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교착이 위기로 가지 않게
한국이주도적 역할 해야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회담 이후 지지부진한 교착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는 상황이 엄중하게 악화되며 연말이 다가올수록 위기 징후들이 노출되고 있다. 2020년 다가올 위기를 예방하고 평화 대화를 되살리기 위한 집단 지혜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외교안보라인은 위기를 돌파하며 속도감 있게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을 실현했다. 국민들은 평화분위기 속에 열광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회담 이후 우리 당국은 스스로 남북/북·미 관계의 속도를 조절했다. 이 과정에서 남북 합의 이행을 조정하기 위한 한미워킹그룹이 구성되고, 남북관계에 한미워킹그룹과 연합사가 개입했다. 9·19군사분야 합의로 DMZ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라는 상당한 성과를 냈지만, 핵협상은 교착되었다. 더욱이 평화경제분야의 성과는 거의 제로에 가깝고, 정부-민간교류가 전면 봉쇄되며 한반도는 위기로 거슬러가고 있다.

불안정한 동결상태와 북·미 비핵화 의지

지난 9월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해임됐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볼턴의 진흙탕 싸움을 보면, 하노이에서 미측은 볼턴의 리비아식 해법을 고수하며 ‘선비핵화, 후보상’을 고집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결렬 당일 당시 최선희 부상의 인터뷰를 보면, 북측은 비핵화협상과 제재완화의 동시병행, 즉 상호주의적 위협감소를 주장하고 있다. 상호 상충된 해법 때문에 남북/북·미관계의 교착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노이 회담 이전에는 비건 국무부 특별대표와 김혁철 국무위 특별대표가 절충안을 만들고, 이 절충안을 만드는 바탕에 우리 정부가 협력하는 프로세스였다. 1월 30일 비건 대표의 스탠포드 연설을 보면, 협상대표가 협상안을 사전에 설명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고, 트럼프 대통령이 유연성을 발휘하여 ‘일괄타결의 원칙하에 단계별 조치의 절충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회담장에 예정에 없던 볼턴이 등장하며 리비아 모델을 제기했고 북·중·러는 이를 미국의 뒤통수치기 전략으로 인식했다.

지난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그 후 최선희 부상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에도 없던 영변+α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상응조치를 둘러싸고 과도한 안보리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지적했는데, 실제 경제제재의 일부 해제는 이번 협상의 입구에 해당한다. 정말로 중요 한 것은 안전보장과 북한 재건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제 협력에 있다. 북측은 자신들이 요구한 제재완화 항목은 인도주의적이며 민생과 관련된 부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후 볼턴이 핵탄두 전체를 미국 오크리지로 반출할 것을 압박하기도 했다는 미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재역할을 한 한국정부에 대하여 미·북 양측의 불신은 심화되고 있다. 더불어 국내적으로도 교착에 대한 정부 책임론이 대두되었고, 북측도 수차례의 담화에서 ‘선미후남’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MZ에서 재래식 첨단무기에 의한 우발적 충돌 방지는 잘 관리되고 있다. 남북은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를 추진하며 안보환경을 대폭 개선했고, 평화협상의 동력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사드 실험, 한국에 대한 첨단무기 판매·홍보, 지소미아 자동연장, 방위비 대폭증액을 요구하고, 일상적 연합훈련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측은 전작권 전환을 위한 훈련이라고 설명했지만 북측은 평양 정상 합의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북측도 마찬가지로 단거리미사일 실험과 해안포 사격훈련을 지속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지속하며, 연간 10여 기의 핵탄두를 추가 생산·배치하는 것으로 추정 되고 있고, 또한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탄두의 대량화 등 새로운 군사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남·북·미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호 군사활동에 대하여 결의안과 합의사항 위반이 아니라는 ‘양해 발언’과 더불어 ‘신뢰가 있다’며 정상 사이에 친서를 교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비건-김명길의 스톡홀름 실무회담 결렬 이후 북측은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북측의 대남 비난 강도는 높아지고 있고, 금강산 재개와 관련해 통일부 장관 등을 직접 겨냥하며 비난하기까지 하고 있다.

필자가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당국자들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너무 많은 의제 노출이 오히려 회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스톡홀름 회담의 의제는 엄격하게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는 현재의 동결상태가 얼마나 불안정한가를 방증하는 것이며, 불안정한 동결이 만약 평화협정체결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풀린다면 한반도는 걷잡을 수없는 군비 경쟁으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도쿄, 베이징, 파리, 베를린 등에서 만난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반도 상황을 엄중하게 평가하며, 북·미 양측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동결에 대한 미·중의 전략적 묵계 위험성

하노이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강경파가 득세함에 따라 김 위원장의 집권능력과 협상동력이 저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 모두 국내적으로 집권능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평화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노이 합의문 달성을 전제로 평양의 향후 정치 일정을 고려했던 것이 틀어지면서 3월 이후 노선을 선회 혹은 기존 노선으로 회귀할 위험성도 있었지만, 다행히 북측은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경제건설 노선을 유지했고, 이러한 국면 속에서 미사일 실험과 같이 강경파를 달래는 무력시위도 동시에 진행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비핵화 동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북에 대한 경제적 유인을 준비했다. 책임대국으로서 미국과 함께 안보리 결의안을 준수하면서도, 실제 평창올림픽 이후 중국측은 비핵화를 위해 북의 민생과 인도주의적 경제협력을 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환했다. 안보리 결의안 해제나 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절충안으로 결의안의 민생과 인도주의적 협력이라는 부분에 착안한 것이다. 농업, 관광, 교육, 보건, 스포츠, 미디어, 청년, 지방 등 8개 분야의 대대적인 교류, 대규모 비료와 곡물 지원, 개인 휴대물품 교역의 증가 등이다.

