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미국의 대선과 한반도 평화
예측 힘든 선거 판세,
한반도 평화 위해
외교력과 통합력 키워야
미국 대선이 혼란스럽다. 선거 판세를 예측하기 어렵다. 경제 성패와 인종 갈등이라는 거대 변수에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선거 관리 문제도 겹쳐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정책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대외 목표와 실리를 관철해 나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미국 대선 후보들의 대북접근법을 예측하고 우리의 길을 찾아본다.
선거의 나라 미국이 건국 이래 치러온 수많은 대통령 선거 중 올해처럼 변수가 많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대개는 경제 상황이나 국제 문제 혹은 사회 이슈 등 한두 가지 쟁점으로 선거가 판가름 났지만 이번 대선은 다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미국의 확진자는 약 700만 명, 사망자는 약 20만 명에 육박하는 암울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10년간 창출된 일자리가 한 달 사이에 사라졌다고 한다. 여기에 미국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인종 차별 문제가 겹쳤다. 백인 경찰의 흑인 살해 혹은 학대 장면이 동영상으로 연달아 폭로되면서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오바마 시대 이후 소외감과 분노로 뭉친 보수 성향의 백인 노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으로서 편 가르기 정치의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았다.
‘산 넘어 산’ 예측하기 힘든 선거 판세
그런데 이 모든 분란의 중심에 미국 정치 리더십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년간 사회 통합이 아닌 정치 양극화를 자신의 선거 전략이자 통치 방식으로 이용해왔다.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하지만 쪼개진 미국의 절반은 충성하며 따른다. 게다가 연방 차원의 선거 관리 시스템이 부재한 미국에서 부재자 투표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불안감도 상당하다. 트럼프의 불복 가능성을 떠나서 개표 지연 및 선거 소송 등으로 인해 어떤 후보도 선거인단 다수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벌써 분분하다. 우편 투표는 확인 절차가 복잡하고 무효표로 처리될 가능성도 적지 않아 우편 투표를 독려 중인 민주당에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우편 투표가 공화당이나 민주당 중 한쪽에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없다.
사실 현재로서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시장 붕괴, 실업률 폭증 등 객관적인 경제 지표 악화에 대한 책임을 트럼프에게 전적으로 묻는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실패가 아니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가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일각에서 말하는 경제 투표(Economic Voting) 이론을 적용할 여지는 그리 크지 않다. 사실 나쁜 경제가 경제적 현실의 문제라면 나쁜 대통령은 정치적 인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나쁜(Out-of-touch) 대통령이란 경제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무대책으로 일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지도자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대통령의 예는 적지 않다. 1837년 첫 번째 경제 위기 당시의 뷰렌 대통령, 1929년 대공황 때의 후버 대통령, 1980년 석유 파동 때의 카터 대통령, 1992년 급격한 경제 침체 당시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을 이들과 동일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지난 3월 2조 달러가 넘는 규모의 코로나 재난 구호 자금 법안을 주도하여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 관리 능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여론에 민감하여 위기 감지 능력만큼은 탁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9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 차별 항의 시위로 피해를 입은 위스콘신주 커노샤를 방문했다.
위스콘신은 미국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6대 경합주 가운데 하나이다. ⓒ백악관
국제 정치보다 국내 이슈로 채워지는 미 대선
결국 이번 대선에서 미국이 직면한 여러 국제 정치 이슈들은 끼어들 자리가 별로 없다. 주요 선거 이슈들이 경제 몰락, 코로나19 대응, 인종 차별 시위와 교외 지역 치안, 이민 이슈 등 주로 국내 문제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자신이 보여준 미숙한 대처를 ‘중국 때리기’로 덮어 보고자 했다. 지금도 여전히 “바이든이 승리하면 중국이 승리하는 것(If Biden wins, China wins)”, “베이징 바이든(Beijing Biden)” 등 중국 이슈를 지렛대 삼아 바이든 후보를 공격 중이다.
그런데 바이든 후보도 안보와 경제분야 모두에서 중국에 대한 입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채택한 정당 강령도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무역 역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유사하다. 다만 민주당에 가까운 인권 그룹을 의식해 중국 정부와 중국 국민을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 정도만 한다.
