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LIFE

기억의 장소에서 미래의 공간으로
<개성공단 사람들>

<개성공단 사람들> 전시가 일본 교토에 있는 교토아트센터에서 10월 5일부터 27일까지 3주간 열렸다. 제10회 <교토 실험(Expriment)-京都國際舞臺藝術祭> 에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매년 교토에서 열리는 이 국제예술제에서는 올해도 51개의 퍼포밍 아트(Performing Art)가 선보였고, 4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전 세계 예술인들과 관련 이론가들이 모여 성대하게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그룹으로 초대를 받은 것은 <개성공단 사람들> 전시팀이 유일했다.

이부록 作 <로보 다방>

<개성공단> 전시는 작년 여름 서울 ‘문화역 284’에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전시는 뜨거운 호응을 받아서 전시 기간이 연장됐고, 국내 언론에 소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뉴욕에서 발행되는 저널 <Artforum> 에도 관련 기사가 소개되는 등 국내외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 기간 중 일본 교토에서 메일이 날아왔다. 국제예술제의 총감독인 하시모토(Yusuke Hashimoto) 감독으로부터 온 초청 메일이었다. 예산상의 문제로 서울 전시보다 규모는 축소되지만, 교토아트센터에서 우리 작품만 전시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우리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도쿄에서 보내온 메일, 파격적인 제안

서울에서 전시가 오픈할 때까지도 사람들은, ‘개성공단’을 경제적 가치나 정치적 문제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십여 년 이상 개성공단에서 평화롭게 공존했던 남과 북 사람들의 일상문화에 대해 질문하고자 했다. 함께 생활하면서 남과 북의 사람들 간에는 어떠한 문화적 충돌이 있었을까? 어떠한 문화는 서로 점점 같아지고, 어떠한 문화는 절대 같아질 수 없었을까? 우리는 2년에 가까운 준비 기간 동안 개성공단 기업인, 노동자를 비롯해 관련된 여러 분야의 분들에게 도움을 받아 문화 아카이브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에서만 새롭게 사용되었던 언어들을 수집하고, 의미 있는 통계들을 모아갔다. ‘업간체조(노동과 노동 중에 하는 체조)’를 할 때 음악도 틀었나요? 어떤 음악인가요? 점심때는 무엇을 먹나요? 북측 노동자들은 남측 기업인들이 점심을 제공하겠다는 것을 마다하고 도시락을 싸와서 ‘식사는 우리끼리 하겠다’고 말했다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남측 기업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면서 함께 하는 과정들의 일상사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교토에서 전시를 하기로 했을 때 실은 ‘교토’라는 공간에 대해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로 교토에 <개성공단 사람들> 전시가 열리자 이곳이 ‘서울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주제가 주제여서 그런지 외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교민과 동포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개성공단 재개를 논의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개성공단 공장의 모습을 연출한 미술가 이부록의 <로보 다방> 에서는 많은 관람객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관람객은 미술가 임흥순의 작품인 <형제봉 가는 길> 을 보면서 울기도 했다. 이 작품은 판문점 선언 후에도 여전히 닫혀 있는 개성공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성 공단 기업인들이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며, ‘개성공단은 죽었다’는 의미로 사용한 관을 미술가 임흥순이 빌려와 어깨에 메고, ‘북한’산 ‘형제’봉을 힘들게 오르는 영상이다. 영상에는 ‘그날이 오면’ 노래가 함께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영상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던 한 관람객은 남한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로 평창올림픽 때 응원을 다녀온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더 묻지는 않았지만 그 전에는 한국에 올 수 없었던 동포임을 알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각자의 삶을 이 영상에 투영해서 위로받고 있었다.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 투영한 개성공단

교토에서 유학을 하고 교수가 된 분은 “일본에서 교포들 간의 화합이 가장 잘 되는 곳이 교토”라고 했다. 그래서 개성공단이라는 공간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일상문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시로 풀어낸 내게, 이 지역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개성의 이야기가 교토의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오픈 행사 때 오신 교민들과 동포들이 왜 눈물을 흘렸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남북의 문제가 교토 사회 안에서, 개성공단의 역사보다 더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화에 대한 바람이, 관람객들이 눈물이,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이 필연이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교토아트센터의 큐레이터들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행복했다. 전시를 연출하는 방법과, 전시가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토론들은 전시를 더 의미 있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전체 예술제 오픈 행사 때 교토 시장은 우리 팀원을 일일히 호명하며, 무대 위에서 악수를 청했고, 다음날 <개성공단 사람들> 전시장에 직접 와서 보고 SNS에 따뜻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제 개성공단은 우리만의 장소를 넘어, 국제사회의 생생한 모습까지도 반추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일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임흥순은 “이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갈라진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짧은 소회를 밝혔다.

우리는 <개성공단 사람들> 전시를 통해 개성공단이라는 장소에서, 자본주의적 욕망과 사회주의적 욕망의 공존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화적 상상력이 동작되었는지 드러내고자 했다. 또 개성공단을 바라보는 이념적 인식의 극단적 긴장과 공유라는, 복합적인 면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관계를 통해 평화가 생성되는 지점들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를 토대로 기억의 장소에서 미래의 공간으로 개성공단을 다시 호출하고자 한다.

유수 作 <개성공단 남측 노동자>,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 연작

임흥순 作 <형제봉 가는 길>
ⓒ Group Exhibition “The People of Kaesong Industrial Complex”, 2019, Kyoto Art Center. Photo by Takeru Koroda, Courtesy of Kyoto Experiment

박계리 박계리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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