최근 중국에서 개최된 학술회의에서 만난 조선사회과학원이나 김일성대학 교수들은 F-35 도입, 한미 지휘소 연합훈련, 한미워킹그룹 등을 이유로 내부적으로 남측과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며, 강경파가 득세하는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그들은 볼턴의 리비아식 해법으로는 대화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 정부가 2018년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의 일부라도 이행하고, 가장 낮은 이행조치인 금강산 관광마저도 어렵다면 상호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에서 한미 지휘소 연합훈련과 단거리 미사일훈련이라도 협의하고, 10월 월드컵 평양예선을 계기로 개성육로관광도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남북 당국의 대화문법이 상이하며, 각각 상대방에게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는 상황이었다.

만일 향후 미·중 전략적 경쟁이 패권갈등으로 심화된다면, 한반도 비핵화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북한은 이를 이용하여 핵을 유지하고, 미국은 현상유지 수준에서 북핵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며 중국과 북한에 개입할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 역시 미군을 비무장지대에 묶어두는 효과가 있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중의 전략적 묵계가 형성되지 않도록 한반도 비핵화를 주도해야 하며 더불어 북·중, 북·미관계 개선을 넘어 북·일관계 개선을 위한 중재자 역할도 해야 한다.

미·중관계가 악화되어 양국이 북한의 환심을 사기 위한 노력을 하고, 북핵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소·미관계가 나쁠 때 북한의 입지가 강화되고, 북이 이런 시계추 외교를 구사하여 이익을 얻었던 역사적 사례가 많았다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

현재 미·중 양측의 비핵화 의견은 상당히 일치하고 있지만, 향후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양국의 전략적 경쟁이 예고되어 있는 상황이다. 미·중이 정말 원하는 것이 한반도 안정인지 혹은 ‘골치 아픈 북한’이 유지되는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이 ‘골치 아픈 뜨거운 감자’로 남는다면, 미·중 양국이 각각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며 미국은 주한미군(유엔군 사령부 혹은 한미연합사 형태 그리고 한미워킹그룹) 등을 통하여 한국을 통제하는 이익을 관철시킬 가능성이 있고, 미 방산업체는 한국에 대량으로 무기를 판매할 수도 있다.

“남북 모두 국내적으로 집권능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평화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아야

문재인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의 위기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킨 돌파력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중재자 역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 <로동신문>과 몇 차례 북한당국의 담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혹평이 이어졌다. ‘북·미관계 개선이 있다고 해서 남북관계도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며, 자주성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중국의 학술대회에서 만난 북측 학자들은 남측이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유엔사와 한미워킹그룹의 개입을 상정하지 않았냐며, 미국측을 설득할 의지와 능력도 없으면서 핵협상과 남북대화를 시작했냐는 원망도 했다. 더불어 중국, 북한 학자들은 ‘트럼프의 비핵화 의지가 의심된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워싱턴에 방문하여 진행한 싱크탱크와의 대화에서, 북·중 학자들의 의구심을 전했더니 일부 미국 연구자들 역시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더불어 미국 학자들은 트럼프의 한반도 전략이 숨은 그림이 있는 전략적 사고인지 즉흥적인지조차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과 시 주석의 조용한 관여, 그리고 트럼프-김정은의 결단으로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지만, 교착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10월 스톡홀름 실무회담도 결렬되었다. 이 과정에서 북측은 우리 정부의 자주성을 비판하며 합의 이행을 강조했고, 더불어 새로운 길이라는 압박도 가중시켰다. 이 시기 북측은 우리 정부가 준비한 5만 톤의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을 거절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이 북측에 135만 톤 식량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 거절의 근거였다. 당시 WPF 활동가를 통해 들은 바로는 자신들은 통계를 작성하는 기구가 아니고 긴급구호, 특히 영유아와 임산부 구호에 집중한다고 했다. 더불어 북측 학자들은 남측과 국제기구의 이러한 주장에 놀라 각지에 인원을 파견했는데 식량위기 지역, 농장, 기업소가 나오지 않았고, 지도자 간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새로운 제안을 한 것에 놀랐다며, 남북대화가 어려운 상황이 될 것 같다는 우려를 표했다. 정부 간에는 정상 간 약속인 ‘경제협력’을 이행하고, 민간단체가 인도주의를 언급하는 것이 맞지 않냐는 설명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설명을 들으며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한민족이지만 양측 정부 당국자 사이에 ‘협상의 문법이 너무나 상이하다’는 것을 느꼈다. 북측 학자는 남측과 대화가 불가능하게 된 것을 우려하며 남측이 선제적으로 ‘선미후남’ 전략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 더불어 북측 지도부가 내년 초 ‘새로운 길’을 선택할 가능성을 우려하였다.

교착국면이 심화되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이 내년 제시할 ‘새로운 길’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길’은 첫째, 한국 국회의원 선거와 미국 대선 일정에 맞추어 인공위성 발사라는 명분으로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을 재개하는 것이다. 심지어 핵탄두의 실전능력 수준을 공개할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둘째, 남북관계의 개선 없는 북·미 관계의 개선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남북대화가 거의 단절되었다. 북측은 지속적으로 북·미관계 진전이 된다고 하더라도 남북관계 역시 진전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셋째, 시진핑의 조용한 관여와 북·중 협력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중의 사회경제적 교류가 밀접해지고 심지어 한중수교 이후 느슨해진 군사교류도 빈번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대화가 없는 상황에서 북·중 협력은 정권차원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상의 위기 시나리오에 따라 예방책을 마련하고, 북측이 제시한 시한에 따라서 연말연초를 대화 재개를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박종철 박종철
국립 경상대학교 일반사회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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