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42023.10.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토대가 된 해군 영흥도 전적비.

걸어서 155마일

⑨ 인천 강화군 강화도

손 뻗으면 닿을 듯한 북녘 땅
그 섬엔 평화와 치유의 기운이 흐른다

인천시 강화군을 취재하러 가는 건 소풍 같았다. 올림픽대로에서 김포한강로까지 뻗은 나들목, 두 도로를 연이어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는 줄곧 한강이 펼쳐졌다. 내가면 외포리에 들어서자 아름드리 이팝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울창하게 솟은 나무 군락과 외포항 너머로 보이는 석모도가 목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인도를 따라 걷자 완만한 능선 사이로 띄엄띄엄 자리 잡은 민가가 보인다.

길이 닿는 나지막한 언덕 즈음에 ‘평화 나그네의 집(평화의집)’이 나온다. 집 주인은 김의중 목사다. 산과 물과 집이 그림처럼 어우러진 이 마을에서 외지인의 시선을 붙드는 평화의집은 자택과 갤러리, 숙소를 겸한 공간이다. 대지면적 991㎡(300평)의 지상 1층은 남북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자료가 전시된 갤러리와 회의실, 객실(3칸) 등이 마련돼 있고, 2층은 김 목사의 집이다.

실향민의 섬에서 평화와 치유의 섬으로
건물은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다. 외벽은 밝은 석재와 검은 유리창으로 마감돼 개방감은 물론 주변과 조화를 이뤄 편안함을 준다. 건물 1층 어두운 빛깔의 육중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실내를 둘러봤다. 김 목사의 지난 발자취를 보여주는 1000여 권의 책과 100여 점의 작품이 진열된 1층 갤러리 안에는 평화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흘러간 세월이, 시간이 쌓은 역사가 함께 읽혔다.

김 목사는 북녘 땅이 보이는 인천 강화도 내가면 성뒤마을이 고향이다. 대전신학대학교(목원대학교 전신) 신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부평공단과 맞닿은 인천 계양구 작전동 허름한 창고에서 작전동교회를 개척해 47년간의 목회를 마무리하고 2018년 은퇴했다. 김 목사는 올해 3월 폐교된 교동도 지석분교 부지를 활용해 세계 평화교육을 위한 시설 설립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교동도를 단순한 한반도 서북단 끝자락 섬으로서가 아니라 국제적인 평화통일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할 수 있는 평화통일기도교회도 교동도에 약 33㎡(약 10평) 규모로 세울 생각이다. 김 목사는 이런 교동도를 일러 “평화통일 국가를 이루는 시작점으로, 평화와 치유가 가득한 섬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

“그럼요. 북한과의 거리가 약 2.5km에 불과한 교동도 하점면 장정리에 들어가서 둘러보면 제 말을 이해하실 겁니다. 이렇게 평화로운 섬이 없어요. 한반도에서 분단과 갈등, 위기를 겪는 것과 별개로, 교동도에는 평화와 치유의 섬으로 변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요.”

인천 강화군 강화평화전망대에서 강 건너 보이는 북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뉴시스)

교동도는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조강이 되고, 조강이 다시 예성강을 만나 황해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다. 황해도 연안군과 손에 잡힐 듯 마주한다.

교동도 여행은 교동대교를 건너면서부터 시작된다.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교동도는 2014년 7월 1일 교동대교 개통 이후 강화도와 육지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게 돼 주말이면 최대 1만 명이 오는 강화도를 대표하는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로워졌다지만 여전히 입도를 위해서는 교동대교 앞에서 해병대원이 건넨 ‘임시 출입 및 단기체류 신청서’를 작성하거나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저 멀리 고려 말 문신 이색이 전국 8대 명산 중 하나로 꼽았다던 교동도 최고봉 화개산이 보인다. 해발 고도는 259m. 산 정상에서는 북한의 황해도 연백평야, 예성강 하구, 송악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화개산전망대를 뒤로하고 대룡마을로 향한다. 이곳의 상징은 제비다. 전란을 피해 북녘 땅을 두고 교동도로 몸을 피한 실향민들은 매년 봄이면 돌아오는 제비를 보며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는 희망을 되새겼다고 한다. 제비들이 집을 짓기 위해 물고 오는 흙은 연백 땅의 것이라 여기며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대룡마을 입구에는 마을 안내소와 교동제비집이 있다. 교동도를 처음 찾는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마을 안내소 역할을 한다.

피난 온 北 천주교 신자들이 조성한 교동공소
하점성당 교동공소는 6·25전쟁 이후 연백군과 개성 등지에서 피난 온 교우들이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공소예절을 올리면서 1958년 1월 만들어졌다.

