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2020년 1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2020년 1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신년사로 본 남북관계 남북관계 진전으로 북·미 협상 견인하는
촉진자 역할 수행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인고의 시간’을 회고하면서 지난 1년간 남북협력에서 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가 성공하면 남북협력의 문이 더 빠르게 더 활짝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 지 못했다”며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친 이유를 되짚어보며 한걸음이든 반걸음이든 끊임없이 전진할 것”을 약속했다.

행동을 통한 평화와 남북관계 돌파

지난 1월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이제 는 북·미 대화만을 바라보지 않고, 남북협력을 증진하면 서 북·미 대화를 좀 더 촉진해 나갈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는 우리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신년사를 통해 밝힌 “평화는 행동 없이 오지 않는다. 남북관계에 있어 운신의 폭을 넓혀 노력해 나가겠다”고 주장한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신년사를 통해 밝힌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 표명 이면엔 지난해 남북관계 교착에 대한 아쉬움이 강하게 남아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을 계기로 급진전할 것 같았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가동하지 못했고, 지난해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에 종속돼 진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한 해 동안 문재인 정부는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9·19 남북군사합의 등 ‘당사자’로서 남북관계 발전을 제도화할 수 있는 많은 합의를 도출했다.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견인하면서 북·미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평양을 방문했던 우리 특사단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희망 의사를 전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여 첫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에서는 4·27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2018년에는 우리가 북·미관계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남북합의에서 확약한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교환하는 ‘한반도 평화비핵 프로세스’를 견인해 나갔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군사합의서 서명식을 마친 뒤 북측 수행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하노이 노딜과 북한의 대남 불신

2017년만 해도 북한이 연이은 핵·미사일 실험을 강행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 ‘완전파괴’를 공언하는 등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가 높았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올림픽 휴전’ 개념을 제시하고 한미 군사연습 잠정 중단을 이끌어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하면서 대결 국면이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남북 대화가 북·미 대화를 견인하면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급진전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모두 교착국면에 빠졌다. 우리 정부는 북·미관계가 풀리면 남북관계도 자동으로 풀릴 것으로 보고,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남북관계의 독자적 진전을 모색하지 않았다. 아마도 북측의 의도는 무시하고, 미국의 선의를 너무 믿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노이 노딜 이후 2019년 4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 당국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하지 말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될 것”을 요구했다. 하노이 노딜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에 화풀이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지난해 연말까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6월 26일 시민들이 고성 DMZ 평화의 길을 걷고 있다. 남북관계 운신의 폭을 넓히는 협력사업이 요구된다. ⓒ연합

북·미와 남북이 상호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가운데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연결하여 단계별 동시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변 정세마저 복잡해져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는 기로에 섰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남한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F-35A, 스텔스기 등 첨단무기 도입에 대해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및 9·19 남북군사합의서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 결과 지난해 남북관계는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북한은 남측의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쌀 5만 톤 지원을 거부하고, 금강산 국제관광지구 독자개발을 위한 남측 시설물 철거를 요구 하는 등 남북관계는 꽉 막혀버렸다.

김정은 위원장이 ‘오지랖’이란 말까지 하면서 남측 정부의 역할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은 비핵평화협상에서 남측이 미국과 한편이 돼 북측의 의도를 잘 반영하지 못했고 남북 합의 이행에 소극적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남측이 남북관계를 비핵평화협상에 종속시켜 ‘남북관계의 자주성과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남과 북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여건이 조성되는 대로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두 사업에 대한 조건 없는 재개를 표명했음에도 우리 정부는 대북제재 공조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본격화하여 제재가 완화되면 남북경협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북·미 비핵평화협상이 지체되면서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완전히 단절됐다.

평화경제로 남북관계 돌파

문 대통령은 신년사와 신년기자회견 등을 통해서 남북관계가 더는 북·미관계에 종속될 수 없다고 보고, 남북관계 운신의 폭을 넓혀 주도성, 자율성, 독자성을 찾아 나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남북관계 핵심 4대 사업으로 ①DMZ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공동 등재, 비무장지대의 국제평화지대화 추진 등 남북 접경지역 협력사업 추진, ②2032년 서울 ·평양 공동올림픽 공동개최 노력,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 북한 참가 독려, 도쿄올림픽 공동입장과 단일팀 협의 등 지속 적인 남북 스포츠 교류 추진, ③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 모색,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지속적 노력, 한반도 평화관광 활성화 등 평화경제 관련 사업추진, ④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업 추진, 김정은 위원장 답방을 위한 여건의 조속한 조성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업들은 안보리 제재 국면에서도 남과 북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실현 가능하다. 대규모 현금이 들어갈 우려가 있는 단체관광 대신에 개별관광을 추진하고, 남북 철도와 도로연결의 경우 제재 예외 적용을 받으면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개별관광은 안보리 제재 대상이 아니며, 김정은 시대 북한이 관광 개방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도 호응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 것 같다. 통일부는 이산가족 또는 사회단체의 금강산·개성 방문, 제3국을 통한 북한지역 방문, 외국인의 남북 연계 관광 허용 등 3가지 개별관광 방안을 제시했다. 통일부는 특히 ‘제3국을 통한 개별관광’에 대해 “우리 국민이 제3국 여행사를 이용해 평양, 양덕, 원산·갈마·삼지연 등 북한지역을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여행사가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관광객을 모집하면 정부가 방북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해당 여행사가 북한으로부터 비자를 받아 들어가는 형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2019년 5월 10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워킹그룹회의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등이 참석했다. ⓒ연합

하지만 우리 정부의 개별관광 추진 등 독자적인 움직임과 관련해서 미국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국무부는 문 대통령의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구상 등과 관련해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하며 우리는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우리 정부에게 ‘대북제재 이행’과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남북관계의 성공이나 진전과 더불어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보기 원한다. 그것이 중요한 조건이라 생각한다”고 말해 문 대통령의 개별관광 구상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해리슨 대사는 “문 대통령이 추진하는 북한 개별관광은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제재 위험을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편이 낫다”고 발언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각에선 ‘조선 총독’, ‘내정 간섭’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국무부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 위원장과의 ‘싱가포르 약속’을 진전시키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동맹국은 미국을 도와 달라”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보다 앞서는 것을 원치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이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면서
선미후남(先美後南) 자세를 보일 때는 우리 정부의 역할 공간이 상당히 축소됐지만,
북·미 대결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진 현시점에서는
북한이 봉미통남(封美通南) 할 가능성도 있어서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복원하여
다시 북·미 협상을 견인하는 촉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북한의 정면대결전과 봉미통남(封美通南) 가능성

우리 정부가 올해 들어 남북관계 운신의 폭을 넓혀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며 남북관계 주도성, 독자성,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미·중 패권 경쟁, 미국의 대선국면, 각국의 국내정치 변수 등이 한반도 비핵평화협상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조건에서 수동적으로 정세가 완화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더 시간을 지체할 경우 북한의 비핵화는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위기 인식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이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면서 선미후남(先美後南) 자세를 보일 때는 우리 정부의 역할 공간이 상당히 축소됐지만, 북·미 대결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진 현시점에서는 북한이 봉미통남 (封美通南) 할 가능성도 있어서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복원하여 다시 북·미 협상을 견인하는 촉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관계와 평화협정의 당사자로서 한미연합 군사연습 중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유엔군 사령부 역할 조정, 남북합의 이행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세관리 노력은 자율성과 독자성을 확보해 적극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고 유 환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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