대선 구도를 두 후보 간의 ‘선택 선거(Choice Election)’로 몰고 가려던 트럼프 대통령 선거 캠프는 ‘중국 때리기’로는 차별성과 효과성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중국 비판 전략을 축소하고 교외 지역의 치안, ‘법과 질서(Law and Order)’라는 국내 이슈에 몰두하고 있다.
만일 현재 여론조사 결과대로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바이든은 2021년 1월 20일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바이든 후보는 1972년 미국 상원 입성 이후 외교 및 법사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특히 안보 영역의 오랜 경력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다만 2002년 이라크 전쟁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바이든이 이라크 전쟁 실패와 금융 위기 이후의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을 위한 적임자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다. 다만 오바마, 부시, 클린턴과 달리 국제 문제를 안보 보좌관 혹은 국무장관 등 보좌진에 맡겨 두지는 않을 것이다. 외교 정책 경험을 가진 현직 대통령은 중국 초대 연락사무소장과 CIA 국장 등을 지낸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 이후 처음이다.
지난 8월 19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뒤 화상 연결을 통해 화면에 나와 감사의 뜻을 밝히고 있는 바이든 후보 ⓒ연합
바이든 또는 트럼프 이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대개 민주당은 국제 문제보다 국내 이슈에 훨씬 치중한다. 대선에 승리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에게 오바마케어(ObamaCare) 개혁과 기후 변화 대처 입법을 거세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면 북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것이다. 만일 북한이 ICBM 실험 등을 강행한다면 오바마 시대 딜레마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 독재자와 타협하는 민주당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그 입지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라크 전쟁 실패 이후 달라진 미국 내 분위기를 이용하여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포괄적 합의-단계적 접근’ 방안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샌더스(Sanders) 계열의 혁신파 민주당 소장 의원들은 한반도에서의 냉전 구도 해소에 큰 관심이 있다. 이를 통해 미국 내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영향력을 대폭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국방비 삭감을 실현하고자 하는 그룹이다. 노령 대통령인 바이든의 시대에는 민주당 내부의 노선 갈등이 나타남과 더불어 대권을 빼앗긴 공화당이 2024년 대선에 승리하려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트럼프 시대 못지않은 혼란을 보일 소지가 충분하다.
만일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어떨까?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유화책 혹은 정상회담 전략은 트럼프 개인의 특성 못지않게 ‘공화당’ 대통령이라는 지위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북한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개최한 첫 번째 ‘공화당’ 대통령이다. 같은 공화당 소속 매파 중진 의원들은 대놓고 반대하지 못한다. 폭스 뉴스를 위시한 보수 언론은 트럼프의 결단과 전략을 찬양하기 바쁘다. 공화당 대통령 닉슨의 중국 개방 노력 이래 미국 정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양상이다.
다만 올해 11월 3일 대선과 동시에 치러지는 117대(2021.1~2023.1) 의회 선출 선거에서 현재 53대 47인 상원의 공화당 우세가 민주당 다수당 구도로 바뀐다면 이는 주목할 만한 전개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으로 등극한다면 재선 대통령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상당 부분 견제할 수도 있다. 두 번 연속 대선 패배를 경험한 민주당 입장에서 2024년 권토중래를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의 외교적 승리도 트럼프에게 안겨 줄 마음이 없을 것이다. 반면 국내 문제에 치중할 것으로 보이는 민주당이 의료 보험 및 기후변화 분야에서는 당파적 투쟁을 하되 외교에 대해서는 트럼프에 협력하는 초당파적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욱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자신들의 오래된 원칙과 트럼프의 북한 접근법이 맞아떨어지는 한 크게 반대할 명분도 딱히 없다.
만일 재선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여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이라는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함께 추진한다면 미국 국내 정치 구도로 볼 때 비교적 안정적 관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 어쩌면 소속당 대통령을 견제할 이유가 없는 공화당과 평화적 해법을 선호하는 민주당 모두에게 승인받는 북한 문제의 미국정치화(Americanization)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동시에 트럼프의 독단적이고 즉흥적인 대북정책 추진가능성은 늘 경계 대상임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이기든 바이든이 이기든 우리의 대외 목표와 실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외교 실력과 국론 통합이 필수적이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국익은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한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을 분석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작업 또한 우리의 국익 증진을 위한 숙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서 정 건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