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아카이브
전염병 예방협력과 북한의 방역시스템
남북 전염병 감시 네트워크 구축 필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으로 선포했다. 북측도 연일 코로나19 차단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동안 전염병 예방을 위한 남북 협력 사례와 역사를 살펴보고, 코로나19에 대한 북측의 대응과 향후 남북 협력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전염병 통제 사업과 보건의료분야 남북 협력
1990년대 초,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면서 경제적 고립, 전력난, 의약품 부족에 직면한 북한은 병원 운영과 약품 생산을 중단하면서 전반적인 보건 의료시스템이 붕괴됐다. 이후 연이은 자연재해로 전염병(남측은 ‘감염병’ 용어 사용)이 증가하면서 주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당시 북한의 상황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며, 유엔 산하 국제기구에서 식량과 의약품 지원이 이루어졌다. 우리 정부도 북측의 공식적인 요청에 따라 1997년부터 전염성 질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시작했다. 북측이 결핵 퇴치 지원을 위해 요청한 말라리아 방제사업도 그때 시작됐다.
정부는 대한적십자사 및 민간단체, 국제기구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호흡기 및 장관계 전염병 예방 백신과 항생제 등 기초약품, 치료약품 및 관련 기기로 지원 품목을 확대했다. ‘대한결핵협회’를 비롯한 여러 민간단체가 결핵 치료약을 지원하였고, 기생충 감염 퇴치를 위해 ‘한국건강관리협회’ 등의 단체에서 구충제를 지원했다.
국제기구는 국내 민간단체와는 달리 북측 전역으로 현장 접근이 허용되어 지원 사각지대 해소에 앞장섰다. 우리 정부도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결핵을 비롯한 말라리아, 조류인플루엔자 등의 방역사업을 지원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결핵, 소아마비, B형간염 등 예방접종 백신 등을 지원했고, 2007년부터는 ‘국제백신연구소(IVI)’를 통해 수막염과 일본뇌염 퇴치를 위한 백신과 시약 등을 지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기존의 구호성 지원방식에서 의료인력 역량 강화를 위한 기술 교류 및 인프라 구축 등 개발·협력사업으로 대북 사업의 방향을 전환했다. 남북 공동협력사업도 실시했다. 남북 교류협력이 활발했던 2005년 5월, 휴전선 부근에 말라리아 방역의 필요성이 증대되어 WHO의 주재로 남·북·중이 참여하는 ‘3자 합동 말라리아 대책반’을 구성했다. 당시 남과 북은 6개월마다 말라리아 유병률 및 치료현황에 대한 상호 정보교환과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관리책임자 연구 프로그램 개최, 말라리아 대책반 가동을 위한 연구기금 공동 마련에 합의하였다. 또한 2008년부터 4년 동안 휴전선 인근 남측 주민의 감염방지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경기도, 인천시)에서 방역 차량과 살충제 등을 지원하고 남북 공동방역을 했다. 그동안 보건의료분야 지원액 중 결핵 퇴치 지원이 가장 많았고, 말라리아 퇴치는 네 번째로 많아서 전염병 통제사업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까지 비교적 활발하게 남과 북이 협력했으나 5·24조치로 남북 협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우리 측의 직접적인 지원·협력은 중단되고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지원이 이루어졌다. 2015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국제 민간단체(카리타스)와 협력하여 590만 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홍역·풍진 백신(MR)을 지원하여 접종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북제재로 홍역·풍진 접종사업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한편 2017년 9월,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정부와 민간단체의 대북 사업은 중단되었다. 유일하게 결핵치료제 내성환자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민간단체(유진벨재단)의 다제내성 결핵치료사업은 제재를 면제받아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9년 12월 신종 감염병이 유행했을 때에는 경색된 남북관계에서도 우리 측의 제안으로 신종인플루엔자 치료제를 지원했다. 우리 정부는 진단 등 기술지원 차원에서 의료인력의 방북을 함께 요청했으나 북한이 약제 지원만을 수용하여 인적 교류협력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4년 에볼라바이 러스와 2015년 메르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시기에는 북측의 요청으로 개성공단 출입사무소에 열 감지 카메라와 관련 물품 등을 지원했다.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 후 ‘남북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분과위원회’에서는 남북보건의료 협력사업으로 남과 북이 전염병 통제와 보건의료 협력을 위한 실태조사를 이른 시일 내에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8년 9·19 남북 정상회담의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서도 남과 북은 전염병 유입 및 확산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비롯해 방역 및 보건의료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곧바로 당해 11월, 남과 북은 ‘남북보건의료 분과회담’에서 감염병 정보를 교환하기로 합의한 뒤 인플루엔자 관련 정보 등을 시범 교환한 바 있다.
