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비전
김천식 통일연구원 원장
“평화 위해 두 국가 공존하자는 건 공상
우리의 존엄과 자유, 번영 위해
반드시 통일해야”
김천식 통일연구원 원장은 오랫동안 통일정책 수립과 추진을 위해 일해온 통일·대북 전문가다.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논의, 실행작업을 하기 위한 통일연구원을 이끄는 그는 어떤 구상과 복안을 가졌을까. 가을 초입에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 청사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통일부가 비전·업무 조정 등 큰 수술을 거치는 동안 언뜻 가려진 듯하지만 최근 통일·대북정책과 관련해 세간의 관심 대상으로 급부상한 곳이 통일연구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통일연구원은 통일 연구와 통일·대북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국책연구기관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라는 헌법정신을 연구의 기본 정신으로 삼아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을 구체화할 핵심 기구다. 우리 사회에는 통일이 이뤄지길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궁금해하는 이가 적지 않다.
김 원장은 인터뷰 내내 국민에게 통일연구원의 메시지를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정갈한 옷차림으로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질문에 답하는 모습은 친근해 보였지만, 조용하면서도 확신에 찬 태도로 헌법과 통일, 통일 무용론 등에 대한 의견을 밝힐 때는 40년 가까이 통일 현장을 지켜온 엘리트 통일관료의 경륜이 느껴졌다.
새 표어는 헌법 3조, 헌법정신 따라 임무 수행
김 원장 취임 후 통일연구원은 헌법 조문을 새로운 연구원 표어로 채택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가 그것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싱크탱크’라는 문장도 더해졌다.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조문에서 따온 표현이다. 김 원장은 “통일연구원은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헌법정신과 그 원칙 위에 서 있다. 헌법정신에 따라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표어를 제정하는 일은 통일연구원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통일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국가 목표입니다. ‘대한민국은 통일해야 한다’, ‘통일은 자유민주주의로 한다’,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통일의 원칙이자 정부에 부여한 사명입니다.”
김 원장은 통일연구원의 연구 방향과 성과 또한 헌법정신과 국가 정책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나가겠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용적이고 과학적 연구를 추진할 것이고, 국가 정책에 기여하는 연구를 이어가도록 독려할 겁니다. 국가정책연구기관의 설치 목적은 정책 제언과 정책의 이론적 기초, 데이터 제공, 정책의 확산 등에 있으니까요. 국책연구기관의 정체성에 맞는 활동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연구 방향은 북한의 제반 현황과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보편성과 국제적 기준, 과학에 기초해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통일연구원이 북한과 통일 담론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을 테고요. 또 그것이 세계 최고 통일·북한 연구기관으로서 존재 가치를 빛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통일연구원이 이처럼 국책연구기관으로서의 사명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조직 개편이다. 김 원장은 7월 31일 헌법 가치와 통일철학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연구하겠다고 밝히며 자유민주주의 중점연구단을 신설했다.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정당성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자유민주주의 연구 네트워크 구성에 대해 연구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통일을 이룰 수 없는데 이와 관련한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라며 “통일의 원칙은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을 기반으로 하기에 통일연구원의 자유민주주의 중점연구단이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체제, 중요성을 연구하면 남북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일국가 원칙은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
김 원장은 이어 바람직한 남북통일 방향도 헌법이 밝힌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전제해야 함을 피력했다. “인간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는 것.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려면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을 건설하고 법치주의와 다원주의를 차용한 대의제 민주주의가 지켜져야 하며 권력 분립과 상호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통일국가 철학이다. 또 자유시장경제 원칙 준수를 강조하며 통일국가와 경제성장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해야죠. 제가 생각하는 통일국가는 국민이 평등하고 기본권을 보장받는 모습입니다. 특히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차별도, 배제도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북한 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해 남북한 불균형을 시정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는 겁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통일한국은 국제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것입니다. 평등 원칙이 지켜지는 국제질서와 규칙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하고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국가들을 견제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김 원장은 “통일한국이 정치, 경제 이외 다른 분야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웃음 띤 얼굴로 ‘한류 문화’를 언급했다.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했잖아요. 기존 한류를 넘어 콘텐츠도, 대상 국가도 확장된 형태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고요. 이런 한국 문화 산업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시종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김 원장이 딱 한 번 자리를 고쳐 앉은 건 “최근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줄어들면서 우리 사회에 통일 무관심에 무용론까지 번지는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다. 그는 “남북 분단 체제가 70년을 넘기면서 이러한 환경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으니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부 지식인들이 이러한 경향에 편승해 통일 반대론을 부채질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포기하자던 식민지 지식인들을 언급하며 “통일 무용론을 주장하는 일부 지식인의 논리는 그들과 닮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했다.
“한반도는 산과 강과 평야로 하나로 연결된 땅입니다. 이곳에서 한국인은 수천 년간 역사를 공유해오며 같은 언어와 문화를 이룩해왔어요. 수년 천 역사를 통해 우리는 민족과 국민이 일체화된 겁니다. 1000년 넘게 한반도에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살아왔고, 이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편리합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인의 본래 모습이라고 봅니다. 외세에 의해 이러한 가치가 훼손됐는데, 본래 나라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한국인의 당연한 권리이자 꿈이 아니겠습니까. 분단이 우리의 자유를 크게 제약하고 있고 길들이고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더욱이 분단 상황의 불안정성은 주변 열강에게 전장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한반도에 2개 이상 국가체제가 있을 때 전쟁 상태였고,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평화를 위해 두 국가체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것은 공상에 불과하고요. 우리의 존엄과 자유, 번영을 위해 통일해야 합니다.”
8월 18일 한·미·일 3국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3국 간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위협에 대한 대응을 조율하기 위한 신속한 협의를 공약했다. ‘캠프 데이비드 원칙’에는 한·미·일 3국이 최초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한반도 자유 통일은 이제 국제사회의 공론으로 자리 잡을 것이며, 이러한 합의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 의지 표명만으로도 국가 위상 달라져
이쯤에서 북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김 원장은 “향후 북한의 태도 변화 가능성을 어떻게 내다보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북한 동향을 토대로 보면 태도나 정책을 쉽게 바꿀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북한 태도와 행동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김정은 정권의 안보입니다. 핵 개발은 김씨 정권 안보를 위한 수단이고요. 북한이 핵을 보유하게 됐으나 상황은 더 나빠졌어요.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가 규정한 대북제재로 경제가 침체돼 민생을 챙길 수 없어 주민 절반이 식량난을 겪고 있잖아요. 굶어 죽어가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고요. 북한 안보 환경도 매우 나빠졌습니다. 핵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중국과만 무역이 가능해졌고,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100%에 가깝습니다. 사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매우 경계하며 자주 노선을 추구해왔어요. 그런데 북한의 핵 무장이 오히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극대화한 겁니다. 이러한 점이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을 위협할 거라고 봅니다.”
김천식 원장은 “일부 지식인들이 통일 무용론에 편승해 통일 반대론을 부채질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의 바람은 통일의 꿈을 잊지 말고 통일국가를 세우기 위해 전 국민이 힘을 모았으면 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분단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은 건 사실이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국가가 추구해야 할 정당한 목표를 포기하면 망국으로 가는 문이 열리고 말 것”이라며 “통일을 이룩해 우리의 완전한 국가를 회복하는 것이 정당한 국가의 목표이며, 헌법 또한 이를 규정하는 만큼 통일의 꿈을 잊지 말고 통일 한국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김 원장은 “당장 통일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통일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통일이라는 국가 좌표를 분명히 세우고 나갈 때 국가 위신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통일연구원의 국내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