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42023.10.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특집


한미동맹·정전협정 70년, 그 성과와 도전

북·중·러 연대 강화는 불가피한 상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와 교류로 맞서야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인 동시에 한미동맹 체결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제관계에서 70년간 동맹을 유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서울과 워싱턴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화려한 행사와 요란한 수사가 넘쳐난다. 하지만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지난 4월 한미 정상은 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정상회담을 워싱턴에서 개최했다. 이날 공동성명 서문에는 자유, 법치,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의 지향점을 적고, 본문에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 확대 ▲굳건한 양국 공조 강화 등 세 분야별로 양국 협력의 진전을 위한 합의사항을 담았다. 이를 통해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의 주춧돌 위에 5대 분야의 동맹, 즉 안보, 경제, 기술, 문화, 정보의 다섯 개 기둥을 세웠다.

정상회담에 이어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의 동맹, 행동하는 동맹(Alliance of Freedom, Alliance in Action)’을 주제로 영어 연설을 했다. 연설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법치, 인권의 공동가치에 기반한 한미동맹 7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양국이 함께 지향할 미래 동맹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핵 확장억제를 위한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을 채택했다.

한·미·일, 전방위 협력 네트워크 구축 선언
워싱턴 선언은 양국 간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을 신설해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한편,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규범을 준수하고 자체 핵무장 옵션을 포기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NCG 설립을 통해 ‘한국형 확장억제’를 구체화함으로써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을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수준으로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NCG는 앞으로 한미 간 핵 운용 관련 공동기획과 실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실질적인 협의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가 핵과 재래식 전력을 포함한 포괄적이고 전반적인 확장억제에 관한 것이라면 NCG는 ‘핵 운용’ 관련 사안에만 집중해서 논의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NCG는 전문적 지식을 갖춘 한미 양국의 범정부 참가자들이 한반도 상황에 맞춤형으로 핵 운용과 전략기획을 심도 있게 협의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한미 간 ▲정보공유 ▲공동기획·실행 ▲협의체계 등 분야별 협력 방안을 마련해 북한 핵 대응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리의 관여를 확대할 수 있다. 미국의 핵 3축 체제(ICBM, 전략폭격기, SLBM) 중 생존성이 가장 높은 전략핵잠(SSBN) 기항 예고를 통해 확장억제의 가시성을 높이는 강력한 전략적 메시지 발신도 가능하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과 커트 캠벨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카라 아베크롬비 NSC 국방·군축조정관(왼쪽부터)이 18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회의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윤 대통령은 8월 19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3월 한일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4월 한미 정상회담,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담, 7월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의 나토 정상회의, 그리고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외교 행보를 이어왔다.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는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 추구해온 ‘자유의 연대’ 정상외교의 정점을 찍은 회담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 정상회담에서는 ‘캠프 데이비드 정신(Spirit of Camp David)’, ‘캠프 데이비드 원칙(Camp David Principles)’, 그리고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 등 3개의 문건이 합의됐다. 이 세 개의 문건은 한·미·일 3국이 지역적으론 동북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고, 내용적으론 군사안보 이슈를 넘어 외교안보, 경제금융, 첨단산업, 신흥기술, 우주 분야 및 의료와 서비스까지 총망라한 포괄적인 전방위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선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숙원사항이었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 모두 동맹 관계에 있으나 한일 간 과거사 문제, 동북아 정세 대응 기조 차이 등의 문제로 말미암아 3국 간 협력은 그동안 제한적인 형태로 진행돼왔다. 특히 한일은 항상 ‘약한 고리’라는 평가를 면하지 못했다. 그동안 아세안 정상회의 등 3국 정상이 모두 참석하는 다자 무대에서 약식 혹은 사이드 이벤트로 열리던 한·미·일 정상회의가 별도로 열린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제 한미동맹은 포괄적 전략동맹을 넘어 한·미·일 협력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한미동맹은 굳건하지만 현재 동맹을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현 국제정세의 특징과 안보적 맥락은 크게 세 가지 추세로 요약할 수 있으며, 윤석열 정부는 이런 3대 악재를 배경으로 출범했다.

