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공공외교
“한·미관계 발전 이끄는 공공외교의 힘은
미주 한인의 정치력 신장입니다”
김동석 민주평통 운영위원,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미국 내 유권자 운동을 통해 평화 공공외교를 실천 중인 김동석 민주평통 운영위원(미주한인유권자연대, 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 대표)은 1992년 LA 폭동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은 한인들의 터전을 목도하면서, 개인이 정치적인 힘을 키워나갈 때 비로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이를 계기 삼아 건강한 한·미관계를 위해 한인사회와 미국사회를 잇는 가교로서 평화 공공외교를 펼쳐나가는 김동석 운영위원을 만나 공공외교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동석 운영위원이 유권자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92년 LA 폭동 때다. LA 폭동은 흑인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관들이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난 것에 분노한 흑인들이 일으킨 폭동인데, 그 불똥은 엉뚱하게 LA 한인타운으로 번졌다. 흑인 시위대는 한인타운으로 몰려가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고 한인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폭동의 원인은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종차별에 있었지만, 외견상 사건은 흑인들과 한인들 사이의 갈등 문제로 비화했다. 김 위원은 당시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을 목도하면서 미국에서는 스스로 정치적인 힘을 만들어야 자기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고 보호받을 수 있지, 가만히 있으면 법의 보호 받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미국에 100만 명 이상의 한인들이 살았지만(현재는 250만여 명의 한인 거주), 정치적 힘은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 미국은 투표권이 있는 개인이 유권자 등록을 해야 선거 때 투표를 할 수 있는데, 선거가 대체로 평일에 진행되니까 먹고살기 바쁘고, 또 언어 장벽에 직면한 한인들 중에는 유권자 등록을 한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죠. 이러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한인들의 정치적 힘을 신장하기 위해 미주 한인 유권자 운동을 시작했어요.”
미주 한인의 정치력 기반으로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
이에 김 위원은 두 가지를 목표로 삼았다. 첫째, 정치 참여 운동을 통해 한인들의 정치력을 결집하고 신장해 미주 한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 둘째, 이러한 정치력으로 분단국가인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한·미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목표를 갖고 1993년부터 뉴욕과 뉴저지를 중심으로 20여 년째, 그리고 지금은 워싱턴에 전국 단위 한인 풀뿌리 정치참여 운동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미주 한인유권자연대(KAGC)를 설립해서 활동하고 있다.
KAGC는 미국에서 가장 크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한인 유권자 단체로 초당적인 비영리 단체다. 전국의 한인 관련 단체들과 연대 활동을 통해 시민 정치 교육, 지역 사회 조직 및 유권자 등록 운동, 미주 한인 관련 입법 지원 활동 등을 한다. 또 31개 주에서 600여 명의 지역 활동가가 참여하는 KAGC전국회의(National Conference)를 매년 7월 열고 있으며, 한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치 교육 프로그램인 KAGC U도 매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미주 한인과 관련한 데이터를 축적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로 소개했다. KAGC는 지역별 한인 인구수, 한인 이슈와 관련한 의원들의 투표 기록 등 미국 내에서 한인들이 어느 수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예측 가능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메모리얼 아일랜드에 세운 위안부 기림비
위안부 결의안 미국 하원 통과, 평창올림픽 홍보 활동 성과 거둬
김 위원은 유권자 운동을 통해 이룬 여러 가지 성과 중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HR121) 통과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그는 2007년 일본계 3세인 마이크 혼다 의원이 발의한 위안부 결의안을 미국 의회가 채택하도록 한인 사회의 힘을 모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쉽게 얻어낸 성과가 아니었다. 2년 동안 거리에서 8만 명의 서명을 받아 하원의원들에게 전달했고, 수많은 한인 2세, 3세 학생들이 워싱턴 의원 사무실을 돌며 의원들을 설득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혼다 의원의 결의안은 168명의 하원의원이 공동발의 했고, 하원에서 통과 될 수 있었다. 이 결의안은 192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시인,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저지른 종군위안부 제도는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 중 하나로 규정했다.
