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1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미 대통령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을 나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미 대통령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을 나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 남북관계 자율성 확보
한반도 평화 이끌 용기를 가져야 할 때

지난 2019년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북·미 간 합의 없이 허송세월을 보냈다. 북·미관계를 쳐다보고 있었던 탓일까? 제대로 된 남북대화 한번 못하고 남북관계는 꽉 막혀 버렸다. 지난 6월 첫 남·북·미 판문점 회동으로 잠시 들떠 있었지만, 그것을 끝으로 오히려 희망고문만 남았 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돌아선 시점에서 지난 남북관계는 한마디로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중간은 미약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지난 2018년을 되돌아보면 남북은 그 어느 때보다 잦은 만남을 통해 수많은 약속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생산해냈다. 북한이 보여준 남한에 대한 무한 신뢰는 문재인 정부의 끈기와 노력의 결과이면서도 촛불로 시작된 우리 사회의 건강하고 위대한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에는 평화를 향한 변화를 지속시킬 긍정적 기운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반도에서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 창대할 수 있던 것은 무엇보다도 남북관계를 앞세워 비핵화와 북·미 관계를 중재하고 한반도 문제를 견인하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남북관계 진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한미관계의 불편함이나 남남갈등을 감내한다는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 정부 초기에는 그동안 미국의 눈치를 보며 하지 못한 것들을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한발 앞서 가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결과적으로 한반도 정세 변화의 발목을 잡았다. 정교한 전략의 부재와 종합적인 정책 조율 없이 하고자 하는 것과 실제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로 인해 2019년 남북관계는 기대와 달리 희망고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2020년 한반도 정세는 더 예측하기 어렵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도출 실패로 남한에 대한 북한의 신뢰가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그 결과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종속변수로 다시금 전락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최근 한반도 정세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으로 상호 미치는 압박이나 위협 요인과 함께 남·북·미 3자 모두 내부의 정치적 변수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의 예측 불가능성이 증대되었다. 2020년은 한국의 총선, 미국의 대선 그리고 북한의 당 창건 75주년이자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을 결산하는 해라는 정치적 일정만으로도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 등 한반도 정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한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의 정면돌파전과 비핵화의 그림자

북·미 모두 내적인 변수가 크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정치 상황이 2020년 북·미관계와 비핵화 프로세스 진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향후 미국의 ‘대북 입장’에 따라 상황이 가변적일 수 있다. 크든 작든 북·미 간 합의를 할 가능성보다는 노딜 가능성이 가장 크다. 북한 역시 2020년 대선 국면에서 미국이 변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정면돌파전을 선택했다. 북한은 지난 1년 6개월여 간의 북·미 대화 하는 동안 미국이 시간 벌기 하며 압살하기 위한 이중적 행태를 보인다고 비난하면서 현 북·미 상태를 자력갱생과 제재의 대결로 규정했다.

2020년 1월 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정면돌파전’ 사상을 담은 선전화가 제작됐다고 보고했다. ⓒ연합

‘정면돌파전’은 새로운 길이라기보다는 이제는 미국을 통한 지름길에 한눈팔지 않고 자신들의 의지와 계획대로 정도를 가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 간탄도미사일 발사만 하지 않는다면 북·미 대화의 완전한 결렬이나 파행보다는 현상 유지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북한의 ‘정면돌파전’이 영원히 미국과의 관계를 종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과의 장기전을 준비하면서도 여전히 북한에 가장 매력적이며 확실한 돌파구는 미국을 통한 해법일 수밖에 없다. 2020년 북·미관계가 최소한 현상 유지된다면 새로운 기회가 있다.

