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42023.10.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북한포커스

김정은·푸틴 북·러 정상회담의 의미와 파장

북·러 거래 빈약해도
‘과장’만으로 이익 가능

국제정세 불확실성에
北 운신공간 확대되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러시아 극동지역을 전격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각종 군사시설과 군수공장을 시찰한 뒤 북한으로 복귀했다. 북·러 두 정상의 만남과 일정 등 일거수일투족을 전 세계가 주목했다. 그 의미와 파장, 그리고 향후 북한의 대외정책 변화를 전망해봤다.

북한 방문단의 구성 그리고 러시아 일정을 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의 핵심 의제가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 수행 간부들 명단과 러시아 내 방문지만 봐도 명백히 드러난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들을 보면 최선희 외무상과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 박태성 당 비서, 김명식 해군사령관, 조춘룡 당 군수공업부장, 김광혁 공군사령관, 오수용 당 민방위 비서, 박훈 내각부총리, 그리고 김여정 당 부부장 등이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방러단 구성원들은 러시아에서 김 위원장의 주요 행보와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김 위원장 일행은 9월 10일 평양을 출발했다. 사흘 후인 13일, 김 위원장은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4시간 동안 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 이후 김 위원장은 홀로 러시아 극동지방의 주요 군수공장과 군사시설을 방문했다. 15일 유리가가린 전투기 공장, 16일 항공우주군 장비 시찰, 태평양함대에서 대잠수함 무기 시찰 등이 있었다. 앞서 14일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수락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의 특징 중 하나는 공동성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양측 간 군사협력을 주제로 한 합의 내용을 국제사회에 공개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러시아가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찬성했던 안보리 결의를 스스로 위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북한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또 푸틴은 “안보리 제재 틀 내에서 북한과 군사협력이 가능하다”고 발언했다. 어느 경우든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무시할 것임을 시사한다.

북·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없는 이유
북한과 러시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고받았을 것인지 대해서는 여러 추측들이 등장한다. 이들에서 공통적인 것은 북한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분명하지만, 러시아가 제공할 수 있는 것들로 추측되는 무기와 군사기술에는 상당한 진폭이 존재한다.

구소련과 무기체계를 공유했던 북한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필요로 하는 곡사포 및 박격포용 포탄 그리고 곡사포 자체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하는 탄약과 무기는 너무 낡고 정확도가 떨어져 군사공격용으로 사용하기는 부적절하다. 따라서 북한 제공 무기는 정확도가 떨어져도 무방한 민간 인프라 공격용, 즉 대민간 공포 유발수단으로 주로 사용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북한이 최근 과시했던 단·중거리 신형 미사일들의 수출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는 최소한 북한에 인공위성 발사 관련 기술과 식량, 에너지 등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추가해 북·러 간 또는 북·러·중 간 합동 군사훈련, 핵잠수함 및 탄도미사일 기술 제공, 신형 전투기 또는 북한 보유 전투기 부품 제공, 디젤잠수함 제공, S-300 방공미사일, 판치리 복합 대공 방어 시스템 등도 거론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북한 노동력을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15일(현지시각)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의 러시아 전투기 공장을 시찰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이번 북·러 간 거래의 핵심은 북한이 제공할 탄약과 무기의 가치를 양측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였을 것이다. 30~40년 묵은 탄약과 대포의 성능과 가격을 그리고 러시아가 제공할 군사기술의 가치를 쌍방이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양측은 과거 오랜 거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양측은 상대방의 궁박한 처지를 협상에서 활용했을 것이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과 러시아가 언론에 흘린 내용들은 매우 과장되어 있을 개연성이 크다. 일단 양측은 당장에 절실하게 주고받아야 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비교적 명확한 계산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넘어서는 협력들에 대해서는 아마도 추상적이며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 정도의 내용을 교환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과거 전통적으로 대량살상무기 분야에서 타국에로의 군사기술 이전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또한 민감한 대북 군사기술 이전의 경우 러시아는 외교적으로 그리고 피제재 강화의 측면에서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 나아가 러시아가 볼 때, 북한의 지불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북한은 탄약 재고떨이를 마친 다음 신형 탄약으로 새롭게 비축하는 것을 더 우선시할 수 있다. 북한의 내부 경제 상황을 볼 때, 수출용이든 새로운 비축용이든 탄약의 지속적 추가 생산능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실거래 내용 빈약해도 대외적으로 과장할 것
물론 러시아는 국제적 반미전선에서 북한이 행하는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지만, 과대평가는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러시아가 예상되는 여러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량살상무기 기술을 이전하는 경우는 (러시아가 전술핵 사용을 위협하는 논리와 동일 선상에서) 우크라이나 전황이 매우 절망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설령 북·러 간 실제 거래 내용이 빈약했다 하더라도 양자 간 거래 내용을 대외적으로 매우 과장하는 데에서는 공통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 등이 이번 북·러 간의 거래를 과대평가하고 과잉반응 할수록 북한과 러시아는 공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러시아로서는 국제적으로 미국과 서방을 괴롭힐 수 있는 능력 보유를 과장할 필요가 있다. 즉 러시아는 필요하다면 유엔 안보리 제재의 완전 무시, 북한과 같은 나라에 인공위성 기술, 핵잠수함 기술, 신형 전투기 등 전력무기 및 기술 제공을 통한 지역적 군사균형 교란능력 보유를 과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과장함으로써 국제적 연대 과시, 핵무기 및 미사일과 핵잠수함과 같은 분야에서 기술적 도약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허풍을 떨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 입장에서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의미는 2019년 미·북 하노이회담 실패 및 2020~2023년 코로나19 폐쇄 국면 이후 중요한 첫 외교 성과라는 것이다. 그 성과를 발판으로 북한은 추가 전과를 올리기 위한 외교 조치를 취해갈 것이다.