김 위원은 “위안부 결의안이 하원에서 통과됐을 때 지금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의원을 만났어요. 그는 자신도 가해자 측의 반대 로비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는데, 여성 인권 문제에 둔해진 의회를 깨우쳐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더라고요”라며 소회를 밝혔다.
또한 그는 2013년 뉴저지의 버겐카운티 정부가 조례를 만들어 위안부 기림비를 만드는 일도 주도했다. 미국에서 네 번째 기림비이지만 한인사회가 주도한 기림비와 달리 미국 지방정부가 주체가 되어 여성 인권을 유린한 일본의 전쟁 범죄를 고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기림비가 미국 노예제도로 희생된 흑인, 나치에 학살당한 유대인, 아일랜드 대기근, 아르메니아 학살 등 인권 문제를 다룬 다른 4개의 추모비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도 의미를 더한다.
김 위원은 민주평통 활동과 관련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자면서 홍보대사로 활동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당시 유권자 운동을 하면서 쌓아놓은 인맥을 활용해 의원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평화 올림픽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로 미 연방의회 의원들을 만나고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을 갖고 다니면서 나눠주기도 했죠. 이렇게 평화와 인권 문제를 공공외교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군 강제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주역으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출연
이민자 정치적 의제에도 관심 가져야
이처럼 미국 내 유권자 운동을 통해 공공외교를 실천 중인 김 위원은 현재 공공외교에 대한 한국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했다. “공공외교는 한인들이 한국정부의 의제를 미국 정치권에 목소리를 높여서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교부가 못 하는 일을 민간인인 우리가 한다’라는 입장은 매우 위험한 일이에요. 특히 민주평통은 대한민국의 헌법 기관입니다. 작년에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우리 지역 연방 의원인 빌 파스크렐 의원과 만났는데, 그가 한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한인들은 왜 다 한국에서 파견한 공무원 같냐’는 겁니다. 왜 이민정책이나 인종차별, 경제적인 문제 등 자신들 이 직접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3·1절 100주년이나 임시정부 이야기만 하냐고 묻더라고요.”
이어 그는 미주 한인으로 공공외교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먼저 미국 시민이란 입장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은 소수계입니다. 지금은 대통령 선거 때니까 일부 보수 정치 세력들이 주창하는 인종주의(백인우월주의)에 적극 저항하는 일이 시민의 입장을 명백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정치인들을 만나서 이민자로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김 위원은 또 유권자로서 정치 참여 운동 과정에서 미국의 정치 현실을 면밀히 살피지 않고 무조건 원하는 바를 전달한다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한인들이 의회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현재 미국 정치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분열돼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서 트럼프 정부 정책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고 먹힐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또 현재 워싱턴 정가는 2016년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조사하는 ‘뮬러 특검’ 등을 거치면서 외국 정부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공외교를 위해서는 말 그대로 학자들, 민간인들, 문화예술인들의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인맥을 통해서 미 정치권에 한국정부의 입장이 자연스럽게 전달되게 하는 것이 바로 지금 한국정부가 구상해서 추진하는 공공외교입니다. 그런 역할을 미주 한인들이 해야 합니다.”
평창올림픽 홍보위원으로 당시 연방하원이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인 테드요호 위촉
민족문제에 대한 지속적 참여, 포용과 관용의 리더십 중요
이런 이유로 미주 민주평통 자문위원의 역할을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김 위원은 제안했다. 그는 현장을 잘 알고 그 현장을 기본으로 정책이 구체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소위 ‘서울 안 가 본 사람이 이기는’ 형국이 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민주평통 의장인 문재인 대통령의 포용력 있고 관대한 리더십을 통해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자문위원들이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남, 북, 해외동포로 민족 주체를 삼분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장점은 인격적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지 않더라도 긴 호흡에서 민족의 화해와 번영을 위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한, 관대한 리더십이죠. 이런 훌륭한 리더십일 때,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향을 받았던 민주평통을 바로세울 수 있고, 해외자문위원의 기본적인 기능에 대해 명확히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동포 사회가 안정될 수 있을지, 민족 이슈에 대해 결집할 수 있을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할 수 있으면 합니다.”
전 홍 기 혜
프레시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