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의 길을 묻다

박창일 신부 박창일 신부 (사)평화3000 운영위원장 “지속가능한 남북교류협력의
원동력은 ‘신뢰’입니다”

2020년이 시작됐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남북협력을 통해 막혀있는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오랫동안 남북교류사업을 지속해 온 (사)평화3000 운영위원장 박창일 신부를 만나 지속성 있는 남북협력의 길을 물었다. 그는 199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94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통일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북녘 동포 돕기에 나섰다. 2003년부터는 평화3000이라는 NGO를 설립하여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30년 가까이 북한 사람을 만나온 그는 ‘신뢰’와 ‘진정성’이 남북협력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Q 오랫동안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을 비롯한 여러 교류협력 사업을 진행해 오셨는데요.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1994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통일위원장을 맡으면서 대북지원 운동을 시작했어요. 당시 천주교 국제 구호 단체인 까리따스(CARITAS)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됐죠. 홍콩 까리따스가 쌀을 보내는 북한 배가 이동 중 가라앉았고, 수많은 북한 선원이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어요. 그 일로 현장 담당자를 만난 자리에서 북 한 주민들의 가난한 현실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때 북한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가져와 언론에 알렸고, 한국에서도 북한을 돕자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제가 있는 정의구현사제단도 베트남이나 태국 쌀을 북한에 보내기 시작했죠. 2003년부터는 (사)평화3000이라는 NGO를 설립하여 대북지원과 교류협력 사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Q 대북제재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데, 현재 북한 내부 상황은 어떻게 보십니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 12월 22일까지 유엔제재로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제3국에 있던 북한 노동자들이 북으로 송환됐는데, 대략 10만 명 정도의 인력입니다. 1인당 100달러 정도의 외화를 북에 보냈다고 해도 합산하면 천만 달러가 돼요. 꽤 큰 규모죠. 그런데 노동자 송환으로 올해부터는 그런 수입이 없게 되니 북한 경제에 여파가 클 겁니다. 대북제재도 꽤 오래 지속되고 있고요. 북한의 곳간이 비어가기 시작했고, 자금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봅니다. 이번에 열린 북한 5차 전원회의를 두고도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 언론에서는 ‘정면돌파’ 자체를 키워드로 보고 있지만 저는 다르다고 봅니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사회주의 강성대국’ 입니다. 그 목적을 위한 방법론이 정면돌파인 거죠. 외교나 군사, 안보, 경제 모든 분야에서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이고 자력갱생으로 인민의 힘을 모으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주의 강성대국 달성을 위한 북한 내 자원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겁니다. 자력갱생이라고 말은 하지만 내부 자원의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결국 외부의 지원이 절실해지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북지원, 경제를 매개로 하는
협력 사업으로 전환 필요

Q 대북지원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북한을 돕기 전에 우리의 자세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북한이 겪은 고난의 행군도 벌써 20년 전의 일이에요. 그동안 북한의 경제와 사회도 많이 변했어요. 넉넉하진 않지만 적어도 굶어 죽는 수준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당시의 수준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형식의 인도적 지원이든 중요한 것은 무조건 ‘수혜자 우선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물자 하나를 지원하더라도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북에 필요한 것을 주는 겁니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환경이 더 달라졌어요.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경제를 매개로 윈-윈하는 협력 사업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북한에 재투자한다는 개념으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사회·문화교류는 하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올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인데,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성과가 있으면 있는 대로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Q 2018년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교류협력 재개에 대한 기대도 컸는데, 여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교류협력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우선 대북제재의 영향이 큽니다. 인도지원 물품은 예외로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큰 장애입니다. 육로를 이용할 수가 없으니 결국 중국을 통해 물자가 가야 하는데, 물건 구입을 위한 송금 자체가 쉽지 않아요. 대북제재 품목이 아닌 밀가루나 식용유를 중국에서 사서 보내려 해도, 세컨더리 보이콧에 저촉될까봐 국내 은행이 중국으로 송금을 안해 주려는 상황입니다. 인도적 차원의 물품은 육로를 통해 북한에 직접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중국을 통한 우회로를 거치지 말고 남북을 오가는 통로를 열어야 해요. 그런 노력을 우리 정부가 했으면 합니다.