당분간 북한 외교의 첫 번째 대상국은 중국일 것이다. 3년 7개월간 지속된 코로나19 대중 국경봉쇄가 8월부터 완화됐다. 같은 기간 동안 북·중 간 고위급 소통이 드물었던 점을 고려하면, 현재 양측 모두 상대방의 의중 파악과 양자 간 전략 조정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북·중 간 주요 의제는 국경 통행 정상화와 대북 경제 지원, 그리고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 판단에 따른 상호 협력 또는 상호 견제가 될 것이다. 북한은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 대중국 입지가 강화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 간의 거래 내역 파악 그리고 향후 북한의 대외 행보와 안보정책의 목적에 대해 알고자 할 것이다.

북한 ‘외교적 운신공간’ 확대에 중대한 제약 존재
현재의 국제 및 동북아 정세를 놓고 볼 때, 북한의 외교적 운신공간 확대에는 중대한 제약이 존재한다. 북한의 공격성이 야기한 한·미·일 결속 강화는 이러한 제약의 핵심 요소다. 그렇지만 현재의 국제정세에 잠복해 있는 일련의 불확실성 때문에 북한의 운신공간 확보 외교 행보가 반드시 실패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미·중 경쟁의 점진적 악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 그리고 중국·러시아·이란·시리아로 연결되는 반서방 연대의 결속 강화, 또 2025년 트럼프 재선 성공 그리고 중국의 대만 침공 등은 북한의 운신공간을 현저히 넓혀주게 될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13일(현지시각)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로켓 조립 격납고를
둘러보며 얘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끝으로 중국의 입장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다. 중국은 첫째, 북·러 협력을 통해 국제적 반미전선이 강화되는 것, 둘째, 북한 도발 후견 책임을 러시아와 좀 더 공평히 나누게 된 것을 내심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대외 운신공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북한의 도발 때문에 제약당하는 피동에 빠지는 것을 우려할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첫째, 북·러는 주변국이 이번 북·러 접근을 과잉 평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둘째, 중국과 협력해 북·러 접근을 막겠다는 발상은 현실성이 없다. 셋째, 현재 국제정세에 내재하는 불확실성 때문에 북한의 운신공간이 확대될 여지는 존재한다.

박 형 중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