올 한해 북한이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잘 마무리하고 2021년 봄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한다면 미국 대선이 끝나고 2021년 전반기 새 정부의 진용이 갖추어진 이후 북·미 협상의 2라운드 시작이 가능할 것이다. 2020년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상황 악화를 방지하고 현상 유지를 위한 관리를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북핵의 질량적 강화다. 북한은 하노이에서 합의에 실패한 영변과 동창리가 살아있는 한 영변 핵시설(핵물질 증산)과 동창리(미사일 엔진시험 개발) 재활성화를 통해 핵무력의 질량적 강화를 도모한다면, 2021년 북한의 몸값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지난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핵 문제가 해결 된다고 해도 미국의 위협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평가하면서 국가의 안전과 존엄을 그 무엇과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하지 않는 한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쉽게 나오는 일은 없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향후 핵 능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자력갱생을 통해 제재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조건부 핵무기보유국’이란 의도를 표출한 것이다. 또한 북한 이 명시적으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대화 재개가 어려운 상황에서 ‘핵보유국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향후 몸값이 더 커진다면 비핵화 협상보다 핵 군축 협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중딜레마(Trilemma)의 극복과 삼각성장(Triangrowth)

중요한 것은 2020년 북·미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동일한 방향으로 연동되어 움직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북·미 대화를 목 빼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정면돌파전을 통해 다시 한번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앞서 만들어 갈 상상력과 용기를 가져야 할 시기임은 분명하다.

미국의 대선 국면과 트럼프의 대내 정치적 어려움으로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나오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역시 2020년 내부적 달성 목표를 마냥 기다리기는 어려워 2020년 북·미 대화 재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여전히 북·미 대화에 대한 기대와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는 낙관적인 해석보다 2020년만큼은 북·미 대화의 중단 상태로 봐야 비핵평화의 돌파구 와 남북관계 정상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도 정면돌파전을 선택한 북한에 절대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정면돌파전은 북·중-북·러 관계 강화와 함께 비핵화 협상에 과거 6자 회담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다자협상 틀을 요구할 수 있어 한국에게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 선택을 강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2월 25일 스위스 로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에서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과 남북 체육 수장들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정면돌파전을 선택한 북한에게도 불리하지 않은 일이다. ⓒ연합

남북관계는 2018년 맺은 남북 간 합의 이행을 두고도 북한의 자위력 확보 노력과 한국의 한미관계 경직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북·미관계 진전을 기대하며 남북관계는 총선 이후를 기대하는 것은 전략적이지 못하고 한반도 문제에 있어 주도권을 상실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북·미 대화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제 남북 관계와 한·미관계의 연결고리를 우리 스스로 과감하게 끊고 남북관계에 ‘정면돌파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북·미관계에 연동되어 있고 상호주의에 갇힌 현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개념 정립을 통해 새판짜기를 준비해야 한다.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한미동맹과 남남갈등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 진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소간 한미관계의 불편함이나 남남갈등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극복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관계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한미 간의 갈등 요소와 남남 갈등을 선제적 논의를 통해 제한된 손상(Limited Damage)으로 유도함은 물론 빠른 회복력을 보일 수 있도록 갈등 및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결코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그리고 남남갈등은 삼중딜레마(Trillemma)가 아닌 오히려 상호 승수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삼각성장(Triangrowth)의 기회로 만드는 혜안과 전략을 가져야 한다.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와 비핵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관계와 북·미관계 사이에서 상호 보완적으로 기회의 단계적 연결을 시도해 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북·미관계가 교착 상태일 경우에는 남북관계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 남북관계가 교착일 때는 북·미관계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읽어 내야 한다. 특히 북한의 의도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상대방과 뭔가 주고받아야 하거나 굳이 남북이 함께 이행해야 한다는 상호주의 원칙과 고정관념을 버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의 반응과 상관없이 그냥 하면 된다. 특히 오랜 기간 남북이 합의해 온 사항 중 우리 스스로 지킨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북한의 이행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스스로 복원하고 지켜나가면 된다는 점을 국민들이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노력을 기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남북관계에서 적지 않은 상실감을 느끼는 것은 북·미관계와 비핵화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미련으로 인해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가 진짜 할 수 있는 것과 하고자 희망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자기충족적 예언은 실현 가능한 정책과 전략 수립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중재자 역할에 얽매인 이벤트성 해법과 단기적 치유법에는 한계가 있다. 남북관계가 먼 길이라면 정치적 고민을 앞세워 가시적인 성과에 연연하거나 급급할 필요는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북한의 변화와 선택을 염두에 두고 남북관계의 자율영역을 확보해 나가는 노력과 함께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김 동 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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