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12021.01

도쿄 오다이바에 설치된 오륜마크 조형물 ⓒ연합

국제

도쿄올림픽,
평화의 배턴 이어받을까



2021년으로 미뤄진 도쿄올림픽이 평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까? 도쿄올림픽의 개최 가능성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 이것이 한일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평화와 협력에 미치는 영향과 방향성을 진단한다
한창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던 2020년 3월 24일,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의 도쿄올림픽 불참선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도쿄올림픽의 1년 연기를 공식 발표했다. 올림픽이 전쟁 등의 이유로 취소된 적은 있지만 연기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올림픽은 수많은 선수, 임원, 체육조직, 기업, 정부 등의 이해가 복 잡하게 얽힌 거대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연기 결정 후 IOC는 재연기는 없으며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대회 자체를 취소한다고 공언하였다.
녹록지 않은 일본 국내 상황
3차 팬데믹이 진행 중인 2020년 12월 현재 일본의 여건은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여러 사정으로 유전자 증폭(PCR) 검사수도 충분하지 못한 데다 최근 약 한달 동안 매일 2,000명 이상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급기야 3,0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의료전문가들이 경고해 온 의료체계 붕괴는 홋카이도를 비롯한 일부 지방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현실은 갈 길이 바쁜 스가(菅義偉) 정권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역대 최악인 –27.8%(연율환산치) 를 기록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전개한 ‘Go To Travel’ 캠페인이 급속한 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비판받았기 때문이다.

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는 자조 섞인 표현으로 동네 운동회 수준으로라도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중순 일본을 방문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올림픽 취소 논의는 없다”거나 “안전한 올림픽 개최를 위해 일본 측과 협력하겠다”며 유(有) 관중 경기를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올림픽을 ‘간결’하게 치르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스포츠계가 적절한 방역조치 하에서 무관중 또는 최소 관중으로 경기를 치르는 등 어느 정도 코로나19 사태에 적응한 모습을 보인 점을 감안 하면 불가능한 설정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서는 올림픽 취소가 사실상 결정되었으며 내년 1월쯤 취소 발표만 남아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의 논픽션 작가 혼마류는 11월 27일자 주간 「아사히」 기고문 및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IOC 가 이미 일본 정부와 대회 조직위원회에 올림픽 개최는 어렵다는 뜻을 전달했고 일본 정부는 최종 데드라인인 1월경 이를 발표할 것”이라는 정보를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내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악화로 개최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만연한 듯하다.
실제로 올림픽 참가자를 결정하기 위한 예선 대회가 원활히 개최되지 못한다는 지적 등은 불안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올림픽 개최가 정말 취소될 경우 발생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피해는 만만치 않다. 보도에 의하면 최소 3조 엔(33조 원)에서 최대 4조 5,000억 엔(48조 원)의 천문학적인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한다. 규모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경기를 간소화해 치를 경우 약 1조 4,000억 엔(15조 원)의 손실이 추정된다고 한다. 이정도 수준의 피해는 향후 일본경제를 상당 기간 불경기 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경제적 피해는 오히려 별것 아닐 수 있다. 도쿄올림픽을 통해 일본 정부가 지향한 것은 1964년의 도쿄올림픽이 재건과 선진국 진입을 상징했듯이,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를 극복하고 건재한 일본의 모습을 세계에 과시하는 것이었다. 비록 팬데믹이 올림픽 취소를 정당화할 수는 있지만, 가뜩이나 발전과 진보의 다이 너미즘을 상실하고 총보수화의 늪에 빠져있는 일본사회가 수년간 지향해 온 목표의식을 갑자기 잃으면서 사회적 방향타마저 상실할 수 있다. 올림픽이 취소되면 주변 국의 눈총을 받는 방사능 문제나 후쿠시마 안전수 방출 등도 스가 정부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도쿄올림픽 성패 좌우할 산적한 과제들
올림픽은 비정치적인 성격을 가질 때 가장 아름답게 치러진다고 한다. 하지만 올림픽은 정치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창설 했다는 올림픽의 기원도 그렇고 근대 올림픽 창설 이후 에도 여러 차례 전쟁 등의 이유로 올림픽이 취소되거나 정치적 동기로 인한 보이콧, 테러 등으로 얼룩지기도 하였다. 개발도상국들은 성장을 과시하거나 국내 정치적 어려움을 무마하는 용도로 올림픽을 활용하기도 하였 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올림픽은 세계평화와 인류공생을 위해 공헌하는 ‘정치적 성과’를 거둘 때 가장 빛나는 것일 수도 있다.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인류가 코로나19 사태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을 만방에 과시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글로벌 팬데믹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국제적 협력으로 대회를 잘 치러내면 두고두고 회자될 성공사례로 남을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성과 마저 곁들인다면 도쿄올림픽은 더욱 빛날 수 있다.