대룡마을을 나와 하점성당 교동공소(교동성당)로 향한다. 하점성당 교동공소는 천주교 인천교구 하점성당 관할 지역 공소다. 공소는 천주교의 종교 시설을 일컫는 말로 본당보다 신자 수가 적고 주로 외지에 있는 작은 교회 단위를 의미한다. 사제가 선교하러 온 것을 계기로 갖춰지는 대개 성당과 달리 교동공소의 시작은 특별하다. 6·25전쟁 이후 연백군과 개성 등지에서 교동도로 피난 온 천주교 신자들이 먼저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공소예절을 올리면서 1958년 1월 공소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은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미사를 이어오며 교동도 신앙의 보금자리가 돼주고 있다.

성당 입구에는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도심 성당이나 성지와 비교하면 작고 소박하며 아담하다. 아침에 내린 비에 빨간 벽돌과 하얀 성당 외벽이 유난히 정갈하게 느껴진다. 예배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실향민이 눈물을 뿌리며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했을까 싶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평화의 수도사’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강민아(마리요한) 수녀. 화해평화센터는 평화교육의 장이자, 남북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처로 다채롭게 이용된다.

그 옆으로 최근 개원한 화해평화센터가 있다. 센터는 순교자의 모후 전교 수녀회 설립자인 고(故) 최기산(보니파시오) 주교가 인천교구장이던 2007년 북방선교를 염원하며 북한과 근접한 교동도에 2019년 33㎡(약 10평) 규모의 사무실에 화해평화센터를 개원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장마로 인한 침수로 난항을 겪다 교구의 도움으로 센터를 이전, 신축 공사를 마치고 올해 6월 29일 문을 열었다.

센터는 평화 의식 확장과 교육을 중심으로 세 가지 과제를 세웠다. 북방선교, 평화교육, 화해와 친교의 장 등이다. 교동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지역 역사 해설과 평화교육 현장답사, 주교회의와 수녀회 시청각 자료 시청 및 나눔, 체험학습 활동 등 화해 및 평화 차원의 교육을 제공한다. 교동도만이 지닌 역사문화, 자연생태, 신앙 유산을 통해 민족 화해와 평화통일 교육, 영성 발굴, 홍보 업무도 도맡는다. 평화 도보 순례와 교동도와 한강 하구 중립수역 평화정책에 관한 평화 행사 및 포럼도 개최한다. 실향민의 섬이자 평화의 섬인 교동도의 위상을 회복해 남북통일의 교두보를 만드는 공동체, 그것이 센터가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센터장 강민아(마리요한) 수녀의 말이다.

‘평화 나그네의 집’을 운영하는 김의중 목사.

황해도 연백군 주민들이 연백장을 그대로 재현해 만 든 교동도 대룡시장.


참된 평화 의미 일깨워주는 화해평화센터
“센터의 사명이자 바람은 교동도에 남아 있는 분단과 갈등,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이 공간을 향유할 이들에게 참된 평화의 의미와 민족 일치, 화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거랍니다. 사람들이 교동도에서 땅이 들려주는 지난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과 변화가 덧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화 교동망향대는 실향민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비봉회 회원들이 1988년 세운 전망대이자 제단이다.

이 바람은 지금 교동도에서 가족의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눈조차 감지 못하는 실향민들의 간절함 바람이기도 하다.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후 70년, 내내 상처 입고 신음해온 그들을 치유해줄 평화의 섬 만들기를 위한 첫걸음이 교동도에서 지금 막 시작되고 있다.

강화평화전망대에서 학생들이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다.

강화평화전망대 1층 통일염원소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이던 2022년 2월 1일 이곳을 방문해 직접 작성한
통일 염원 글귀가 남아 있다.


함께 둘러보면 좋은 인천 강화군 여행지


대룡시장
6·25전쟁 당시 피난을 왔다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한 황해도 연백군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꾸렸던 연백장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지금의 대룡시장이다. 이곳을 임시 거처로 여겼으니 시장의 짜임새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허름하게 낡아가던 시장 풍경이 입소문을 타며 복고 감성 여행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행객 발길이 늘어나자 강화군은 올해 화개정원과 전망대를 새로 개장했다. 교동이발관, 중앙신발, 영심이네, 제일다방, 교동 청춘브라보, 만물가게 등 마치 1960년대로 돌아간 듯한 풍경들이 눈길을 끈다.
강화 교동망향대
6·25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피난 와서 정착한 실향민들이 고향 땅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실향민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비봉회 회원들이 1988년 세운 전망대이자 제단이다. 북에 남아 있는 가족과 고향 산천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 세웠다. 망향대는 교동도에서 북한 땅과 가장 가까운 교동면 지석리에 마련됐다. 망향대에서 북한 땅까지 직선거리는 약 3㎞. 전망대 망원경을 통해 연안읍의 진산인 비봉산과 남산, 드넓은 연백평야 등 북녘 마을 풍경을 볼 수 있다.
강화평화전망대
있는 곳이다.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적 통일의 기반 구축을 위한 문화관광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민간인통제선 북방지역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돼 2008년 9월 5일 개관했다. 전방 약 2.3㎞ 해안을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왼쪽으로 황해도 연안군과 배천군에 걸쳐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다. 오른쪽은 개풍군으로 북한 주민의 생활 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 송수진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