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12020.03

2019년 6월 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러시아 극동개발장관 회담을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연합

특집 3

접경지역의 평화경제적 접근

남·북·러 삼각협력
새로운 기회의 창 활용해야

남·북·러 삼국 간의 경제협력에 관한 논의는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다. 철도, 가스, 전력, 복합물류 운송 등 여러 분야에서 모색하고 있는 초국경협력은 세 나라 모두의 경제 번영 및 국가발전에 기여할 뿐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매우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당사국들, 특히 러시아와 한국이 황금 삼각지대(Golden Triangle) 구축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왔다. 그런데도 논의만 무성할 뿐, 북핵으로 대표되는 한반도의 항시적인 지정학적 리스크에 가로막혀 지금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성사된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근자에 남·북·러 삼각협력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기회의 창’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신대륙주의 질서 출현과 한반도 기회 요인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은 한반도 상공의 전운(戰雲)을 제거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힘입어 힘의 대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북핵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전례 없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세 차례씩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 영토까지 밟았다. 현재 북·미 간 고도의 ‘수 읽기’와 팽팽한‘기싸움’으로 핵 협상이 일시적으로 교착상태에 있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를 위한 대화의 모멘텀이 유지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2018년 11월 8일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경북 포항 포스텍 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한-러 지방협력 포럼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한반도 정세의 호전 외에도 기회 요인은 또 있다. 최근 유라시아 대륙 내부에서 움트는 ‘신대륙 주의 질서’의 출현,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의 괄목할만한 친시장화·개방화 추세,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과 신북방 정책,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 정책, 2018년 6월 한국의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가입 등은 남·북·러 삼국을 위한 기회의 삼각지대 형성에 유익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러 경제협력의 성사는 무엇보다도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워싱턴은 평양의 先 핵 폐기를 강조하는 가운데 대북제재의 조기 해제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비핵화 속도와 시한에 대해서도 정해진 시간표가 없다고 말해 장기 과제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집권 4년 차 문재인 정부가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남북 및 북·러 접경 지역을 평화경제의 심장 공간으로 만들려는 원대한 계획에 중대한 차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평화경제 구현 위한 접근법
북한의 핵 포기를 강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주도적으로 모색하는 노력 또한 긴요하다. 남·북·러 삼각협력이 현 정부의 대외정책 핵심 브랜드인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의 한 축을 구성하고, 동시에 신북방 정책을 추동하는 견인차라는 점을 고려할 때 무언가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해법 모색이 요구된다. 그러면, 현시점에서 어떤 접근법이 필요할까?

먼저 ‘조건부 제재 완화론’에 대한 국제적 공론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 상응 조치 요구와 관련해 미국은 先 핵 폐기 - 後 보상으로 요약되는 ‘리비아식 모델’로 압박하지만, 북한은 단호히 거부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 절충안으로 단계적 동시 이행 방식을 제안하면서 작년 말, 유엔 안보리에 대북제재 일부 완화 결의안을 상정했다. 북한의 핵 폐기 이행 수준에 따라 국제 대북제재 레짐(Regime)에 유연성을 부여하고 평양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것인데, 문재인 정부의 해법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 행동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 즉, ‘비핵화 촉진제로서의 제재 완화론’에 대해 한국은 UN, EU 등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바라본 북·중·러 접경지역

농·축·수산업, 초국경 연계 관광과 같은 소규모 형태의 수월성이 높고 실현 가능한 사업, 대북제재 해제 여부와 상관없이 추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새로운 협력 사업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중단된 남·북·러 복합 물류 사업, 즉 ‘나진-하산 프로젝트’(두만강을 사이로 마주 보는 북한의 나선시와 러시아 하산시를 잇는 철도를 개보수하는 남·북·러 합작 사업)의 재추진이다. 본 프로젝트는 2014~2015년 사이에 이미 세 차례나 시범사업으로 진행했지만,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국이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중단됐다. 이제 변화한 한반도 정세를 고려해 ‘재개’ 결단을 내릴 시점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유엔의 대북제재 예외 조치라는 점도 있지만,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고, 동력을 잃어가는 신북방 정책에도 탄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경협 사업 발굴’이다. 지금까지 논의된 남·북·러 협력 사업은 가스관, 전력망, 철도망 연결과 같은 메가 프로젝트 위주였다. 그런데 이런 경성 프로젝트들은 북한과 관련 있고, 또 정부 주도형 결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국제정세와 깊은 연동성을 갖는다. 해당 사업들이 그 경제적 필요성과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의 안보적 경직성에 감금되어온 이유다. 이제는 농·축·수산업, 초국경 연계 관광과 같은 소규모 형태의 수월성이 높고 실현 가능한 사업, 대북제재 해제 여부와 상관없이 추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새로운 협력 사업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홍 완 석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