지난해 3월 25일 코로나19 확산으로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1년 연기되 었음을 전하는 일본 신문들 ⓒ연합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좋은 선례이다. 평창도 개최까지 험난한 산을 수차례 넘었다. 올림픽 유치를 위한 세 번의 도전과 동계스포츠의 불모지인 한국의 여건,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인식 저하, 한국 사회를 뒤흔든 정치사건으로 인한 붐업의 부진 등 개최 직전인 2017년 말까지 마음 졸일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비교적 성공적인 개최를 이뤄냈다.

그 성과는 감동적 승부와 선수들의 페어플레이, 자원 봉사자들의 헌신, 매스 미디어와 글로벌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 등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져 가능했 다. 그중에서도 단연 높이 평가되는 것은 2018년 이후 전개되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개최 직전에야 결정된 북한 대표단의 참여는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져 한반도 평화에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 된다.

“코로나19 사태의 역경을 딛고 개최한 도쿄올림픽이 역내의 긴장과 갈등을 평화 분위기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그 역사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는 배가될 것이다. 이미 기회의 창은 열렸다.미국 바이든 후보의 당선은 분위기 반전의 서막일 수 있다.”


2010년대 이후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북한의 김정은, 미국의 트럼프 집권 등 주변국 정부의 권력교 체를 포함해 한반도 지역 정세는 요동쳐 왔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 미국은 무역과 기술 분야에서 예전에 없던 긴박한 갈등을 빚어냈고 미· 중 간에는 대만 문제와 홍콩 문제 그리고 남중국해 영토 문제 등을 둘러싸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태다.
남북및 북·미관계는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노딜 이후 교착상태이고 북·일관계는 한마디로 얼음 그 자체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책임공방 속에서 벌어지는 호주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은 미·중 갈등 가운데 놓인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하는 듯한 상황으로 비쳐지고 있다. 한일관계는 여전히 최악의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렇듯 역내에는 풀어야 할 정치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평화의 상상 가능하게 할 올림픽
코로나19 사태의 역경을 딛고 개최한 도쿄올림픽이 역내의 긴장과 갈등을 평화 분위기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그 역사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는 배가될 것이다.
이미 기회의 창은 열렸다. 미국 바이든 후보의 당선은 분위기 반전의 서막일 수 있다. 비록 그의 대중정책이 트럼프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대세지만 미· 중을 포함한 역내 정상들이 올림픽 개최에 맞춰 도쿄에서 만나 대화할 기회를 만든다면 산적한 문제의 매듭을풀 훌륭한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일본이 올림픽 개최 분위기로 본격 전환되면 대화를 시작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국정원 장이나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이 방일하여 스가 총리와 면담을 진행한 것은 한일관계 복원을 위한 터 닦기로 읽힌다. 분위기만 마련되면 김정은 위원장의 개회식 참관도 욕심내 볼 만하다. 결정 및 발표만으로도 한반도정세는 물론 납치자 문제의 진전과 위축된 올림픽의 붐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주저할 이유가 없다.

지난해 11월 16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조직 위원장이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비정치적인 듯하지만 오히려 민감한 정치 대화의 돌파구가 되곤하는 올림픽은 언제나 이런 상상의 여지를 준다.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평화에의 공헌은 일본뿐 아니라 역내 모든 국가의 바람이다.
특히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4년의 강원도 동계청소년올림 픽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메가 스포츠 이벤트 사이클의 시발점인 평창의 배턴을 도쿄올림픽이 잇는다면 일본 국민의 사기진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급속한 확진자 수 증가와 백신 접종 보도를 동시에 접하면서도 올림픽과 평화를 향한 희망 섞인 구상으로 경도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김 기 석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