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비핵화와 시간 변수,
2020년의 새로운 길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19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지나고 나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때이다. 매번 이맘때쯤이면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시간은 중요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듯,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에서도 시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난 30여 년의 과정에서 흥미를 끈 작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시간 변수’에 관한 것이었다. 즉,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라는 우스개 질문이다. 북한의 허약한 경제상황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등을 감안해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 분석보다 약간의 기대와 희망을 담아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하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가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전략적 인내정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작동했다. 비핵화 문제를 다루었던 한국과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아직도 건재하다. 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되어 왔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전까지 비핵화 시간표의 조정자는 북한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비핵화 시간표는 북한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일치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북한의 절친(?)이라할 수 있는 중국마저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판문점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도의 남북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형국에서 시간은 트럼프 행정부의 편에선 듯했다. 트럼프의 비핵화 스케줄에 따라 북·미 관계와 한반도 평화도 좌우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교착국면이 지속되자 북한은 2019년 신년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비핵화의 ‘새로운 길’을 언급했다. 비핵화 시계추가 또다시 북한으로 기울어가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2019년 신년사와 4월 시정연설, 그리고 북·러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면서 비핵화의 시간을 2019년 12월까지로 못 박았다. 스톡홀름 북·미 접촉 이후 별다른 징후가 보이지 않는 상황과 탄핵 정국을 맞이한 美 조야의 정치 풍경을 고려할 때 비핵화 스케줄의 시간 조정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 달 정도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가 재가동되기를 기대해본다. 아니, 적어도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길이 ‘한반도의 평화’라는 길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2020년이 되면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길의 윤곽이 뚜렷해질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에 부정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새로운 길이 한반도 평화의 지름길은 아니더라도 2019년 한 해 동안 걸어온 궤도 이탈이 아니길 기대하며 2019년을 마무리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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