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한·미·일 안보협력과 동북아 정세 분석: 도전과 응전
‘자유주의 질서’ 수호 강화
한국 외교 안보 ‘최상위’ 원칙으로 작동시켜야
최근 동북아 안보 환경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북한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연대를 강화하며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흔들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 연대의 거센 도전은 동북아에서 한·미·일 3국 안보협력체 발족으로 이어졌다.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향후 극복해야 할 도전요인, 그리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모색해봤다.
한국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개최 하루 전 “한·미·일 3국 협력 역사는 2023년 8월 18일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정상회의 후 8월 18일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번 정상회의가 한반도와 동북아, 더 나아가서는 인도·태평양 지역과 전 세계의 안보 구도에 큰 영향을 끼칠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동맹이나 안보협력체가 태동하고 지속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통된 위협 인식’ 때문이다. 한·미·일 3국 협력체가 발족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작금의 강대국 경쟁은 신(新)냉전으로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과거 미국과 옛 소련 사이의 냉전과 상당히 유사하다. 예를 들어 신냉전의 경쟁 역시 냉전과 마찬가지로 세력권 확장을 위한 지정학적(geo-political)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세력권 확장을 위한 지정학적 경쟁이 과거엔 유럽을 놓고 벌어졌다면, 지금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놓고 벌어지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체주의 국가 연대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
신냉전이 이념적(ideological)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냉전과 유사하다. 지금 중국이나 러시아가 옛 소련과 같이 공산주의를 지구적으로 전파하겠다는 교조적 이념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양국 모두 중국식 정치·경제 모델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정치 모델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2021년 중·러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러한 공통의 인식을 담아낸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신냉전이 냉전에 비해 진영 사이에 경제적인 상호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냉전 당시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사이에는 유의미한 경제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지금 미국과 중국의 경제는 다양한 공급망으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높은 경제적 상호의존도는 신냉전의 ‘지경학적(geo-economic)’ 경쟁의 성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도 때문에 복합 안보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하고 있기도 하다. 안보의 영역이 군사 안보와 같은 전통 안보에서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며 안보 위협의 성격이 전방위적이고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 열병식에 김정은과 나란히 주석단에 오른 중·러 대표단.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월 28일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승리 70돌(전승절)을 맞아
뜻깊게 경축하고 있다”면서 “지난 27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작금의 국제질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국가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국가 진영으로 나뉜다. 자유주의 진영은 기존 자유주의 질서를 보존하고 싶어 하는 국가들로, 전체주의 진영은 현상 변경을 도모하는 수정주의 국가들로 구성돼 있다. 물론 냉전에 비해 신냉전이 다소 다극(多極)적 성격을 띠고 있고, 중간지대에 있는 국가들이 다수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자유주의 국가의 정체성이 매우 뚜렷한 나라는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전체주의 국가 연대의 도전을 국가 이익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고, 따라서 자유라는 핵심 국가 정체성을 공유한 다른 나라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하는 강력한 동인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복합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하면서 글로벌 차원의 포괄적 한미동맹으로의 진화와 더불어 새로운 한·미·일 안보협력체 발족의 필요성이 발생한 것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의 발족에는 급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 요인으로 작용했다. 급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역시 신냉전의 구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신냉전의 열기가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우려를 표명한 적도 있다. 북한의 비핵화에 성의를 보인 적도 있다. 하지만 신냉전의 전방위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러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더 높아졌다. 지금은 중·러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방관하다 못해 오히려 두둔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찬성해 통과시킨 유엔 대북 제재결의안을 무력화하는 데 앞장선 모습이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를 믿고 핵미사일 질주를 가속화하고 있다. 다소 급작스러웠던 냉전의 종식은 북한에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 수교하자 북한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북한은 신냉전의 국제질서를 반기고 있고 공식 문건에서도 현 국제질서를 ‘신냉전’으로 표현한다.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의 위험한 거래와는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지만 이들 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해 자유주의 국가들에 대항해야 한다는 큰 전략에는 변화가 없다. 동북아에서 북·중·러 전체주의 연대가 연합군사훈련에 돌입한다고 해도 이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3국 안보협력체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 관건
한·미·일이 안보협력체를 구성해 연대를 강화했기 때문에 북·중·러가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는 해석에는 어폐가 있다. 사실 한·미·일 안보 연대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는 제법 됐지만, 정책으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일관계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거세지고 중국과 러시아가 이러한 북한을 싸고돌자 한일관계를 개선해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일관계가 복원의 추동력을 확보한 결정적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의 결단에 회의적이었던 국민이 추후 이러한 결정을 추인한 이유는 역사 문제 등 한일 사이에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신냉전의 위협에는 한일관계 복원을 서둘러 한·미·일 협력 강화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의 가장 큰 관건은 지속성 확보 여부다. 3국은 지속성 확보를 위해 협력체의 제도화에 큰 공을 기울였다. 캠프 데이비드 원칙에는 새로 태동하는 협력체를 규율하는 원칙을 제시했고,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는 협력체가 추구하는 비전과 더불어 각급에서 협력을 어떻게 가동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다. 사실 각급에서 ‘어떠한’ 협력을 도모할 것인지는 2022년 프놈펜 3국 정상 공동선언문에 매우 상세히 나와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 격인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는 이러한 각급의 협력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협력을 제도화한다면 3국 협력체는 국내 정치적인 변화로부터 비교적 자유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안보정책의 방향에 대해 상이한 관점을 가진 정치인이 최고지도자가 됐을 경우 아무리 제도화된 외교적 합의라도 무력화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의 전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고, 미국의 트럼프 전 행정부도 다수의 외교적 합의와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따라서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도화와 더불어 충분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는 외교 합의를 최고지도자라도 제멋대로 뒤집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동등한 파트너’ 인식 필요
3국 협력체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국민적 지지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자유주의 국가 연대가 한국의 핵심 국익과 직결돼 있다는 점을 더 강조해야 한다. 자유의 가치를 한국의 핵심 국익으로 치환해 국민적 지지를 도출해야 한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정말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도약을 했다. 한국이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이 영민하고 부지런해서다. 걸출한 정치지도자와 경제지도자의 역할도 컸다. 자유와 민주, 인권, 법치의 가치가 존중받고, 열린 시장경제 질서와 항행·비행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한국의 비약적인 성장에 매우 우호적인 국제환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이 지속적인 번영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국제환경, 즉 자유주의 질서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서 3국 협력체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더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둘째, 한·미·일 중 굳이 서열이 있다면 미국, 일본, 한국 순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한·미·일 협력체 중 적어도 한국과 일본은 동등한 파트너라는 인식이 발생하는 것이 국민의 적극적 지지 도출을 위해 필요하다. 한미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한국이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을 갖추는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일이 동등한 파트너라는 인식 발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도 나와 있는 한·미·일 원자력 협력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신냉전은 기존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 강화하려는 국가 연대와 이러한 질서를 ‘수정’하려는 수정주의 국가 연대와의 전방위적 경쟁이다. 이러한 경쟁은 필연적으로 진영화를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핵심 자유주의 국가 중 하나인 한국은 다른 자유주의 국가와의 연대를 통해 기존의 질서를 보존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즉, ‘자유주의 질서’ 수호 강화를 한국 외교 안보의 ‘최상위(first order)’ 원칙으로 상정해 작동시켜야 한다. 특히 동북아에서는 미국과 일본과의 연대를 강화해 북·중·러 전체주의 국가 연대의 거센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정책의 각론에서는 유연성과 융통성을 발휘해 전체주의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독자적인 외교 공간을 만드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 재 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