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3
북한의 전략과 남북관계
낙관 어려운 북한의 대남정책
핵협상 상황 관리하며
남북관계 통 큰 접근 모색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자연재해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의 전략을 알아본다. 당 창건 기념식과 서해 NLL 공무원 피격 사건 등에서 나타난 북한의 대응과 태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멈춰 있는 남북관계의 해법을 모색한다.
2020년 들어 북한은 기존의 ‘적대세력’에 의한 위협과 제재 위에 코로나19와 자연재해 등 사중고를 겪으며 체제생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20년은 노동당 창건 75돌이자 김정은 정권이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마감하는 해이기도 하다.
북한 전략노선, 지속가능한가?
지난 10월 10일 새벽, 평양 김일성광장에서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 자정에 시작된 열병식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리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인민’을 58회, ‘고맙습니다’를 5회 언급하며 어려운 상황을 감내해 준 주민들에 감사와 미안함을 거듭 밝히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4년 전 제7차 노동당 대회(2016. 5. 6.~9.)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들에게 “사회주의 강국건설 위업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고 기존에 달성했다고 주장하는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에 더해 과학기술강국, 경제강국, 문명강국을 이룩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목표치로 과학기술 부문 연구자 수 3배 이상 확대, 5개년 기간 내 식량문제 해결, 농기계화 비중 60~70% 달성 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20년 10월 현재, 북한은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밝힌 장밋빛 목표 달성은커녕 인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식량, 의료품 부족에 허덕이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10월 16일, 세계식량계획(WFP) 자료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식량·보건위기를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0월 발간한 <세계결핵보고서 2020>을 통해 지난해 북한의 결핵 발생률을 인구 10만 명당 513명으로 추정했는데(전 세계 평균 발생률은 10만 명당 130명), 이는 세계 다섯 번째 고부담 발생국에 해당된다. 만성적인 식량부족 국가인 북한이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와 연이은 수해, 태풍으로 지난 10여 년 중 가장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결국 김정은 정권에게 노동당 75돌 열병식은 경축행사가 되지 못했고 그 기회를 제8차 노동당 대회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대남정책 전망: 긍정·부정적 측면 상존
이상과 같은 북한의 악화된 경제사정은 북한이 대남·대외정책의 문을 열 촉진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수해 피해 복구작업이 한창이던 9월 19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우리가 당 제8차 대회를 뜻깊게 맞이하고 대회에서 제시된 과업을 본때 있게 관철해 나가자면 피해복구전투를 시급히 결속하고 경제전반과 인민생활을 안정된 궤도에 올려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0월 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제8차 당 대회까지 남은 기간은 … 전당적, 전국가적으로 ‘80일 전투’을 전개하며 다시 한번 총돌격전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수해복구를 완료한 상태에서 제8차 당대회를 맞기 위해서 ‘80일 전투’만으로 되겠는가? 심각해진 식량·의료사정과 교통·전기 등 산업 인프라 개선이 자체 노력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고 주민들이 수긍하고 그 비전 달성을 위해 달려 나갈지는 미지수이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이 당 창건 열병식 기념사에서 인민을 수십 차례 호명한 절박성을 남북대화 재개 가능성과 연결지어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에 손을 내밀고 협력할 파트너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남한밖에 없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태에도 사과하지 않았던 북한정권인데, NLL 일대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에 대해 김 위원장이 신속하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북측의 신속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북한에 공동조사를 요청했다. 물론 북한이 김 위원장의 사과표명과 자체 조사 후 통보 계획을 밝혀 공동조사에 응할 가능성은 낮지만, 경제 회복과 국제적 고립 탈피를 위해 일정한 계기에 남북대화에 응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북한은 2021년 1월 예정되어 있는 8차 당대회를 앞두고 ‘80일 전투’를 독려하고 있다.