기로에 선 국제질서, 도전받는 동맹 환경
첫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심해진 국제체제의 분절화(Systemic fragmentation), 혹은 파편화된 국제질서 도래로 모든 국가들이 자국 이익 위주로 격돌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팬데믹으로 촉발된 국제 공급망 교란, 지정학의 귀환, 강대국 경쟁의 재현, 국제제도와 레짐의 기능 부전, 글로벌 거버넌스의 난맥상 등이 이런 환경을 조성하는 요인들이다.

둘째, 신냉전 진영화 추세의 심화다. 이미 진행 중인 미·중 전략경쟁에 더하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격 침공은 서구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초래해 세계질서가 빠르게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체제의 대립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셋째, 글로벌 및 아·태지역의 다양한 발화점(Flash point)을 둘러싼 돌발사태 가능성 증대 추세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고, 그 여파로 대만해협 및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 핵위협의 급진전으로 야기된 안보위협이 고조되고, 북·러 군사협력 가능성 증대로 불안 요인이 더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6일(현지시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 · 아세안 정상회의에 앞서 각국 정상들과 손을 맞잡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프린스턴대학교의 존 아이켄베리(G. John Ikenberry) 교수는 파편화와 진영화 속에 향후의 국제질서가 각자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표방하는 세 개의 세계로 나눠지면서 이 형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웨스트는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 진영이 주도하고, 글로벌 이스트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며, 글로벌 사우스는 인도와 브라질을 중심으로 기타 다양하고 비정형적인 비서구 국가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글로벌 웨스트와 글로벌 이스트 간의 경쟁과 대결이다. 여기에서 한국이 글로벌 웨스트와 협력하고 공조하는 건 당연하다. 세계질서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유례없는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시대에 한국도 가치와 국익을 기준으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에 따른 리스크와 후폭풍, 특히 글로벌 이스트로부터 올 압박과 견제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가 향후 과제다.

그간 윤석열 정부의 외교 행보를 보면 두 가지 특징을 보여왔다. 첫째는 한국의 가치외교 정체성 부각이다. 윤 대통령 본인 스스로 쓰는 언사들을 보면 자유, 평화, 법치, 인권 등 가치에 기반한 개념들이 많다. 둘째는 전략적 모호성보다는 전략적 투명성 제고다. 윤 대통령은 미국, 일본 등 우리와 체제와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공조를 확연히 강화했다. 윤석열 정부가 ‘자유, 평화, 번영의 글로벌 중추국가’를 외교안보의 비전으로 제시한 데서도 이런 성향이 잘 드러난다.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외교안보 비전을 설정하고 추진하는 것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평화애호 국가로서의 정체성에 잘 부합하는 설정이다. 한미동맹과 더불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현재의 국제정세 불확실성 속에서 옳은 선택이다. 다만 그러한 우리의 선택 때문에 불가피하게 초래될 리스크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판별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의 미래 전망과 과제
첫째, 한국 외교의 가치 정체성과 전략적 투명성 증대로 발생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후폭풍에 대비해야 한다. 최근 한중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향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가치와 시장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의 경제 강압외교에 대비해야 한다. 가치외교 정체성은 분명히 하되 가치와 체제가 다른 국가들에 대해 상호 존중의 원칙 아래 호혜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한국이 글로벌 웨스트와 연대할수록 북·중·러 연대도 강화되는 건 불가피하다. 그만큼 한반도 위기관리의 중요성도 증대하고 있다. 지난 7월 27일 북한의 소위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 행사는 핵·미사일 정책에 일절 변화가 없다는 사실과 북·중·러 밀착 연대를 내외에 적극 과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김정은과 푸틴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모종의 무기 거래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우리의 희망에 상관없이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는 더욱 선명해질 전망이다.

셋째, 다양한 리스크 분산과 함께 유사입장 국가들과의 네트워킹과 연대를 어떻게 강화할지도 중요한 과제다. 외적인 경제적 충격이나 경쟁국의 정치·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홀로 견딜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핵심 광물 공급망이나 산업생산력을 국내에 모두 갖춘 나라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해결책은 세계와의 교류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을 같이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연대와 교류를 더욱 확대함으로써 공급망 장악을 통해 강압외교를 펴는 국가들에 맞서야 한다.

이 상 현 세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