6·15 20주년, 다시 머리 맞대고
남북이 함께하는 길 찾아야

Q 남북교류협력을 통해 막혀 있는 남북관계를 타개할 수는 없을까요?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습니다. 재작년 9·19 남북공동선언 이후 속도를 냈어야 했는데, 너무 조심해서 가다보니 진전이 없었죠. 북·미관계도 꼬이고, 결국 모든 교류협력이 정지된 상태가 됐어요. 남북교류협력보다 북미핵협상에 모든 이슈가 집중됐습니다. 두 바퀴가 같이 굴러가야 하는데 정책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최근에 개별관광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 남북 간 실무적 협의가 먼저 되어야 해요.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시설 철거 지시에서 보듯 북한은 기존 방식과 같은 교류협력은 하지 않을 겁니다. 남과 북이 대등하게 상생하는 교류협력의 길을 함께 고민하면서 열어가야 합니다.

Q 올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이를 계기로 사회·문화 분야에서 먼저 물꼬를 틀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문화교류는 하면 할수록 좋다고 봅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인 만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성과가 있으면 있는 대로 계획을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그것이 바로 6·15공동성명이나 4·27판문점 선언의 정신 아니겠습니까. 일각에서는 정 치·군사 문제가 해결되면 교류협력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북한도 중국 관광객만 허용 하지 말고, 남한의 관광객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최근 북한은 남쪽 민간과의 만남도 꺼리고 있는데 북한의 태도도 바뀌어야 하고요. 오히려 북한이 민족정신을 되살려서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정부가 보다 과감하게 행동하며
남북관계 풀어나가야

Q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속적인 교류협력의 원동력은 ‘신뢰’입니다. 우리와 북한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해요. 신뢰가 쌓이면 이 해의 폭도 넓어질 수 있습니다. 그다음 필요한 게 ‘진정성’이에요.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대북제재를 비롯하여 정치군사적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교류협력을 이어가려면, 민간이 좀 더 중심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양한 민간의 주체들이 교류협력에 나서고, 자율성을 가지고 일을 해 나갈 수 있어야 해요. 민간은 경험도 많고, 또 북한과의 신뢰도 있습니다. 정부와 민간의 두 바퀴로 가야 해요. 정부가 민간을 신뢰하고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을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북한이 가고자 하는 길과 요구를 정확히 알아야 협력의 공간도 생깁니다. 정부 안에 북한을 제대로 아는 전략가들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요. 올해 남북 관계 개선이 안 되면 현실적으로 문제를 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정부가 보다 과감하게 행동하면서 남북관계의 주도성을 확보해 나가야 합니다.

Q 최근 민주평통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2032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유치’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2000년 1월 처음으로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막 끝난 시기여서 사정이 매우 어려웠죠. 그 이후 100여 차례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진행했지만 첫 미사가 제일 감격스러웠습니다. 천주교는 전 세계가 똑같잖아요.
미사 중에 평화인사를 나누는 순서가 있는데, “평화를 빕니다”라고 하면서 북한 신도들의 손을 잡는 순간 그들이 보여준 눈빛이 잊히지 않아요. 2032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좋겠어요.
결국 국민 공감대 형성이 매우 크게 작용할텐데, 세계평화를 위한 올림픽 정신을 상기해서 한마음 한뜻을 일깨우는 데 민주평통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남북이 이미 합의한 사항이고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한 만큼 그 당위성은 확고합니다.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에 SOC 투자도 적극적으로 전개해나가야 하고요. 명분이 좋지 않습니까. 그러한 분위기를 민주평통이 원활히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카카오톡 아이콘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스토리 아이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