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82020.10

평화공공외교 2

프랑스에서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끌어 갈
국제적 가교

아침저녁으로 부는 가을바람에 이맘때면 이국땅에 사는 이방인으로서 추수한 농작물로 조상들에게 감사의 제를 올리는 한국의 추석을 떠올린다. 하지만 올해는 추석이 떠오르기보다 이렇게 2020년 한 해가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크다. 사랑하는 사람들, 많은 시간, 소중한 것들을 코로나19 바이러스에게 도둑맞은 허망함이 드는 가을이다. 프랑스는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노란 조끼’ 파업으로 이미 학교나 사회가 초긴장 사태로 내달리고 있었다. 이런 위기에 파리한글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당혹스럽고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지 난감했다.

코로나19 속, 원격수업으로 한글을 배우는
프랑스의 아이들
파리한글학교는 파업으로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하고 학교에 오는 몇몇 학생들을 모아 합반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어렵게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최대 명절 행사인 설날 행사를 할 수 있었다. 파업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한 해를 시작했는데, 설날 행사를 치르자마자 그 다음 주부터 코로나19로 모든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파리한글학교는 한국어 수업을 원격수업으로 진행했다.

서로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며 가르쳐도 쉽지 않은데, 화상이나 전화를 통해 비대면으로 한국어 수업을 하는 일은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 모두의 집중력을 요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쉽지 않은 비대면 수업이었지만 공부로 쌓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글짓기 대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진정되지 않는 코로나19로 종업식도 프랑스 한국대사관의 최종문 대사가 보낸 축하 동영상과 함께 온라인으로 진행하여 마무리 짓게 되었다. 10년 이상을 한결같이 출석해 대사상을 받은 학생들, 글짓기상을 포함해 여러 상장을 받은 우리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마주치며 축하해 주지 못한 것에 가장 큰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사를 비롯해 현재의 남북 상황과 평화통일의 의미를 아이들과 더 폭넓게 나누지 못해 더더욱 아쉬움이 많은 2020년이다.

파리한글학교는 유치부에서 중등과정까지 총 200여 명의 학생들이 있다. 이 중에 한불 가정이 70%로 가장 많고, 2% 정도가 프랑스 가정, 나머지가 한국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프랑스 가정이나 한불 가정의 학생들은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매주 수요일마다 엄마나 아빠, 혹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와서 배꼽 인사를 하고 각 교실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와 역사를 배운다. 이곳 파리한글학교에서는 언어만이 아니라 한국의 정서와 전통 또한 습득할 수 있게 한다. 한국의 역사를 이해한 우리의 아이들은 한국 반 프랑스 반이 아닌 각각 100%, 즉 200% 이상의 역량을 갖게 되고,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끄는 가교 역할을 할 미래의 인재들이다.

파리한글학교에서 학부모, 학생들과 함께한 설날 행사


파리에서 기차 타고 독립의 현장 찾아가는 상상
프랑스에서 한인회 봉사를 하며 파리에 9개의 독립유적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교민들과 함께 독립유적지 탐방을 기획하여 진행했다. 이 행사를 통해 프랑스 곳곳에 위치한 한국 독립의 발자취를 방문했다.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위종이 공부했던 프랑스 장송드사이 고등학교와 프랑스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일하던 곳을 방문했고, 한국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임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프랑스인들과 교민,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1구 구청과 한인회관에서 전시회도 진행했다. 파리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과 이 전시회를 함께 보며 이야기할 때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지난해 유럽 한인대회 강연회에서는 네덜란드에서 온 헤이그 이준 열사 박물관장과 독일에서 온 교수님을 통해 각 유럽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도 들었다. 두 곳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곳과 러시아, 카자흐스탄까지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의 발자취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파리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유럽과 카자흐스탄, 러시아, 중국을 넘어 서울까지 각 나라의 독립운동 현장에서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함께 토론하며 가는 상상을 해 본다. ‘독립투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기차’를 타고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유럽에서 한국까지 또 한국에서 유럽으로 오는 날을 기다리며 통일을 기원한다.

차 희 로 민주평통 상임위원
(전 파리한글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