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집단 건강을 다루는 공중보건의학(Public Health Medicine)과 개인 건강을 중심으로 하는 임상의학(Clinical Medicine)은 독자적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두 분야가 서로 협업하는 사례가 부쩍 많아졌다. 평생 관리해야 하는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들이 증가하면서 의료 기관과 정부 부처들이 치료, 관리, 예방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성질환 관리, 건강증진 사업, 전염성 질병 관리사업 등 정부가 관련 사업을 진행하며 공중보건의학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시급한 대처 요구되는 북한 보건의료체계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고령화, 저출산, 세계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의학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넘어 전 지구적인 공동 대처의 필요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추가된 과제는 북한과의 보건의료 협력이다. 남과 북의 보건의료 실태를 하나로 인식하는 것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기도 하다. 통일 후 양국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고, 더욱이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교류를 통한 상호 보완과 지원으로 가장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통일 사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전반적인 보건의료 상황이 열악하고, 이마저도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 식량 문제 등 많은 부분이 나아졌고, 북한 정부의 노력으로 보건의료도 어느 정도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북한 주민들에게 영양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등 감염성 질환 관리가 미흡하고, 의약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주민들은 매우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많은 인도적 구호단체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 또한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또 국제단체의 지원은 국제정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질지도 장담할 수 없다. 현대 의약품과 각종 의료장비의 부족 또한 북한 보건의료 체계에 매우 시급한 문제다.
북한의 보건의료체계는 과거 소련의 의료시스템을 상당 부분 도입해온 것으로 무상치료제, 예방의학제, 의사담당구역제, 고려의학 강화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계속되고 비공식적인 보건의료체계가 확산하며 사실상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무상치료제는 1990년 대부터 경제난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이용에 제한이 있는 상황이라, 주민들은 약매대나 장마당을 통해서 의약품을 사서 해결하고 있다. 이처럼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의약품 공급과 의료서비스는 과용과 오용의 위험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정확한 진단을 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없다.
더욱이 대북제재 이후에는 대안적 치료의 비중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대안적 치료는 전반적인 의료 시설의 부족으로 민간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데, 식이요법을 비롯한 자연치료로 질병을 낫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현재 북한의 보건의료체계가 그만큼 열악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예방접종을 받고 있는 북한 어린이 ⓒ 연합
북한은 보건의료 부분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은 2011년 2월 9일 고려약을 생산 중인 고려약공장 직원들 ⓒ연합
한국과의 선진 보건의료 분야 교류·협력 기대
하지만 최근 북한 보건의료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병원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평양시를 위주로 대형병원(류경안과종합병원, 옥류아동병원 등)을 건설했고, 2·3차 병원의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또 정선제약공장을 종합생산화하고, 수출전략 상품으로 고려약을 채택·개발하는 등 의약품, 의료용 소모품 등의 생산을 다각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북한의 보건의료체계는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 보건의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감염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예방접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들이 감염성 질병에 노출이 되어 있다는 것과 대안적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주요 질환에 대한 정보와 체계적으로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 정부도 주민의 건강 상태에 대해 제대로 된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북한 정부가 올바른 보건의료 정책을 펼칠 수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또한 현재 북한은 필수 의약품이 매우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가장 기본적인 의료장비도 구비되지 않은 병원이 많아 병을 진단할 방법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때문에 의료 장비에 대한 대외 원조가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북한의 보건의료 수준은 한국이나 미국과 비교 자체가 힘들 정도로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특히 한국의 공중보건의학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을 압도하는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기에, 통일에 대비해 선도적으로 보건의료 협력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한 질병 양상의 차이는 남북통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미국은 상당히 민감한 인권 의식을 가지고 있고, 보건의료 협업을 인도적인 차원의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남·북·미가 공동으로 북한의 현재 의료 수준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 간 의료 협력과 교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황우성보스턴협의회 자문위원하버드
의학대학원 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