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유엔총회 연설에 담긴
한반도 평화 전략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 어떤 평화 구상을 담았을까.
코로나19 이후 세계질서의 변화 흐름 속에서 문 대통령이 언급한 종전선언,
동아시아 보건안보협력 구상을 어떻게 실현시켜 한반도의 평화 전략을 만들어 나갈지 제안한다.
종전선언의 전략적 의미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2일 화상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그는 또한 10월 7일 뉴욕에서 개최된 코리아소사이어티 화상 기조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종전선언’을 천명한 후 지속적으로 종전선언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종전선언을 자주 강조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취약한 정전체제로는 ‘제2의 한국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끝까지 지키려는 배경은 전쟁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정전체제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 불포기 입장을 보이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들이 북한의 독재성 및 비합리성을 이유로 정전협정을 파기하고 대북 공격을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이 없다고 선언하는 종전선언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한반도 평화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그것은 매우 ‘전략적’이다.
‘제2의 한국전쟁’ 막아야
1950년 한국전쟁을 통해 유엔군, 중공군, 북한군, 한국군, 남북한 민간인 등 500만여 명의 사상자와 1,000만 명에 가까운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한국전쟁은 소련의 세계 전략, 중국의 동북아 전략, 미국의 동북아 전략, 김일성의 야심 등이 혼재되어 발생했다. 특히 당시 소련은 김일성의 야심을 이용하여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약화시키려는 전략적 판단하에 북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만일 소련 지도자 스탈린이 끝까지 김일성의 야심을 억눌렀다면 한국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은 미완의 상태가 되어 68년이 경과하고 있고 그동안 남북한 간에는 많은 불신과 증오심이 생겨났다. 한국전쟁의 여진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이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언제 정전이 깨지고 대지진(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는 북한에 의해서도, 미국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누구도 그것을 제어할 수단이 없다. 항구적인 평화체제 유지 장치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만일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발생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회담 이후 밝혔듯이 ‘수천만 명’의 희생자가 나올 것이다. 미국의 첨단 군사력은 북한 전체를 초토화시킬 것이고 북한의 보복 공격은 한국 수도권을 마비시킬 것이다.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매우 우연한 사건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처럼 상호 적대적 관계로 인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우발적 사고가 대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길
현재 남한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BTS의 경우에서 보듯이 문화대국으로서의 위상도 커지고 있는 상태이다. 한국은 단군 이래 모든 면에서 최고의 수준에 올라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2일 유엔 연설에서 밝혔듯이 코로나19 방역은 세계의 표준이 될 정도로 선진적이다. 한국은 제3세계의 발전 모델이 되고 있고 한국인이 되기를 원하거나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수많은 세계인이 있다. 비록 남북 분단으로 인한 안보불안 때문에 세계적 기업들의 직접투자는 많지 않지만 포트폴리오까지 합치면 500조가 넘는 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중강국으로서 동북아에서 핵심적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의 상호의존은 더욱 심화되고 있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는 남한, 한반도, 동북아의 사활적 이익으로 자리매김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서는 하루속히 한반도 냉전구조가 해체되고 평화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한반도에서의 냉전구조 해체는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평화정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법률적 차원에서 한국전쟁이 종식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는 것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화합과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교류는 활성화될 것이고 한반도를 통해 일본의 대륙진출과 중국의 해양진출이 가능하게 되어 동북아의 번영과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 9월 22일 유엔총회에서 화상으로 기조연설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UN
한반도 평화체제의 첫걸음은 당연히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이다. 정전협정 당사자들이 함께 한국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선언해야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종전선언 당사자는 당연히 정전협정 당사자인 UN을 대표한 미국과 중국, 북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이 빠진 종전선언은 의미가 없다. 남한은 한국전쟁의 전쟁터였고 앞으로도 전쟁이 발생한다면 주요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인데 남한이 ‘남한 없는 종전선언’을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정치적 선언이다. 이해당사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종전선언은 관련 국가들이 서로를 “신뢰한다”는 징표가 된다.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불신’이었다. 상호불신을 제거하고 신뢰를 쌓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북핵 문제 해결의 전제조건이다. 종전선언은 시작일 뿐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이것이 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한반도에 이해관계가 있는 남북한 및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참여해야 한다. 이들 국가가 서로 침략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촘촘한 교류협력을 증진하겠다는 것을 합의해야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불가침 조약이나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으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례가 왕왕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서류만 작성했지 서로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동북아 평화체제 완성을 위한 방역·보건 협력체
이러한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보건·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국가적 또는 초국가적 협력체가 구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소위 포괄적 안보(Comprehensive Security)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2일 유엔 연설을 통해 ‘코로나 이후(After Corona)’ 국제협력 차원에서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몽골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성을 제안했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점진적으로 동북아 경제협의체, 동북아군사협력체 등을 구성하고 최종적으로는 EU와 같은 정치공동체가 구성되어야 항구적인 동북아 평화체제가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협의체들은 당연히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더해졌을 때 효력과 항구성이 보장될 것이다.
지난 9월 13일 미국을 방문한 서훈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전보좌관(왼쪽)과 만났다.
우리 정부의 가교역할이 중요한 때이다. ⓒNSC Twitter
북한의 핵이 동북아 내지는 세계적 차원의 위협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북한도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을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없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을 때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다. 그동안 북한이 핵을 폐기할 기회들이 있었으나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이제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다. 현재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북한이 ‘핵무기를 쓸 필요가 없는’ 상태 또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는 종전선언으로 상호신뢰를 구축한 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단계별 해법’이 현실적일 것이다. 북·미관계의 개선 정도에 따라 3단계 정도의 구분을 두고 북한의 핵을 완전 제거하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의 핵심국가는 정치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세계 최강인 미국인 것이 사실이다. ‘전쟁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힘’을 가진 미국의 전향적 태도 없이는 약소국이자 ‘피(被)포위 공포’에 사로잡힌 북한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미국의 신뢰를 획득하여 ‘민족공조’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으며 북핵 문제 해결에도 순기능을 할 것임을 설득해야 한다. 반대로 북한에게는 ‘한미공조’가 북한의 이익에 반하지 않으며 북·미관계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정부의 북·미 간 가교역할과 협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정부의 협상력은 이념과 정파를 떠나 모든 국민들의 지지와 협력이 있을 때만 최고조에 달한다.
전 현 준
국민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