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42023.10.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조그만 보트를 이용해 메콩강을 건너는 촬영팀 일행. 물살이 거세 자칫 떠내려갈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사진 박유성 감독 제공)

예술로 평화

박유성 감독 다큐멘터리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

“10년 전 목숨 건 탈북루트 다시 걸으며
자유 대한민국 소중함 알게 돼”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최근 3년 여간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수가 크게 줄었다. 많게는 한 해 3000명 가까웠던 탈북민이 100명 이하로 급감했다. 북한이 해외로부터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경비를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위험성이 크게 줄고, 세계보건기구(WHO)가 5월 코로나19 팬데믹을 해제하면서 북한도 서서히 국경 봉쇄를 풀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을 재개하고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대규모로 출전시켰다.

북한의 변화 조짐에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돕는 지원단체들도 다시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과거 탈북 루트에 대해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밝고 흥미롭게 조명한 탈북 다큐멘터리 영화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가 다시 재조명 받고 있다. 탈북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탈북 루트는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온 뒤 중국 최남단까지 이동해 미얀마와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거나 제3국으로 망명하는 코스다. 이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메콩강이다.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이 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문제는 계절에 따라 유량의 변화가 심하고 급류와 폭포가 많아 예상치 못한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 실제 탈북민 중에 이 강을 건너다가 사고로 사망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민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한 대상은 이 강에 산다는 악어다. 그런데 정말 메콩강에 악어가 살까?

14박 15일, 5600㎞ 달하는 긴 여정
탈북민 박유성 감독(32)이 만든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는 2017년 개봉한 이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바로 그해 열린 제7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2019년 제52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브론즈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휴스턴국제영화제는 북미 3대 독립영화제 중 하나다.

이 영화는 북한 회령 출신인 박 감독이 2007년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탈북루트를 10년 후 다시 그대로 따라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박 감독은 “해를 거듭할수록 친구들이 탈북에 대해 약간 의심하는 것도 같고 체험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에게 탈북이라는 힘든 여정을 스토리텔링이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박 감독과 탈북청년 1명, 그리고 또래로 보이는 남한 여성 2명 등 모두 4명이다. 이들은 국내 한 종교단체에서 남북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문화교육 기행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박유성 감독(왼쪽)과 가이드가 함께 메콩강에서 비교적 수심이 얕은 지역을 골라 중국에서 라오스로 넘어가고 있다. (사진 박유성 감독 제공)
이들은 국내에서 사전 준비기간을 거쳐 14박 15일, 총 거리 5600km에 달하는 긴 탈북 여정을 북한과 중국 간 접경지인 두만강에서부터 출발한다. 박 감독이 어머니와 함께 건넜던 바로 그곳이다. 일행은 중국 옌지(延吉) 시내로 들어와 베이징으로 이동한 후 촬영장비 등을 다시 정비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은 후 윈난성 쿤밍(昆明)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일정에 대한 견해 차이로 탈북청년 1명이 일행에서 이탈해 목적지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떠나갔다. 일행은 중국 최남단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징훙(景洪)으로 이동해서 라오스 국경을 넘어 계속 남쪽을 향해 내려갔다. 차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니 드디어 메콩강 넘어 태국 땅이 보였다. 박 감독의 회상이다.

메콩강에는 악어가 살지 않는다
“피곤하고 힘든 일의 연속이었어요. 제일 힘든 건 일행 4명이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죠. 서로가 다른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하나로 취합해 목적지까지 함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간 청년이 있었고, 저 또한 그러고 싶었습니다. 4명의 청년이 마음을 맞추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남북이 무엇을 하기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깊고 어두운 밤 거세고 시커먼 물살은 극심한 공포로 다가온다. 국경 경비대를 피하려면 그 어둠을 틈타 쪽배에 목숨을 걸고 메콩강을 건너야 한다. 탈북 브로커들은 수많은 탈북민에게 그 절박한 순간에 공포를 이용했다. ‘강을 건널 때 메콩강 사는 악어가 물어갈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느니 ‘악어가 피 냄새를 맡고 올 수 있으니 생리하는 사람은 자수하라’느니 하면서 온갖 협박을 하며 돈을 뜯어냈다.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출입국 서류를 작성하는 박 감독과 일행. (사진 박유성 감독 제공)
하지만 메콩강에는 악어가 살지 않는다. 박 감독이 영화 제목을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로 정한 이유는 많은 탈북민이 비슷한 경험을 했고, 지금도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고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악어는 탈북민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한 무언가에 대해 있다고 믿고 살아간다”면서 “이 영화를 통해서 악어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탈북’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남북한 젊은 청년들의 시선으로 조금은 밝고 명랑하게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탈북할 때는 마음 졸이는 불안의 연속이었는데,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당당하게 그 길을 다시 가보면서 자유 대한민국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박 감독은 “북한학을 공부하고 영상 전문가가 돼 더 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동국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박 감독은 현재 동국대 북한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