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12021.01

지난해 11월 17일 바이든 당선인이 외교·정보·국방 전문가들로부터 국가안 보에 관한 화상 브리핑을 받고 있다. ⓒ연합

진단

협상 지향하는 바이든 행정부

북핵 해결 기회 살리는 것은 한국의 몫



역대 미국 민주당 정부 하에서 대북 접근과 북·미관계의 역사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2021년 새롭게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는 어떤 대북정책과 한반도 전략을 펴나갈지 전망한다
북·미 협상이 한반도 해빙의 열쇠
한때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북·미 정상회담을 처음으로 개최하고 정상 간 친서도 여러 차례 교환하면서 신뢰관계 유지를 강조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추진은 ‘사진 찍기’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진정성은 미약했고, 일대일 주고받기를 할 생각은 없었으며, ‘보여주기’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이제 바이든 행정부에 다시 기대를 걸어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 문제의 해결을 미국에 의존하는 형편이 된 것이 답답하긴 하다. 남북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인데 왜 미국만 쳐다보고 있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그렇다. 남측이 교류를 제안하고 북측이 이를 믿고 척척 받아서 일을 진행하면 오죽 좋겠는가. 그런데 북한은 지금 남측과 큰일을 진행할 생각이 없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진력하고 있다.
그것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를 건설하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니 남북이 우리끼리 해보자는 얘기는 공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평화협정 논의와 비핵화 협상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면, 북한의 체제 불안 우려도 줄이면서 미국의 비핵화 요구도 실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구도를 미국이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은 ‘북·미 핵협상 - 비핵화 합의및 실행 - 평화협정 협상’의 순서로 진행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러니 북한과 미국의 핵협상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부의 대북협상
이제 바이든 행정부로 바뀌었으니 무언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역대 민주당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살펴봐야 한다. 너무 멀리 갈필요 없이 1990년대 초 1차 북핵 위기 이후를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시기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전통적인 민주당 노선에 부합하게 북한과 대화를 적극 추진했다. ‘관여와 확장(Engagement and Enlargement)’이라는 정책 비전에 따라 세계 문제에 능동적으로 관여하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확산 하려 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대화하면서 변화를 추진했다. 결국 북한과 협상을 타결해 1994년 10 월 북·미 제네바합의를 만들어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 2기를 건설해주고 경제제재를 해제하며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를 이은 공화당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불신으로 강경정책을 지속하다가 북·미 제네바합의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부시 행정부 다음 들어선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Pivot to Asia) 전략에 따라 외교력을 아시아에 집중하 면서도 대중 견제에 진력했을 뿐 북한에 대한 면밀한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고 불렀지만, 실은 수수 방관이나 다름없었다. 경제제재를 적용하면서 북한이 고개 숙이고 나오기만을 바랐다. ‘무정책의 정책’이 실행된 기간이었다.

바이든 행정부, 협상 지향하며 단계적 협상 선호
톱다운식 협상을 했던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에서 4년이 지나 다시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로 교체되었다. 그렇 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협상을 할까? 지금까지 바이든 또는 그의 참모들이 밝힌 내용을 중심으로 그가 펼칠 대북정책의 방향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994년 10월 21일 당시 이병태 국방부 장관과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이 국방부에서 회담을 갖고 북·미 제네바회담 타결에 따라 팀스피리트 연습을 중단키로 합의했다. ⓒ연합

"바이든 행정부가 체계적인 대북정책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한국은 되도록 자주,깊이 협의하는게 중요하다 한국과의 협의(Consultation)가 하나의규법(Norm)이 되도록 해야 한다."


첫째, 협상 지향이다.
민주당의 외교이념은 기본적 으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다. 국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그 방식도 대화·협상 위주, 국제기구·국 제법을 중시한다. 게다가 바이든은 정치 초년생 시절부터 ‘적과도 대화는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의 외교 선생님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민주당 행정부의 외교 빅맨 역할을 한 애버렐 해리먼(Averell Harriman)이라는 인물이다. 루스벨트 대통령 당시에는 마셜계획을 입안했고 소련 주재 대사로 활약했다. 트루먼 대통령 때는 영국 주재 대사, 상무장관을 맡았다

존슨 행정부 때는 국무차관이었고 카터 대통령 당시 대통령 특사로 활동했다. 해리먼이 바이든에게 강조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외국이나 외국의 지도자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믿지 말고 직접 가서 만나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적이라도 계속 관계를 만들어 미국에 이익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적과도 대화는 계속하라는 얘기다. 실제로 바이든은 자서전을 통해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우선 불가침 협정을 목표로 대화를 시작해서 차차 풀어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둘째, 단계적 협상 선호이다.
바이든은 김정은이 핵능 력을 축소하는 데 동의하면 만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사전 실무협상을 통해 비핵화에 대해 일정 정도 분명한 약속을 받고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능력 ‘축소’에 합의한다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얘기한 부분은 단계적 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1단계로 핵능력 축소를 분명하게 약속하면 미국이 줄 수 있는 것을 제공하고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최종적으로 협상을 타결할 생각이 있는 것이다. 1단계 합의가 잘 지켜지면 2단계, 3단계로 진전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니 북·미 협상의 가능 성을 높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셋째, 바텀업(Bottom-up) 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톱다운(Top-down) 방식과는 대척점에 있다. 바이든은 2020년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개인적인 외교를 계속할 것인가?”라는 「뉴욕타임스」 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최종 서명이나 핵심 쟁점 타결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할 용의는 있지만 내용 없이 화려하기만 한 외교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번에 확 붙었다 확 꺼지는 불꽃 회담보다는 진중하게 실질적 해법을 논의하는 화롯불 회담이 북·미 사이에 필요한 만큼 이런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 북·미관계의 단계적 진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넷째는 동맹 중시 입장이다.
트럼프의 동맹 무시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도 한국과 깊이 협의하면서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동맹 중시는 바이든 측이 강조하는 다자주의와도 연결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뤘던 이란 핵합의는 다자적 접근을 통한 것으로 대북정책에도 많은 함의를 준다. 이 합의는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가 공동으로 이란과 협상에 나서 이란의 핵 활동 제한을 이끌 어낸 것이다. 다자협상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동북아 주요 국가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한 상황인 만큼 다자주의 입장 또한 북·미관계 진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 대북 경제제재에 대한 다소 유연한 태도다.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부통령 당선인이 “북핵 철회를 위한 검증 가능한 조치가 취해진다면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적 제재 완화는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이러한 유연한 입장을 잘 보여준다.
한국과의 협의가 하나의 규범이 되도록 해야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전반적으로는 협상 지향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북제재가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은 바이든 캠프 내에서 넓게 공유되고 있다. 국무장관 지명자 토니 블링컨 (Tony Blinken),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된 제이크 설리 번(Jake Sullivan) 등도 대북제재의 효과를 강하게 믿고 있다. 바이든은 대화를 선호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몇 차례 ‘불량배(Thug)’라고 칭할 만큼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체계적인 대북정책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한국은 되도록 자주, 깊이 협의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과의 협의 (Consultation)가 하나의 규범(Norm)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냥 하는 협의는 의미가 없다. 창의적이고 실행 가능성 높은 대안을 제시하면서 깊이 협의하는 게 중요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09년 8월 4일 북한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비행장에 도착하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
안 문 석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