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칼럼
북한 내구력에 대한 소고
북한에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2023년 현재까지 30년 이상 경제난과 식량난이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생존을 위한 시장화와 정보화의 영향으로 ‘북한 주민들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변화’ 또한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에서 체제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북한 정권의 통제와 억압은 여느 독재국가에서도 나타난 현상임에도 유독 북한 체제가 타 독재국가들에 비해 견고한 이유가 무엇일까? 즉, 지난 30여 년간 ‘식량 부족과 대북제재’라는 북한 체제의 정치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왜 북한 체제는 붕괴하지 않으며 주민들의 저항이 드러나지 않는가?
필자의 오랜 북한 연구 경험 및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들의 증언을 교차 분석할 때, 공히 지목되는 원인은 “나 하나 죽으면 상관없는데 온 가족이 멸족되기 때문”이다. 소위 북한의 ‘성분제도’, ‘연좌제’라고 칭해지는 가족단위의 연대 책임과 통제 시스템, 그리고 처벌제도는 북한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그 수위와 실태’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조사·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성분제도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연구는 없다. 대개 성분제도를 개인 통제와 감시 시각에서만 부분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의 인권 실현 및 북한 체제의 자유민주주의적 변화를 가로막는 북한의 성분제도에 나타난 인권침해 요소를 치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 당국은 성분 및 출신성분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분은 ‘사회계급적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사람들의 사회적 구분, 곧 사람들의 사상상 구성성분으로서 어떤 계급의 사상상 영향을 많이 받았고, 어떤 계급의 사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하여 출신과 직업, 사회생활의 경위에 의하여 사회성원을 사회적 부류로 나눈 것’이다. 또 출신성분은 ‘태어나고 자랄 때의 가정이 처한 사회정치적 처지와 사상상 구성 성분에 따라 규정되는 사회계급적 소속관계를 보여주는 성분’이다.
북한에서 성분제도는 ‘북한 체제 수호’를 기준으로 주민들 개개인이 어떠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어떠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가를 분류한 것이다. 개인들의 생활 환경과 사상적 배경에 근거해 주민들을 사회적으로 분류한 것이 성분이며, 그 핵심은 개인들이 속한 가정의 대내외적 환경에 대한 진단이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할아버지 대부터의 직업과 경력에 기초한 성분조사에 따라 주민들을 기본군중, 복잡군중, 적대군중으로 분류한다. 혁명가, 영웅, 공로자 가족 등의 기본군중은 수령에 충성할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다. 월남자 가족 등의 복잡군중은 토대와 가정환경 등이 복잡해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종파분자, 간첩 등의 적대군중은 척결대상으로 북한정권과 함께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북한의 각 당, 국가기구, 군대는 각각의 대상자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주민대장을 통해 구성원들을 관리한다.
그러므로 북한 정권은 모든 인간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이들로 보지 않고, 정치권력의 필요에 따라 구분한다. 또한 통제와 감시의 용이함 및 체계적 관리를 위해 가족을 중심으로 한 성분제도를 활용하며, 가족 중 남성 세대주 중심으로 성분제도를 관리한다. 따라서 북한의 체제 내구력을 가능하게 하는 성분제도에 대해 인권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기획편집위원들이 작성하고 있습니다.
박 영 자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