2014년 10월 26일 조선중앙TV는 에볼라 바이러스 검역사업을 강화하는 남포수출입품검사검역소를 소개했다. ⓒ연합
북한의 위생방역 조직 체계
북측의 보건의료체계는 국영 단일체계다. 1966년 김일성 주석이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라는 정책을 표방하면서부터 전염병에 대한 예방·대응 체계가 전국적으로 강화됐다. 전염병인 결핵과 간염의 경우, 별도의 치료 및 요양·격리 시설을 설립해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했다. 한편, 북한은 의사담당구역제를 지정하고 전국 각 지역 리·동·종합 진료소에서 150여 가구의 건강을 담당하는 호담당의사를 두었다. 이들은 일선 담당구역의 가정 또는 직장을 방문하여 위생보건, 예방접종, 건강검진 및 지역 환경위생을 관리하고 1990년부터는 전염병을 파악하여 진단서를 발급하도록 하였다. 현재 북한 전역에 약 44,710명의 호담당의사가 활동한다.
2000년 8월 17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측이 준비한 말라리아 방역물자가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 게이트를 통과하고 있다. ⓒ연합
북측의 보건의료체계는 국영 단일체계다. 1966년 김일성 주석이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라는 정책을 표방하면서부터 전염병에 대한 예방·대응 체계가 전국적으로 강화됐다. 전염병인 결핵과 간염의 경우, 별도의 치료 및 요양·격리 시설을 설립해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했다. 한편, 북한은 의사담당구역제를 지정하고 전국 각 지역 리·동·종합 진료소에서 150여 가구의 건강을 담당하는 호담당의사를 두었다. 이들은 일선 담당구역의 가정 또는 직장을 방문하여 위생보건, 예방접종, 건강검진 및 지역 환경위생을 관리하고 1990년부터는 전염병을 파악하여 진단서를 발급하도록 하였다. 현재 북한 전역에 약 44,710명의 호담당의사가 활동한다.
북한의 위생·방역 정책은 ‘보건성’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국가의 위험을 초래하는 심각한 전염병 발생 시에는 내각에서 지휘하여 ‘국가비상방역위원회’를 운영한다. 보건성 산하에는 중앙 방역관리기관인 국가위생검 열원을 설치해 위생교육, 검열, 방역, 위생개조 및 환경공해 방지 등의 사업을 지휘한다. 기술적 업무조직으로는 보건성 산하에 ‘중앙위생방역소’가 있으며, 전국에 ‘도 위생방역소’, 시·군·구역에 200여 개소의 ‘위생방역소’(방역과, 위생과, 기생충과, 통보과, 실험과 조직 구성)를 설치했다.
‘철도성’ 산하 중앙 및 각 철도국에는 철도 관련 위생 방역을 담당하는 ‘위생방역소’를 설치했다. ‘위생방역소’에서는 전염병이 발생하면 전염병 발생지에 세균소독(기초소독과 종말소독)을 한다. 또한 북한은 국외 전염병 유입을 통제하고자 「국제위생검역법」을 제정하여 다른 국가와의 교역이나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지역에 설립하는 검역소 규정을 마련했다. 해외 유입 전염병에 대해서는 외국인 입국 차단, 격리‧추방을 시행하는데 심각한 상황에서는 국경을 폐쇄한다.
코로나19 감염‧확산 방지 위한 남북 협력 필요
북한은 최근 급속도로 퍼져가는 코로나19 확산의 심각성을 인지해 지난 1월 28일 위생방역체계를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했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국경을 전면 봉쇄한 가운데 ‘중앙비상방역지휘부’를 컨트롤타워로 전국적으로 매일 3만 명의 보건인력을 방역 작전에 투입하고 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각지 연구기관들과 약물 생산단위에서는 항바이러스제와 검사 시약, 소독약, 의료용 소모품 등을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한 사업이 강력하게 이뤄지고 있다. 북측은 코로나19 감염 환자나 의심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보도했다(2020년 2월 22일 기준). 그러나 감염병의 확산이 장기화하고 자체 통제 수준을 넘을 경우, 북측은 또 다른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 정부는 북한의 코로나19 감염 차단 및 확산 방지를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일차적으로 열감지 카메라, 진단키트 및 치료제(항바이러스제, 항생제), 의료종사자 보호장비 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대북제재 면제 승인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2020년 2월 15일 북한이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사업을 강도 높이 전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
그동안 남과 북은 정부 차원에서 남북 전염병 통제를 위한 방역과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지만, 실질적으로 진전된 사항은 없다. 남과 북이 한반도 공동 방역과 공중보건감시체계 강화를 위해 상생 협력할 경우, 해외 또는 상대지역으로부터 고위험 전염병의 유입·확산을 방지하고 조기 차단함으로써 상호 질병부담 감소는 물론 생명을 보호하고 엄청난 사회경제적 손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현 대북제재 상황에서 가능한 ‘낮은 단계의 협력’방안은 결핵을 비롯해 북측에 만연된 전염병 관련 남북 공동학술대회의 개최와 인적 교류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기존의 남북 합의를 바탕으로 전염병 감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데이터 공유, 전염병 위협 요소 조기 감지, 공동 위험평가 및 질병 모니터링을 통해 전염병 유행에 대비하며 발생 시 조기에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전염병 통제에 따른 남북 기술 협력을 위해서는 개성공단 내 설립된 남측 병원에 ‘남북 공동방역 관리사무소’를 세우고 지속적인 기술협력 채널을 확보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다.
황 나 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