는 전략적 지위에 상응한 대외관계 전면적 확대 및 발전에 있다”고 천명했다. 이 목표는 이후 지속돼왔고, 2024년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북한은 당분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나 남북 대화에 나서기보다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를 유지하며 핵 능력 발전에 더욱 매달릴 것이다.

국제적 갈등과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자,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대화 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지금은 억제와 압박의 시간이다. 대화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 중에도 대화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대화는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6일(현지시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3 정상회의에 참석해
“북한 핵 · 미사일 개발 차단에 함께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실 제공)

하지만 대화할 때도 적절한 타이밍과 환경을 따져야 한다. 현재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는 북한의 핵 보유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더욱 굳은 의지를 모아야 한다. 북한은 우리가 대화에 급급해 비핵화 의지가 약화됐다고 판단하는 순간 우리를 무시하고 더 큰 위협을 가하려 할 것이다. 더구나 섣부른 대화와 협력 시도는 북한이 원하는 전략 국가 지위를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북한의 핵보유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와 한국의 확고한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북한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북한은 한반도 정세 악화를 한국과 미국 ‘탓’으로 돌리며 핵 개발을 정당화해 왔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일각에 한국과 미국의 대화 노력이 부족해서 북한 핵문제가 악화됐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한국이 미국 및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했기 때문에 북한이 중·러와 밀착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비핵화 합의를 여러 차례 어기고 핵무기 개발을 지속한 것이 바로 북한이다. 한·미·일 협력 확대 훨씬 이전부터 북한은 정면 돌파전을 앞세우고 신냉전 운운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했다. 북한은 한국의 군사위성 발사를 빌미로 ‘이중기준’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군 정찰위성 발사를 합리화하려고 한다. 언어도단이다. 북한은 국제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핵·미사일 위협 행동을 지속했고, 그 때문에 어떤 탄도미사일 기술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 제재를 받고 있다. 국제규범을 지키며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과 비교할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 함께하는 평화정책 수립해야
우리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자극하려는 북한의 논리에 빠져들면 결국 북한의 핵 지위는 더욱 확고해 질 것이며, 그에 비례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전은 더욱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당분간은 북한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모아야 한다. 아울러 한미동맹을 더욱 돈독히 하고, 확장 억제력을 강화해서 북한의 핵 위협에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이 우리의 비핵화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느낄 때 대화에 응할 것이고, 그래야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방향으로 대화를 추진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남북 대화를 준비하며,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주도하고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평화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는 남북한이 함께 풀어가야 하지만, 남북한 간에 갈등이 존재하고 서로 지향하는 평화의 의미가 다른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세계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고, 우리 국민의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대한민국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홍 용 표 한양대학교 교수, 전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