사진은 10월 18~19일 북한 평양시와 각 도에서 열린 ‘80일 전투’를 독려하는 근로단체일꾼과 동맹원들의 연합궐기모임 ⓒ연합/조선중앙통신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형성하고 있는 일정한 신뢰도 남북대화 재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북 정상은 9월 친서를 통해 코로나19 대응과 태풍 피해 복구 등으로 인한 서로의 노고를 위로했다. 9월 8일 문 대통령이 먼저 북측에 친서를 전달했고 나흘 뒤 김 위원장이 답신을 보내왔다. 또 김 위원장이 당 창건 75돌 열병식 연설에서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밝힌 것도 남북 간 신뢰가 일정하게 형성되어 있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대화가 재개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반면, 북한의 안보정책과 그에 대해 한국이 반응할 제한된 크기를 염두에 두면 북한의 대남정책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기 어렵다. 당 창건 열병식 연설에서 김 위원장의 이 한마디는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지난(至難)함과 그것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암시해 주고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적대 세력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가증되는 핵 위협을 포괄하는 모든 위험한 시도들과 위협적 행동들을 억제하고 통제 관리하기 위하여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서의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10월 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에서 북한 측 대표단장은 “핵 군축이 실현되자면 핵무기를 제일 많이 보유한 핵보유국들부터 그 철폐에 앞장서야 하며 자기영토 밖에 배비한 핵무기들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이런 입장은 한미가 염두에 두고 있는 비핵평화협상 구도와 크게 거리가 있다. 이어 북한 측 대표는 “올해 조선반도의 남반부에서는 … 도발적인 합동군사연습들이 벌어지고 외부로부터 최신 무장장비들이 부단히 반입되는 등 평화를 위협하는 적대 행위들이 노골화됐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는 한국이 북핵과 지역안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전시작전권 반환을 위한 조건 조성 차원에서 전개하는 첨단무기 도입사업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김정은 정권을 적극 지지하고 나서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정권에게 보내는 러브콜은 더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지난 북한정권 수립(9·9절) 72주년을 맞아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축전과 함께 “북·중 친선협조 관계의 새로운 성과를 이룩하도록 추동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시 주석은 북한 노동당 창건 75돌 기념축전에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실현하는데 새롭고 적극적인 기여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새롭고 적극적인 기여’라는 표현은 중국이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에 보다 깊이 개입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 위해 상황 관리해 나가야
이렇게 남북관계를 둘러싼 정책 환경은 현상적으로 긍·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존재하지만 부정적인 면이 더 커 보인다. 그럼에도 남북한의 협력 의지가 맞닿는다면 난국을 헤쳐나가며 평화와 공영의 한반도를 열어갈 수 있음을 우리는 2000년, 2007년, 그리고 2018년에 보았다.
동해안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를 찾은 어린이가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다. 핵협상 재개까지 상황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제75차 유엔총회 영상 기조연설에서 밝힌 포용적 다자안보협력 구상과 비핵평화 프로세스 재개 방안은 코로나19 사태가 빚어낸 국제정세와 북한의 필요 등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높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와 종전선언은 적절한 제안이다. 두 방안은 평화와 경제, 그리고 남북 양자채널과 역내 다자채널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미래 사회경제적 발전 대안으로 제시한 그린 뉴딜과 디지털 뉴딜은 북한에게도 매력적인 계획이므로 신 남북협력 영역으로 적극 검토할 가치가 있다.
미 대선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 재설정과 핵협상 재개까지 상황관리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한반도 평화번영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한국은 ▲핵협상 재개의 조건 조성, ▲남북 합의 이행, ▲다자채널을 통한 대북 협력 등의 방면에서 상황을 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시간은 움직이는 사람 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한국에게 평화는 선택지가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제1 목표라는 점이다. 미·중 경쟁구도에서의 양자택일이란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반도 평화를 향해 관련국들을 끌고 가야 한다. 한미 동맹관계는 평화를 추진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그 방향에서 양국 간 상호관심사를 조정해 나가는 자신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남북 평화·경제협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북정책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의 역할을 높이고, 북한에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남북관계도 대범하고 통 큰 접근 없이는 낙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서 보 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