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82020.10

2015년 7월 2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고 이란 핵 합의안 이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연합

국제

다른 듯 닮은 이란과 북한의 핵 문제,
지역 위기 관리하는 협상 모델 필요

또다시 이란 핵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가 시끄럽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7월 14일 타결된 이란 핵 협정(JCPOA)에 대해 ‘가장 나쁜 계약’이라고 비난하면서 지속적으로 폐기론과 재협상을 주장해왔고, 결국 2018년 5월 8일 핵 협정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미국은 이어서 단계적으로 대이란 제재를 강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이란의 대응도 강경하다. 미국의 핵 협정 탈퇴 1주년을 맞은 2019년 5월 8일 이란은 핵 합의 의무이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2020년 1월 5일 핵 합의 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 8월 25일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 이란 대통령은 이란 언론사 간부들과의 만남에서 미국이 이란과의 합의를 원한다면 핵 협정에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이 이란 핵 협정을 탈퇴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란 핵 문제는 아직까지 새로운 해법이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란 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
이란 핵 문제는 2002년 8월 15일 이란 반정부 단체인 이란국민저항위원회(NCRI)가 나탄즈(Natanz)의 우라늄 농축시설과 아라크(Arak)의 중수로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제조해 국제사회를 위협한다고 반박한다. 이란은 우라늄 처리가 핵발전 원료를 얻기 위한 평화적인 것이며, 핵확산금지조약(NPT) 틀 내에서 평화적 목적을 위한 우라늄 처리와 농축은 허용돼 있으므로 자국의 핵 계획이 합법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핵 원료 기술은 핵무기 개발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며, 이란이 공개한 시설들 외에도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해 핵무기 개발 기술을 얻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자 유럽연합 3개국(영국, 프랑스, 독일)과 이란은 또 다른 전쟁의 위협을 피하고 이란 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 해법을 추진했다. 2003년 EU 3개국은 이란과 핵 협상을 시작하면서 10월 21일 ‘테헤란 선언’을 채택해 이란이 자발적으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하고, 그 대가로 이란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10월 23일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Ali Khamenei)는 핵무기가 이슬람의 가르침에 반한다는 파트와(Fatwa: 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렸다. 2010년 공식 문서를 통해 “핵무기를 포함해 화학무기, 생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WMD)는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다. 화학무기의 피해자이기도 한 이란은 이런 무기를 생산·축적하는 데 특히 더 민감하다. 이에 맞서기 위해 기꺼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004년 11월 파리 협정에서는 이란이 IAEA가 1997년 채택한 추가의정서를 이행하고,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과정을 중단하며, IAEA의 핵사찰을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EU 3개국은 그 대가로 이란에 대한 핵기술 제공, EU와 무역 및 경제협력에 대한 협상 재개, 이란의 WTO 가입 지지, 안보 확보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란은 부분적인 핵 개발 중지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핵 관련 모든 프로그램을 영구히 포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절했다. 미국은 전면 포기를 주장했고 EU 3개국도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다.

2018년 5월 11일 이란에서 미국의 핵 협정 탈퇴 관련 대규모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연합

극적 타결된 이란 핵 협상, 그러나 미국의 탈퇴 이후 높아지는 제재 수위
미국은 2002년 이란국민저항위원회의 폭로 이후 기존의 대이란 독자 제재를 유엔을 통한 다자 제재로 확대했다. 2006년 2월에 열린 IAEA 특별이사회에서 미국은 이란 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를 주도했고, 유엔 안보리의 이란제재 결의안은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통과되었다. 2006년 12월 23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1737호(비군사적 제재)에서 자산동결 대상은 이란의 주요 기업 10개와 개인 12명이었다. 2007년 3월 24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1747호(비군사적 추가 제재)에서는 개인, 단체, 기관 28곳을 자산 동결 대상으로 추가시켰다. 2008년 3월 3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1803호는 앞선 두 차례 결의안의 내용을 보완·강화한 것이다. 처음으로 민간 및 군용으로 함께 쓰일 수 있는 물품 교역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켜 이란의 경제활동을 더욱 압박했다. 2010년 6월 9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1929호에서는 개인 1명과 이란 기업 및 기관 40곳에 대한 자산동결 및 여행 금지 대상 추가, 중무기 판매와 탄도미사일 관련 활동 참여 금지, 이란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입 통제 등으로 확대되었다.

2013년은 이란 핵 문제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된 시기였다. 8월 6일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쟁에서 진지한 대화로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히면서 서방 세계와의 핵 협상을 제안했고, 9월 27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핵 협상 추진에 합의했다. 이란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 등 6개국(P5+1)은 2015년 4월 2일 스위스 로잔에서 ‘공동행동계획의 핵심요소’에 합의했고,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 타결되었다.

2015년 이란 핵 협정은 수년간 추진되어 온 다자 외교의 결과로 단계적 비핵화에 따른 단계적 보상 방식에 대한 합의였다. 이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합의로 평가될 수 있다. 이 합의는 과학적 접근에 기반을 둔 방안으로 이란의 농축 활동, 우라늄 비축량, 첨단 원심 분리기 연구 개발 등 구체적인 제한을 명시하고 있다. 159쪽에 이르는 분량의 방대한 최종 합의안의 주요내용은 이란 핵시설에 대한 완전한 사찰 허용과 IAEA의 사찰 결과에 따른 서방의 대이란 제재 해제로 요약된다. 이란은 향후 15년간 핵무기 개발의 핵심 물질인 플루토늄 및 농축우라늄의 생산능력과 보유량을 대폭 감축한다. 3.67%의 저농축 우라늄 수준을 유지하고 보유 중인 저농축 우라늄을 1만㎏에서 300㎏으로 감축하는 것이다. 재래식 무기 금수 조치는 5년간, 탄도미사일 기술금지는 8년간 유지된다. 하지만 이란이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65일 이내에 경제제재가 부활하고, 10년간 준수할 경우 모든 조항은 무효화된다. IAEA는 지속적으로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링 및 검증 활동을 실시하며 이를 통해 이란이 협정 조건을 준수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최대 압박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1월 3일 미군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드론 공격을 통해 카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이슬람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표적 암살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은 1월 8일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미사일로 공습했다. 이 위기는 전쟁으로 확전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제재 수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9월 21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7월 8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 ⓒ연합

조건 없는 대화만이 현 상황 타개할 수 있어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9월 1일 미국을 제외한 이란 핵 협정 6개국 대표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2015년 핵 합의 유지를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조처를 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의 참여 없이 이란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자간 해결책이 아닌 이란과 미국이 직접 대화를 통해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란과 미국 간에 대결과 갈등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전제조건 없이 대화를 시작해 외교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7월 31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공개연설에서 미국과의 협상에 반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협상 거부 배경에 대해서 “테헤란이 워싱턴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미국은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요구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와 협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랜 적대관계로 형성된 뿌리 깊은 상호 불신과 오해는 일괄 타결방식으로 한순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우며,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상호신뢰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이란의 핵 위기와 이를 초래한 요인은 독특하지만, 그 해결책은 북한 핵 문제에도 또 다른 교훈이 될 수 있다. 이란과 북한은 NPT 회원국 여부, IAEA 핵사찰 허용 여부, 핵무기 보유 여부 등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대상으로 협상해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란과 미국의 직접 대화가 중요하다. 반면에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한 핵 문제는 한국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만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주변국의 지지와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할 때 풀 수 있다. 다자협상이냐 양자협상이냐, 일괄타결이냐 단계타결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외교로 다양한 지역 위기를 관리하는 새로운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유 달 승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